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영화 '아파트'. 콘텐츠 제작 문법 바꿔가는 CJ ENM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5. 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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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영화 '아파트'(제공=CJ ENM)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콘텐츠 산업의 제작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효율 개선이 아니다. 제작 공정 전체를 다시 설계하고, 기술 기업과의 협업 구조를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기존에는 제작사가 중심이 되고 기술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기술이 제작 과정 깊숙이 결합되며 결과물의 완성도 자체를 좌우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이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CJ ENM(035760)이다. CJ ENM은 최근 AI 장편 영화 '아파트'를 공개하며 AI 기반 제작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작품은 배우의 연기를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뒤, 배경과 시각효과 대부분을 AI로 구현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제작됐다. 오컬트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징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기존 영화 창작 문법을 뒤흔드는 실험적 제작 방식이었다.

기존 영화 제작이 로케이션 이동과 대규모 세트 구축, 장기간 촬영에 의존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제한된 공간에서 핵심 연기를 확보한 뒤 디지털 기술로 세계관을 완성했다. 촬영과 후반 작업의 경계가 흐려지고, 물리적 제작 공정이 상당 부분 디지털로 대체된 게 차별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제작 조건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아파트'는 약 5억원 수준의 제작비와 4일 내외의 촬영 기간으로 탄생했다. 통상적인 장편 상업영화와 비교하면 비용과 시간 모두 획기적으로 압축된 셈이다. 이는 단순히 제작비를 줄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 방식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AI 영화 '아파트'(제공=CJ ENM)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점은 기술 기업의 역할 변화다. 제작 과정에는 Google Cloud의 AI 기술이 활용됐는데, 이미지 생성과 보정, 영상 생성 기능이 제작 파이프라인 안으로 들어오면서 결과물의 시각적 완성도를 함께 결정했다. 이는 기술이 더 이상 후반 작업 단계에서 활용되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기획과 제작 전반에 관여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한다. 콘텐츠 기업이 기술을 도구로 가져다 쓰던 구조에서 벗어나, 기술 기업이 사실상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는 협업 모델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CJ ENM의 전략은 개별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 출범한 'AI 콘텐츠 얼라이언스'는 기술 기업, 제작사, 교육기관을 하나의 협력 구조로 묶어 AI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보여줬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제작·기술·인재·유통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산업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접근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행보를 두고 AI를 특정 작품에 시험 적용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지속적으로 확장 가능한 제작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개별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넘어 AI를 활용한 제작 구조 자체를 표준화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비슷한 움직임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일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서 반복 배경과 군중 장면을 AI로 생성해 작화 공정을 줄이고 있으며, 디즈니와 픽사는 얼굴 애니메이션과 물리 기반 렌더링 과정에 머신러닝을 적용해 제작 시간을 단축하는 실험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요 스튜디오들이 AI를 단순한 실험 도구가 아니라, 제작 인프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분명하다.

AI 콘텐츠 얼라이언스 발족식(제공=CJ ENM)

다만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창작 영역에서의 완성도는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AI는 짧은 영상이나 이미지 생성에서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보여주지만, 장편 콘텐츠에서는 장면 간 연결의 자연스러움이나 감정선 유지 등에서 한계가 드러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결국 AI 결과물 역시 인간 창작자의 보완을 거쳐야 완성도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에 "창작성을 요구하는 작업일수록 AI를 활용하더라도 이를 검토하는 데에 상당한 인력이 소요되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인재다. 기술과 창작을 동시에 이해하는 융합형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AI 기반 제작 방식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제약이 존재한다. 현장에서는 기술을 다룰 줄 아는 인력은 늘고 있지만, 이를 콘텐츠로 구현할 수 있는 인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도입의 병목이 기술이 아닌 사람에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은 이미 바뀌고 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은 더 이상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기술 기업과 협업하고, 어떤 제작 구조를 구축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CJ ENM의 시도가 주목받는 것 역시 '아파트'라는 단일 결과물이 아니라, 그 뒤에 구축된 제작 방식과 협업 구조 때문이다. AI 시대, 콘텐츠 산업의 승부는 주어진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산업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