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K-메모리, 가지 않은 길로 ‘반도체 사이클’이끌 수 있을까[산업이지]

김세훈 기자 2026. 5. 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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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시설. 삼성전자 제공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구조 전환기를 맞았다” vs “주기가 길어졌을 뿐 등락은 피할 수 없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눈높이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공급 과잉으로 적자에 시달렸지만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의 수혜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내년까지 반도체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요.

이제 시장의 관심은 반도체 산업이 이른바 ‘사이클(산업이 불황과 호황을 반복하는 주기)’에서 벗어나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습니다. 산업이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2030년 이후까지 장기간 호황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2028년을 기점으로 ‘피크아웃(수요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현상)’을 맞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도체 주기적 급등락, 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통상 2~3년 주기로 등락을 반복해왔습니다. 이를 ‘반도체 사이클’이라고 부르는데요. 메모리 반도체가 사이클을 타는 건 고질적인 수요와 공급 간 불일치 때문입니다.

공급업체들은 신제품 출시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확 늘면 수요를 맞추려고 부랴부랴 설비 증설에 나섭니다. 문제는 생산이 늘어나기까지 시간이 2~3년 걸린다는 점인데요. 막상 증설 물량이 공급될 때쯤이 되면 수요는 안정을 찾습니다. 이러면 재고는 늘고, 가격은 급락합니다. 그러다 공급사가 감산에 나서면 다시 공급 부족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반복됩니다.

2018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65조원에 달해 ‘메모리 슈퍼사이클(초호황)’이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수요가 꺾이며 영업이익이 16조7000억원으로 급감했습니다. 2021년 42조원에 달하던 합산 영업이익은 이듬해 31조5000억원으로 줄어들더니, 2023년에는 22조6000억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호황 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사이클을 벗어나지는 못한 겁니다.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 연간 영업이익은 최대 6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전과는 기준점 자체가 달라진 것이죠. 그렇다면 산업의 성격도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양적으로 팽창했을 뿐 구조는 그대로일까요?

2013~2025년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 영업이익 합산 추이. 일부 과거연도는 반도체에 디스플레이 매출도 포함.
수요의 질적 전환·전략적 공급 ‘이번엔 진짜 다르다’

분명 산업 구조가 바뀌었다고 볼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간 메모리 반도체의 주된 수요층은 PC와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였습니다. 신제품이 나올 때 수요가 확 늘었다가 이후 점차 감소하는 제품군이죠. 한 사람이 같은 전자기기를 여러 개 살 일은 거의 없으므로 수요 증가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AI 데이터센터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AI 성능이 데이터센터 연산에 비례한다는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수요의 ‘천장’이 없습니다. 에이전틱AI(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는 AI)·온디바이스 AI(IT기기 안의 AI) 등으로 수요가 확산하면서 수요층이 다변화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 요인입니다.

공급업체들의 학습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사는 첨단 메모리 분야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분기 등 짧은 주기로 공급 계약을 했다가 계약 취소로 낭패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재 빅테크들과 3~5년 단위 초장기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수요가 주춤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가격 하락은 막겠다는 것이죠.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같은 첨단 메모리 제품은 이미 내년 말까지 대부분 입도선매가 된 상황입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AI 추론 수요의 고도화로 메모리 사이클은 약 2년 주기로 반복되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메모리 수요와 공급 부족은 단기적인 사이클에 의한 현상이 아닌, AI 발전에 의한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라고 분석했습니다.

공급 증가 ‘상수’, AI 확산 ‘변수’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하지만 사이클 주기가 길어졌을 뿐 등락은 필연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두 회사의 막대한 영업이익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영향이 큽니다. 메모리 반도체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병목으로 여겨지면서 가격이 1년 전보다 50~100% 올라갔기 때문이죠. 하지만 향후 점차 공급이 늘면 가격 상승세가 꺾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늘리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올해부터 청주캠퍼스에서 HBM용 D램 생산에 나서고, 내년에 용인 클러스터 공장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범용 D램·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중국업체들의 ‘공급 폭탄’도 우려 요소입니다. 현재 CXMT와 YMTC 등 중국 대표 반도체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공장 증설에 나서는 상황입니다. 이들의 증설이 끝나는 2028년쯤에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급 과잉’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메모리 가격이 계속 고공행진 하는 것이 수요 확산세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대체재 찾아 나서거나, 생산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IT정보분석기관 가트너는 올해 메모리값 급등으로 PC·스마트폰 출하량이 각각 10.4%, 8.4%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AI 버블’ 리스크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군비경쟁’을 하듯 데이터센터에 투자하고 있는데요. 정작 AI 도입이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데이터센터 구축 속도를 늦출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설비투자 흐름이 1차로 꺾일 2029년 전후가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8일 통화에서 “2029년에는 반도체 공급이 늘어난다는 건 상수고, 사이클을 결정하는 변수는 AI 수요”라며 “그간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원칙이 통했지만 AI 시대는 우리가 가보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그 공식이 통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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