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KAI 지분 확대, 한국형 방산 생태계 재편의 신호탄 [기고]
장원준 2026. 5. 8. 13:43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의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지분 확대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다. 지분율 5%를 넘기며 '경영 참여'로 전환한 순간, 사실상 한국 방산 생태계 재편의 신호탄이란 평가다.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을 넘어, 항공·우주·AI·드론·무인체계를 아우르는 '국가대표 방산기업' 출현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방산시장은 이미 '통합 플랫폼 경쟁' 시대로 전환되었다. 러-우 전쟁과 중동 분쟁은 AI, 드론, 위성, 데이터가 결합된 전 영역 작전(All-Domain Operation)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제 전장의 승패는 개별 무기체계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센서와 플랫폼, AI와 데이터, 우주와 무인체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통합하느냐가 핵심이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방산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탈냉전, 그리고 현재 신냉전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인수합병과 산업 통합을 통해 성장해 왔다. 록히드 마틴, BAE Systems, Northrop Grumman, RTX 등도 항공·우주·전자·무장 분야를 통합하며 '종합 방산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했다. 유럽의 Airbus, Thales, Leonardo 역시 우주·방산 통합과 전략적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결국 글로벌 방산시장은 더 이상 개별 기업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산업 생태계와 통합 플랫폼 간 경쟁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화의 선택이 주목을 끌고 있다. 한화는 2014년 당시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 과정에서 제기됐던 수많은 회의론과 비판을 정면 돌파하며,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 20위권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성장했다.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방산·항공·우주를 아우르는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한화는 지상무기, 첨단항공엔진, 레이더, 우주 발사체 등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KAI는 국내 유일의 완제기 플랫폼과 위성·공중체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의 결합은 단순한 기업 협력을 넘어 항공기-엔진-전자-무장-우주를 연결하는 '완결형 방산 플랫폼 구조'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AI 기반 유무인복합체계(MUM-T), 드론, 우주체계, 차세대 공중전투체계 등 미래 전장의 핵심 분야에서 한국형 통합 방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향후 한화가 KAI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확보할 경우, 양사의 방산 매출은 약 100억 달러(약 15조 원) 규모로 확대되며 단숨에 글로벌 방산기업 15위권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외형 성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방산이 더 이상 '빠르게 성장하는 수출국'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미래 전장 체계를 주도하는 ‘글로벌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항공·우주·AI·무인체계까지 아우르는 통합 구조가 완성되고, 미국과 유럽시장 현지화 전략까지 성공적으로 결합될 경우 글로벌 Top 10 진입 역시 더 이상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중요한 전략적 질문이 등장한다. 과연 한국 방산기업이 글로벌 Top 10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해답은 BAE Systems의 성장 경로에서 찾을 수 있다. BAE Systems는 단순히 영국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미국 시장 현지화에 성공하며 사실상 '미국 방산기업' 수준으로 재편되었다. 미국 법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미 국방부 사업에 직접 참여했고, 미국과 유럽 공급망을 동시에 장악하며 글로벌 Top 4 방산기업으로 도약했다. 심지어 미국 BAE 매출이 영국 본사 매출을 상회하고 있다.
만약 한화가 이와 유사하게 'Hanwha Aerospace USA'를 중심으로 미국 방산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매출이 국내 사업 규모를 넘어선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현재 한화-KAI 통합기준 약 100억 달러 수준의 방산 매출 기반 위에 미국과 유럽시장 현지화 전략이 결합될 경우, 총 매출은 200~300억 달러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글로벌 Top 10 진입을 넘어 장기적으로 글로벌 Top 5 진입까지도 가능한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물론 이는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현지화, M&A, 보안 인증, 신뢰 구축 등 복합 전략이 요구되는 고난도 과제다.
문제는 여전히 '어떤 모델로 갈 것인가'다. 세계 주요 방산 강국들은 각각의 산업 구조와 국가 전략에 맞는 고유한 방산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프랑스는 병기장비청(DGA)을 중심으로 Thales, Dassault Aviation, Naval Group 등을 육성하는 '국가 주도형 내셔널 챔피언 모델'을 구축해 왔다. 반면 영국은 BAE Systems 중심의 사실상 'Big 1' 구조를 형성하면서도, 정부가 '황금주(golden share)'를 통해 핵심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스라엘은 IAI, 엘빗, 라파엘의 Big 3를 중심으로 군, 스타트업, 대학, 첨단 기술기업이 긴밀히 연결된 세계 최고수준의 민군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결국 주요국들은 단순히 기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안보 환경과 산업 경쟁력에 맞는 '국가 맞춤형 방산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결국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단순히 특정 해외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안보 환경과 산업 구조에 맞는 '한국형 방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즉, 영국식 '플랫폼 중심 통합 구조', 프랑스식 '국가 전략 통제 방식', 이스라엘식 '개방형 혁신 생태계', 그리고 BAE 사례가 보여주는 '미국 시장 현지화 전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한국형 하이브리드 모델이 필요하다. 한화-KAI 협력 역시 이러한 큰 방향 속에서 추진될 때 비로소 정부가 지향하는 전략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통합의 목적은 단순한 시장 지배력 확대가 아니라, 글로벌 수출 경쟁력 강화와 국가 차원의 기술 주권 확보에 있어야 한다. 방산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국가전략산업인 만큼, 규모 확대 자체보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방향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KAI가 가진 공공성과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의 성격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KAI는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라 한국형 전투기, 위성, 항공 플랫폼 기술을 축적해 온 국가 핵심 항공우주 자산이라는 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기업 중심 통합이 산업 생태계의 폐쇄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중소·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이 공동개발, 시험·실증, 공급망 참여, 해외 동반 진출 등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형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특히 AI, 드론, 소프트웨어, 반도체, 우주 분야는 민간 혁신기업의 참여 없이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넷째, 정부 역시 단순 승인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부는 전략적 조정자이자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필요시 영국식 '황금주(golden share)'와 같은 제도를 통해 국가 안보 핵심 영역에 대한 최종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시장 자율성과 국가 안보를 동시에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 진입을 위한 현지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앞으로 글로벌 방산 경쟁은 단순 수출이 아니라 미국과 NATO 공급망 내부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 방산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내 통합을 넘어, 미국·유럽 현지 생산과 M&A, 공동개발, 보안 인증 체계 구축까지 포함한 글로벌 산업 전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 과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KAI 노조의 반발 가능성, 기업 가치 산정에 대한 이견, 경쟁기업들의 견제, 그리고 정부 승인 문제는 이번 전략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다. 특히 방산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만큼, 산업 구조 개편은 국가 전략 차원의 판단 없이는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번 한화의 KAI 지분 확대는 단순한 기업 간 거래가 아니다. 이는 한국 방산이 '각자도생'에서 ‘통합 경쟁’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며, 동시에 어떤 산업 생태계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도전이다. 더 나아가 이는 한국 방산이 국정과제인 4대 방산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여는 사건일 수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누가 KAI를 인수하느냐'가 아니다. 어떤 산업 구조를 설계하고, 어떤 국가 전략 아래 글로벌 시장까지 확장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결국 이번 한화의 행보는 한 기업의 투자 전략을 넘어, 한국 방산의 미래 좌표를 둘러싼 거대한 실험의 시작일 수 있다. 앞으로 한화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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