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interview] “막는 게 그냥 좋았습니다” GK의 운명을 타고난 박준혁의 '프로 10년' (1편)

[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어떤 자리인가. 최후방에서 바위처럼 고독하게 버티는 존재, 그들의 어깨는 팀의 승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다. 그 무게를 이겨낸 골키퍼들은 불꽃같은 투쟁심과 수비진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무장한다. 그래서인지 K리그 역사를 빛낸 ‘골키퍼’ 박준혁을 만나기 전 현장에는 자연스레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처음 마주한 박준혁의 모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인자한 미소와 눈빛이 우리를 반겼다. 왠지 모르게 그의 얼굴에서도 약간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초보 인터뷰어를 향한 베테랑의 배려였을까. 덕분에 인터뷰 내내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자신의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야기의 보따리를 푼 그는 적절한 유머 감각도 곁들이며 인터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16년이라는 시간은 선수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수많은 이름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박준혁은 골문 앞에서 자신의 시간을 쌓아왔다. 커리어의 황혼기를 맞이한 지금, 박준혁은 현재 양천 TNT FC에서 '플레잉 코치'라는 새로운 직책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아이들도 가르치고, TNT에서 플레잉 코치를 하면서도 주로 선수로 많이 출전하고 있다. 과거 선수 생활보다 요즘이 더 바쁘다"며 웃음 지었다.
그가 새로운 둥지를 튼 TNT FC는 프로 진출의 문턱에서 아쉽게 기회를 놓쳤거나 운이 따르지 않았던 선수들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독립구단, 이른바 '재기 전문 구단'이다.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여전히 현역으로서 치열하게 땀 흘리고 있는 골키퍼 박준혁. 그가 걸어온 시간, 그리고 여전히 필드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IF 기자단 7기’가 마주했다.
# 축구 선수 박준혁이라는 서사, 그 시작

‘골키퍼’ 박준혁의 출발은 특별한 사건보다 순수한 끌림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러 포지션 중에서도 그가 골문 앞에 서게 된 이유 역시 복잡하지 않았다.
-식상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축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여느 축구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축구부 소속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중 진지하게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렇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죠.
-그럼 많은 포지션 중에서도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특별히 맡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일단 그냥 공을 막는 게 좋았어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그냥 제가 좋아서 하게 된 것 같아요. 살면서 좋아해 본 것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축구, 그리고 골키퍼라는 이 포지션이 가장 좋았습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으로 축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되어줬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유소년 시절 골키퍼로 성장해 오면서 롤 모델로 삼았던 선수가 따로 있었나요? 그 롤 모델을 닮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 부분도 궁금합니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김병지 선수를 롤 모델로 삼았어요. 이제는 ‘병지 삼촌’이라고 편하게 부르기도 하는 존경하는 선배님입니다. 해외 선수 중에서는 반 데 사르 선수를 동경했어요. 제 생각에 이 두 선수는 골키퍼로 뛸 때 가장 군더더기가 없는 선수들이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크게 받았던 것 같아요. 반 데 사르 선수의 경기는 새벽에 일어나서라도 꼭 챙겨봤었어요. 병지 삼촌은 프로 1년 차 때 플레잉 코치로 계셨었는데 특별히 옆에서 볼 수 있었죠. 몸 관리하는 것부터 생활 전반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노력했었습니다.

-박준혁 선수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에서 그렇게 신장이 큰 편의 선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부분이 있나요?
누구보다 성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 운동은 거르지 않고 나갔어요. 점프 탄력을 키우기 위해 줄넘기를 특히 많이 하기도 했어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공이 어디로 흐를지 예측하는 능력이나 경기를 읽는 눈을 키우는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유소년 시절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경기도 좋아요.
고등학교 선수 시절이 기억나네요. 부산MBC배 전국대회 4강전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꾀병을 부리는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 그날은 배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태였어요. 결국 경기를 뛰지 못했고 바로 응급실에 가서 링거를 맞았죠. 장염이었어요 (웃음).
