당뇨병, "초기 5~10년, 평생 삶의 질 결정한다"… '증상 없을 때'가 골든타임

권태원 기자 2026. 5. 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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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발병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지만 그 사이 혈관 안쪽이 조용히 망가지기 때문이다. 환자가 모르는 새 미세혈관과 대혈관은 차근차근 손상되고, 진단 시점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도 적지 않다. 더구나 당뇨병 환자의 약 70%는 고혈압이나 이상지질혈증을 함께 앓고 있어, 혈당만 잡아서는 합병증을 막기 어렵다. 그렇다면 진단 후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최근 의학계는 발병 초기 5~10년의 관리가 20~30년 뒤 합병증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대사 기억(Metabolic Memory)'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증상이 없을 때가 곧 '골든타임'이라는 의미다.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 김성래 교수(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에게 '당뇨병 관리'의 핵심을 물었다.

자기가 환자인 줄도 모르는 '숨은 당뇨병'이 그렇게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환자분들이 가장 잘못 생각하시는 점이 바로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당뇨병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점이 바로 그 '조용함'이다. 그래서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우리나라는 국가건강검진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어서 빠지지 않고 받기만 해도 위험한 환자나 당뇨병 전 단계를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 검진을 소홀히 하시거나, 결과가 나와도 '나는 아무 증상이 없는데' 하며 흘려버리는 분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 건강검진은 주로 공복 혈당 위주로 측정하는데, 사실 나이가 들면서 혈당이 올라갈 때 일반적으로 식후 혈당이 공복 혈당보다 먼저 오른다. 그래서 공복 혈당으론 정상이지만 식후 혈당으로는 이미 당뇨병 기준에 들어가 있는 환자를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숨어 있는 당뇨병을 그냥 두면 환자도 모르는 사이에 전신의 미세혈관과 대혈관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수도관에 맑은 물이 흐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진한 설탕물이나 꿀이 흐르면 관이 부식되며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다.

투석 환자 대부분이 당뇨병과 관련 있다고 들었다. 합병증이 얼마나 심각해질 수 있나.
내가 학생 때만 해도 투석의 가장 많은 원인은 사구체신염 같은 질환이었고 당뇨병성 신증은 한 서너 번째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투석을 시작하게 되는 가장 흔한 원인이 당뇨병이 된 지 이미 10여 년이 넘었다. 당뇨병은 잘만 관리하면 100세까지도 합병증 없이 천수를 누리기도 하는 반면, 조절을 너무 안 하면 20대에 이미 망막병증으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거나, 다리가 썩어 들어가 절단하는 일이 흔히 생긴다.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이 30대에 오는 환자도 꽤 많다. 진단이 1년 늦어질수록 망막병증·신증·신경병증 같은 미세혈관 합병증은 물론 치명적인 대혈관 합병증의 위험도 함께 커진다. 결국 진단 자체를 놓치지 않는 것, 진단 후엔 즉시 관리에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당뇨병 환자에서 혈당뿐 아니라 혈압이나 지질 수치까지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왜 그런가.
당뇨병 환자가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당뇨병만 단독으로 가지고 있는 분보다 동반 질환을 가진 분이 훨씬 많다. 대표적인 게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인데, 약 70%가 고혈압을 동반하고 이상지질혈증도 함께 가지고 있다. 체감상 진료실에서 보는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 세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데, 정작 세 가지 목표 수치를 다 달성하고 있는 분은 약 15.9%에 불과하다. 우리가 당뇨병을 열심히 치료하는 궁극적 이유는 결국 심혈관 질환을 줄이려는 것인데, 혈압이나 지질 수치를 그냥 둔 채 혈당만 잡으면 한계가 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동맥경화증을 촉진하는 '공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위험 인자를 함께 관리하는 '다인자적 접근'이 생존율을 높이는 길이다.

