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장비 다 깔아줄게”…빅테크, SK하이닉스에 ‘생산기지 투자’ 파격 제안
첨단 노광 장비 구매까지 논의
‘메모리 공급난’에 자금 지원 폭주
장기공급계약(LTA) 구속력 강화 목적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SK하이닉스(000660)에 수십조 원의 생산라인과 대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첨단 장비 구매까지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투자 제안을 보내고 있다.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메모리를 핵심 자산으로 여기기 시작한 빅테크들이 이제는 장기공급계약(LTA)을 넘어 ‘인프라 선점 경쟁’까지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생산라인 투자와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구매 자금 지원 등 다양한 제안을 받았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총 31조 원을 투입해 구축 중인 제1공장(Y1)에 대해서도 빅테크 측의 직접적인 투자 제안이 나왔다.
빅테크들이 백지수표를 던진 배경에는 전례 없는 ‘메모리 공급난’이 자리 잡고 있다. 메모리는 현재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서버용 D램부터 중앙처리장치(CPU) 등 일반적인 연산 장치에 들어가는 범용 D램까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AI 추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 수요마저 급증했다.
강력한 수요를 반영하듯 SK하이닉스의 1분기 D램 평균판매단가(ASP)가 전분기 대비 60% 이상, 낸드는 70% 이상 급등했다. 수요 급증을 감당할 캐파(Capa·생산능력)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현재 가용 캐파는 사실상 제로(0) 상태이며 특정 고객사에 추가 배정할 수 있는 여유 물량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안이 장기공급계약(LTA)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공급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는 최근 선급금 규모를 전체 계약액의 약 30% 수준으로 설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메모리 가격이 급변하더라도 사전에 정한 하한선과 상한선 안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계약을 타진하고 있다.
이에 빅테크들은 설비투자(CAPEX)를 SK하이닉스와 분담하는 방식을 역으로 제안하며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로부터 빅테크 전용 생산라인을 배정받는 대신 장비 구매와 시설 투자 비용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빅테크의 파격적인 제안에 신중한 입장이다. 특정 고객사의 자금을 받아 생산라인을 구축할 경우 향후 업황 변화 시 수요가 감소한 고객사에 물량을 우선 배정해야 하거나 시장 가격보다 낮은 수준에 제품을 공급해야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들과 메모리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하면서 이를 구속하기 위한 다양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제안을 건넨 빅테크 기업으로는 엔비디아·구글·아마존 등이 거론된다. 이들 기업은 지난 1년 간 모두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이상의 현금흐름을 만들 정도로 막강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 엔비디아는 현재 주력 제품인 루빈 GPU를 넘어 차세대인 루빈 울트라와 파인만 GPU에 탑재될 HBM 물량까지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글과 아마존 역시 맞춤형 AI 반도체 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메모리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르면 내년 2월 용인 Y1 가동을 앞두고 있으며 업계는 내년 말까지 월 3만장 수준의 D램용 웨이퍼 생산 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청주의 신규 팹인 M15X는 이번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산 확대에 나서며 연말까지 월 7만 장 수준의 D램 웨이퍼 생산 역량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석진 기자 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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