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마음이 만들어낸 진흙 괴물, 이제는 꼭 껴안아 줄래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

수업이 끝나고 오빠가 데리러 와도 뚱한 표정의 유키. 유키는 오빠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이 전깃줄처럼 뒤엉킨 유키에게 오빠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항상 저만치 앞서 걸으니까. 여느 날처럼 오빠 뒤를 따라 걷다 심술이 난 유키는 집 열쇠를 하수구 안으로 던져버린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유키는 깜짝 놀라 열쇠를 찾으러 하수구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긴 사다리 끝에서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인 거대한 진흙 괴물을 만난다.
유키는 진흙 괴물을 따라 짜증, 질투, 불안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지하 세계를 탐험한다. 사람들이 화났을 때 던져 버린 물건을 모아 놓은 ‘짜증 쓰레기 박물관’에선 오빠의 강아지 인형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빠도 언젠가 이곳을 헤맨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수구 아래로 자신을 찾아온 오빠의 진심에 마음을 연 유키가 돌아가려 하자 괴물은 진흙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때 유키가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한다. “난 너 하나도 안 무서워. 다시 여기 와서 놀게.” 상냥한 다독임에 거대하게 덮쳐왔던 진흙 괴물은 빠르게 녹아내려 아주아주 작아진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를 통해 어린이가 자신도 몰랐던 복잡다단한 감정의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하수구 밑 지하 세계는 어두운 감정들이 억눌려 있는 마음의 밑바닥이다. “네가 거짓말을 할수록 나는 자꾸자꾸 더 커져”라고 말하는 진흙 괴물은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 덩어리가 잔뜩 엉겨 붙은 또 다른 나를 보는 듯하다.
오빠의 인형을 발견하는 장면은 누구나 마음속 진흙 괴물을 키우고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위안과 묘한 안도감을 준다. 나를 넘어 타인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진흙 괴물이 덮쳐올 때 애정을 담아 꼭 껴안아 주면 얌전해진다는 사실을 배운 유키는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마음까지 직시하고 끌어안을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한 뼘 더 성장한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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