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마음이 만들어낸 진흙 괴물, 이제는 꼭 껴안아 줄래

강유빈 2026. 5. 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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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의 한 장면. 라임 제공

수업이 끝나고 오빠가 데리러 와도 뚱한 표정의 유키. 유키는 오빠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이 전깃줄처럼 뒤엉킨 유키에게 오빠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항상 저만치 앞서 걸으니까. 여느 날처럼 오빠 뒤를 따라 걷다 심술이 난 유키는 집 열쇠를 하수구 안으로 던져버린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유키는 깜짝 놀라 열쇠를 찾으러 하수구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긴 사다리 끝에서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인 거대한 진흙 괴물을 만난다.

유키는 진흙 괴물을 따라 짜증, 질투, 불안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지하 세계를 탐험한다. 사람들이 화났을 때 던져 버린 물건을 모아 놓은 ‘짜증 쓰레기 박물관’에선 오빠의 강아지 인형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빠도 언젠가 이곳을 헤맨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수구 아래로 자신을 찾아온 오빠의 진심에 마음을 연 유키가 돌아가려 하자 괴물은 진흙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때 유키가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한다. “난 너 하나도 안 무서워. 다시 여기 와서 놀게.” 상냥한 다독임에 거대하게 덮쳐왔던 진흙 괴물은 빠르게 녹아내려 아주아주 작아진다.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의 한 장면. 라임 제공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를 통해 어린이가 자신도 몰랐던 복잡다단한 감정의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하수구 밑 지하 세계는 어두운 감정들이 억눌려 있는 마음의 밑바닥이다. “네가 거짓말을 할수록 나는 자꾸자꾸 더 커져”라고 말하는 진흙 괴물은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 덩어리가 잔뜩 엉겨 붙은 또 다른 나를 보는 듯하다.

오빠의 인형을 발견하는 장면은 누구나 마음속 진흙 괴물을 키우고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위안과 묘한 안도감을 준다. 나를 넘어 타인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진흙 괴물이 덮쳐올 때 애정을 담아 꼭 껴안아 주면 얌전해진다는 사실을 배운 유키는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마음까지 직시하고 끌어안을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한 뼘 더 성장한다.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이현경 옮김·라임 발행·56쪽·1만7,800원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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