그날 경기는 후배가 대신 뛰었는데 3-3 무승부에 승부차기까지 가서 이겼다고 했어요. 그 후배 골키퍼는 승부차기를 잘 막기로 유명한 이범영 선수에요.
# 선수 시절 : 프로에서 버텨낸 시간, 그 위대한 여정의 시작
‘프로’라는 길은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 길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끈질기게 버티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 현실을 처음 마주했던 ‘신인’ 박준혁은 축구를 향한 남다른 애정과 집요한 노력을 바탕으로 골문 앞을 지켰다.
-프로에서 첫 경기를 나섰던 순간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프로에서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순간에 대한 기억이 있을까요?
프로 첫 경기 출전을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했던 것 같아요. 프로 2년 차에 대구에서 K리그 데뷔를 했어요. FC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을 했었습니다. 그 경기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어요. 그 당시 FC서울은 데얀이나 몰리나 같은 유명한 선수들이 많은 강팀이었고, 이에 반해 대구는 지금과는 달리 인프라가 부족한 중하위권 정도의 팀이었어요.
이 경기를 2-0으로 이겼어요. 정말 긴장을 많이 했던 첫 선발 출전 경기였고 서울처럼 강한 팀을 클린시트로 이길 수 있어서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하늘이 아직도 생각나요. 정말 아름다웠어요(웃음).
-‘프로는 확실히 다르다’라고 느낀 순간도 있었나요?
공 잘 차는 선수는 정말 많아요. 하지만 프로 무대는 실력만 있다고 해서 살아남는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매해 계속 느꼈는데, ‘멘탈’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기 싫어서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선수들이 살아남는 것 같고, 또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선수들이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프로 무대는 그런 선수들이 오는 곳인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프로는 유소년 시절과 특별히 달랐습니다.
# 성남에서 맞이한 전성기부터 ‘영원한 FA컵의 사나이’가 되기까지
경남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고, 대구에서 꿈에 그리던 K리그 데뷔를 이룬 신예 골키퍼 박준혁. 경험을 쌓으며 차근차근 성장한 박준혁은 성남FC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K리그를 대표하는 골키퍼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준혁이라는 선수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아이코닉 모멘트’는 FA컵에서의 신들린 선방이다. 2014년 성남에서 결승 MVP를 수상하며 첫 우승을 견인했던 순간, 그리고 2021년 전남에서 일궈낸 두 번째 우승의 순간까지. ‘FA컵의 사나이’ 박준혁의 영광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K리그 시절에 여러 팀에서 뛴 경험이 있습니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어떤 팀인가요?
사실 있었던 팀들이 다 좋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좋은 팀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성남이 그래도 좀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애정이 간다고 해야 할까요? 축구 적으로 보면 커리어에서 가장 폼이 좋았던 때였거든요.
-사실 저희도 박준혁 선수의 성남 시절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성남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혹은 순간이 있을까요?
당연하겠지만 2014년 FA컵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일단 그때 팀 자체가 좀 힘들었고 강등권에서 살얼음판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리그에서 강등도 신경 쓰느라 바쁜데 FA컵에서 결승에 올라갔었죠.
4강에서는 전북이랑 했었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이 경기 지면 그 여파로 강등까지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순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위기 상황도 잘 넘어가고 해서...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서 전북을 이기고 결승에 갔어요. 그다음이 서울을 상대로 했던 대망의 결승전이었죠. 역시 FA컵에서 우승했던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승부차기에서 두 개를 막아서 제가 MVP까지 타고 해서요(웃음).

-오스마르와 몰리나, 정말 엄청난 선수들의 킥을 막으셨잖아요. 자세히 보니 몰리나 선수를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셨던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승부차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현재 성남FC 단장님이신 김해운 선생님이 그때는 골키퍼 코치셨어요. 김해운 단장님이 서울 선수들이 페널티킥 차는 영상을 보여주셨죠. 그래서 저도 저 나름대로 이 선수들이 어떤 자세 때 어디로 차는지, 대략적으로 보고 준비해서 들어갔었죠.