당뇨병 치료에 'ABCDE'를 기억하라던데.
그렇다. 당뇨병 치료에는 'ABCDE'라는 표현이 있다. A는 '헤모글로빈A1C(당화혈색소)' 즉 평균 혈당이고, B는 'Blood Pressure' 혈압, C는 'Cholesterol' 콜레스테롤, D는 'Diet' 식이, E는 'Exercise' 운동이다. 환자를 진료할 때 이 다섯 가지를 함께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진료 시간이 2분을 조금 넘는 정도여서,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다루기엔 의료진도 시간이 빠듯하고 환자도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점은 늘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환자들이 약의 개수에 대한 부담, 약 값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복용을 꺼리는 환자들도 많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환자분들이 정말 자주 하시는 말씀이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데, 꼭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뇨병은 감기처럼 며칠 약 먹고 낫는 병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환자분들께 "오래 먹어서 문제가 되는 약은 애초에 당뇨병 약으로 개발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다. 다른 약과 같이 먹을 때 문제가 없는지 등은 이미 충분한 임상 연구를 거쳐 검증되니, 처방받은 약을 잘 복용하시면 된다. 또 조절이 잘 되면 "이제 약을 줄일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데,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지금 안경 끼셨죠? 잘 보이니까 이제 도수를 좀 낮춰볼까요?" 그러면 다들 "그건 아니죠"라고 하신다. 약을 적게 먹는 게 목표가 아니라, 목표 수치를 유지하고 합병증을 만들지 않는 것이 목표다. 

당뇨병도 초기에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요즘은 환자를 설득할 만큼 좋은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다. '대사 기억(Metabolic Memory)' 또는 '유산 효과(Legacy Effect)'라는 개념이다. 초기에 철저하게 혈당을 조절한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이 5~10년 뒤부터는 비슷한 수준으로 혈당을 관리한다고 해도, 20~30년이 지난 시점에는 초기에 열심히 치료했던 군에서 합병증이 훨씬 덜 생긴다는 결과가 있다. 좀 우스운 비유 같지만, 나는 당뇨병 치료가 수능 공부의 '국·영·수' 기초 같은 거라고 말한다. 처음에 기본기를 잘 다져둔 학생은 고2 때 잠깐 놀아도 고3 때 정신 차리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반대로 기초가 없는 채 고3 때 갑자기 몰아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당뇨병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제대로 관리해 두는 것이 수십 년 뒤 삶의 질을 결정한다. '이제부터 잘하면 되지'가 아니다. 과거에 조절이 안 된 정도와 그 기간이 길수록, 20~30년 뒤 합병증도 그에 정비례해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연속혈당측정기는 당뇨병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준다|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요즘 연속혈당측정기(CGM) 같은 스마트 기기가 많이 도입되고 있다.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나.
당화혈색소 검사는 1년에 6번까지 보험이 적용된다. 최근 2~3개월 평균 혈당을 보는 검사라 1년에 적어도 3~4회 측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합병증 발생도 당화혈색소 수치에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약 30% 가까이가 1년에 한 번도 당화혈색소를 측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데이터를 보여주며 환자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진료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연속혈당측정기, 즉 보통 2주 정도 혈당을 계속 측정해 주는 기기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 환자들에게 비유로 설명하자면, 환자가 특정 시간에 한 번씩 혈당을 측정하는 것은 영화 '포스터'를 보는 느낌이다. 포스터만 봐도 어떤 영화인지는 대략 알 수 있다. 당화혈색소는 영화 '예고편'에 가깝다. 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연속혈당측정기는 유튜브에서 영화를 3~5분으로 정리해 주는 '요약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결말까지 알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환자가 직접 깨닫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환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보면서 깨우치는 점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국물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들어도 와닿지 않다가, 막상 국물 있는 음식을 먹은 뒤 혈당이 치솟는 그래프를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한다. 매운 음식이나 짠 음식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많이 먹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또 환자들 사이에는 '고기는 나쁘고 야채는 좋다'는 고정관념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같은 고기라도 스테이크나 수육처럼 먹으면 밥보다도 혈당이 안 올라간다. 반면 불고기나 양념갈비처럼 양념이 달고 짠 음식은 많이 올라가고, 탕수육이나 돈가스처럼 튀긴 형태는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즉 '고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조리하고 어떻게 간을 했느냐'가 핵심임을 환자가 직접 데이터로 깨닫게 된다. 이렇게 좋은 IT 기술을 활용해 환자에게 정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함께 조언할 수 있게 된 것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권태원 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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