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나 유재석 같은 리더 없어도 '구기동 프렌즈'가 빛나는 이유

박진규 칼럼니스트 2026. 5. 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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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동 프렌즈’, 삶은 혼자 하지만 함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예능 <구기동 프렌즈>를 보노라면 20여년 전 인기를 끌었던 SBS <패밀리가 떴다>가 떠오릅니다. 두 예능 모두 낯선 환경에서 함께 살며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패밀리가 떴다>는 유재석을 중심으로 이효리, 김수로, 빅뱅의 대성 등이 함께 시골로 MT를 떠나는 스토리의 예능이었습다. 최근까지도 사랑받는 여행과 관찰 예능 조합의 시초격인 셈이죠.

특히 <패밀리가 떴다>의 인기는 유재석과 이효리가 보여주었던 그 중심 없는 어수선함에 있습니다. 유재석과 이효리는 한국 사회에서 리더의 존재가 과거와 달라지던 시대를 반영합니다. 이효리가 나는 터치 안 할 테니 다들 '네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방목하는 리더 유형이라면, 유재석은 부드러운 리더십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유재석이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수많은 패밀리를 끌고가는 모습은 그 이전 세대에는 없던 리더십입니다.

그 전까지의 한국에서의 리더는 B사감이나 호랑이 선생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엄격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면 질서가 잡히지 않는다는 믿음 같은 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재석이 <패밀리가 떴다>나 MBC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이제 시대가 유연하고 부드러운 리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재석의 롱런에는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대중들은 여전히 지금 시대가 원하는 리더의 모습을 유재석을 통해 체감합니다. 아마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그런 리더를 찾기가 또 어렵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반면 <구기동 프렌즈>에는 20년 전 <패밀리가 떴다>와 달리 리더의 존재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시대의 변화와도 통합니다. MBC <나 혼자 산다>의 성공처럼 이제 사람들은 무리보다 혼자의 편안함을 더 좋아합니다. 또한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각자 편안하게 살아가는 노하우를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각자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춰 하나의 혜성처럼 이 세계를 살아갑니다.

<구기동 프렌즈>는 구기동의 한 집에 모인 장도연, 최다니엘, 이다희, 장근석, 안재현, 경수진의 이야기입니다. <구기동 프렌즈>의 멤버들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1980년대생 남녀라는 건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1980년대생들은 누구보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오히려 어떤 무리 속에서 섞여 있는 데 편안함보다 불편을 느끼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과연 코쿤 속의 안락함만으로 모든 게 채워질 수 있을까요? <구기동 프렌즈>는 그 지점에 질문을 던집니다.

<구기동 프렌즈>는 이들 80년대생 남녀들에게 미션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라고 말하지도 않고, 친해지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유재석 같은 리더도 없기 때문에 이들은 누군가를 따라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구기동 하우스 방목장에서 이들은 서로 거리감을 유지하며 친밀함을 쌓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단 그 시작은 서로의 입장과 개인적인 삶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루틴이 모두 다르고, 그에 개입하지 않으며, 혹시나 개입하려면 예의를 지키는 것이죠.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구기동 프렌즈>에서는 빛을 발합니다.

이후 좀 더 가까워진 <구기동 프렌즈>의 멤버들은 혼자서는 할 수 없던 것들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합니다. 아주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모여서 밥을 해먹거나 짜장라면 끓여 먹기, 같은 동성끼리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아침 시간을 보내기, 정장을 맞추러 가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기, 뭐 이런 사소한 즐거움입니다. 그 사소한 즐거움이 일상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훨씬 즐거워지는 것이기는 합니다.

이처럼 <구기동 프렌즈>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공감가는 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은 혼자 하지만 함께'이기도 하다는 것.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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