음... 근데 잘 모르겠어요(웃음). 선수가 섰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이쪽으로 찰 거 같았거든요. 제 나름대로 이제 페인팅을 좀 주고, 미끼를 던져놓고서 반대로 움직였는데 몰리나 선수가 그쪽으로 딱 차더라고요. 그날은 조금 촉이 좋았다고 할까요?
-성남이 FA컵 우승을 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까지 받게 되었잖아요. 아무래도 국제무대다 보니 K리그랑은 조금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느끼셨나요?
네, K리그랑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일단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니까 시차가 다른 것도 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일은 없잖아요. 이동하느라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습니다. 가까운 일본 정도는 그래도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또 잔디 적응도 어려웠죠. 그라운드 상태에 컨디션을 맞춰야 하는데 그걸 당일에 딱 맞춰야 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두 가지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중국은 약간 ‘떡 잔디’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잔디 적응이 특히나 쉽지 않았어요. 일본은 잔디가 진짜 좋아요. 거의 카펫입니다(웃음). 멀리서 보면 이게 인조잔디인지 천연잔디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팀들은 웬만하면 다 데이터가 있잖아요. 감독의 전술이나 상대 선수의 플레이 특징 같은 데이터가 몇 년 동안 축적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나라 가면 용병들도 매년 다르고, 선수들도 데이터가 많이 없다 보니까 전력분석 측면에서 미리 준비하는 것도 조금 미흡했던 것 같긴 해요.

-2015년 리그 32경기에서 경기당 실점률이 ‘0점대’였습니다. 그 시절에 좋은 퍼포먼스를 유지할 수 있던 요인이 있나요?
네, 0.8이었나 그랬던 걸로 기억하네요. 프로에서 나름 연차가 쌓여서 한 시즌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데이터를 쌓아왔던 거죠. 한 시즌 내내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는 않거든요. 그 노하우를 김해운 단장님이 많이 알려주셨어요. 가끔 게임 전날에 저를 딱 부르셔서 말씀하세요. “이 게임에서 특히 집중하고 실점률은 줄여야 한다”라고 해주실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부르실 때마다 더 집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시즌 중간중간 그러다 보니까 풀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좋은 퍼포먼스가 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그해 실점률이 제가 제일 낮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베스트 골키퍼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절 안 주시더라고요(웃음). 순태형이 받았죠. 화용이형도 제가 받을 줄 알았다고 했었죠.
-2021년 전남 시절에도 FA컵에서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유독 FA컵에서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던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전남에서 FA컵 우승할 때, 그해 초반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축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좀 무섭더라고요. 종아리 근육이 한 10cm가 찢어졌었는데, 거의 반년 동안 재활해서 겨우 복귀했어요. 스프린트만 하면 종아리가 너무 아파서 저강도 러닝을 계속했어요. 그렇게 재활하고 복귀해서 뛴 첫 경기가 수원FC와의 FA컵 경기였습니다. 그때도 승부차기까지 갔었죠. 사람이 되게 힘들다가 경기 뛰니까 참 간절하더라고요. 연차가 좀 있었던 때였을 데도요. 그래서 간절하게 계속 뛰다 보니까 또 올라가고 올라가서 우승할 수 있었네요.
토너먼트여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지면 그대로 끝, 서든데스니까요. 그래서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요. 100% 할 거를 150, 180% 해서 더 죽도록 한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고요(웃음).

-큰 경기에 강하신 스타일인가요?
옛날에는 속된 말로 ‘쫄보’였습니다(웃음). 그때는 큰 경기 있으면 불안해서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더 하고 이런 스타일이었어요.
이것도 1년 차에 병지 삼촌 보면서 정말 많이 깨우쳤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삼촌은 당일에 새 축구화를 신고 새 장갑을 끼시더라고요. 저희 같으면 원래 끼던 거 끼고 신던 거 신어야지 안 불안하잖아요. 컨디션 안 좋으실 때도 똑같아요. “컨디션 어떠세요?” 하면 딱 한 마디만 하시죠. “컨디션으로 경기 뛰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경기 들어가면 또 잘하세요. 장비나 컨디션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이 그동안 해온 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나세요. 그런 거 보면서 멘탈적인 불안함을 많이 떨쳐낼 수 있던 것 같아요.
# 프로에서 보낸 10년, ‘클린시트 80개’라는 금자탑을 쌓다
2011년 K리그에 데뷔한 이후 박준혁은 2021년까지 프로 무대에서 활약했다. 철저한 몸 관리와 강철 같은 정신력, 적응력으로 10년을 보낸 박준혁은 프로 통산 251경기에서 80경기 클린시트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질문지를 받은 박준혁은 이런 기록을 세웠다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개인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팀의 승리를 위해 묵묵히 골문을 지킨 결과일 것이다. 자신이 쌓은 80개의 숫자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골키퍼에게 클린시트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프로 통산 80경기 클린시트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몰랐습니다. 신기하네요(웃음). K리그에서 300경기 가까이 출전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클린시트 80번을 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많이 했네요. 많이 했어요.
-일반 팬들은 클린시트보단 승, 무, 패 같은 기록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골키퍼 입장에서는 받아들이는 게 다를 것 같아요. 클린시트 기록은 골키퍼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클린시트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팀이 4-0으로 이기고 있는데 평소 같으면 막을 수 있는 볼도 조금 해이해져서 못 막을 수 있잖아요. 그거는 그 선수의 집중력이 부족한 거잖아요. 경기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한 골도 안 먹는 게 골키퍼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든 간에 자신이 오늘 이 경기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골 넣는 포지션은 아니다 보니까 그런 기록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골키퍼에게 골을 먹어본 적도 있지만요(웃음). 골키퍼한테는 한 경기 끝났을 때 본인이 쟁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까요?
-골키퍼한테 골을 먹어본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네, 제주에 있을 때 홈에서 인천이랑 경기를 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죠. 당시 인천 골키퍼는 권정혁 선수였어요. 정혁이 형이 골킥을 차고(웃음) 낙하지점을 예측해서 나갔는데 공이 바운드된 다음에 갑자기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뜨는 거예요. 그래서 나가다가 그대로 넘어가서 실점했던 적이 있어요(웃음). 다행히 끝나기 5분 전에 우리가 동점골 넣고 1-1로 비겼습니다. 그 경기도 사실 기억에 많이 남아요.
-골키퍼는 특히나 기상적인 부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포지션인가요?
네, 골키퍼는 특히 많이 받죠. 바람 불면 공이 오다가도 안 오고...특히 비 오면 공이 올 것 같은데 멈출 때도 있고, 멈출 것 같다가도 빗물 때문에 갑자기 튀어 오르는 경우도 많으니까 힘들죠. 날씨가 그러면 쉽지 않아요. 공은 점점 좋아져서 필드플레이어들이 찰 때는 날씨에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은데 골키퍼는 아닌 것 같아요.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실수 한 번이 실점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10년 동안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분명 경기를 망치셨던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실수한 적도 많았지만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해요. 방금 말씀드렸지만, 옛날에는 계속 자책하고 머리에 계속 실수가 맴돌고 그랬는데 1년 차에 많이 없어졌어요. ‘그럴 수도 있지’ 하고요. 저기 프리미어리그에 난다 긴다 하는 정말 좋은 골키퍼들도 실수하고 알 먹고도 하는데 내가 뭐라고...(웃음) 멘탈이 1년 차에 정말 좋아졌어요. 빨리 털어내는 법을 배웠죠.
‘골키퍼'는 마지막을 지키는 존재다. 10명의 선수가 앞을 보며 승리로 향할 때, 최후방에서 그들을 보며 승리를 지키는 것이 '골키퍼'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실수 하나가 곧 결과로 이어진다. 그들은 실점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실점에 그 누구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박준혁 역시 그 무게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에게도 쉽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무너지는 순간보다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더 많았기에, 그는 여전히 '지키는 존재'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IF 기자단의 말: 박준혁 선수의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콘텐츠 제작='IF 기자단' 7기
인터뷰=김서정, 이강석, 임유성, 윤현경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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