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해외송금땐 하세월…8월에 ‘더쎈놈’ 온다는 소식에 개인들 발동동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6. 5. 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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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시행 예정 개정 특금법 시행령 놓고
국내 코인 투자자 ‘규제 역차별’ 우려 높아져
금액 무관 트래블룰 적용에 입출금 지연 우려
의심거래보고 100만건 넘겨도 수사의뢰 3%뿐
지난 10년간(2015~2024년) 의심거래보고(STR) 접수 및 법집행기관 제공 건수 추이. [자료 = 금융정보분석원]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이 모씨는 올해로 비트코인 투자 5년차다.

이 씨는 최근 본인 명의의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에 보유 중이던 약 1500만원 상당의 USDT를 국내 거래소 계정으로 옮기려다 막혔다. 거래소가 해외 사업자 위험도 평가를 이유로 입금을 보류한 것이다.

오는 8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본인 명의의 개인지갑에서 100만원 미만의 소액을 국내 거래소로 옮길 때도 트래블룰 절차가 새로 적용돼 대기 시간이 생길 수 있다.

“내 가상자산을 내 거래소 주소에서 내 개인 지갑으로 옮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이 씨의 토로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국내 코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번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오는 11일까지 입법예고가 진행되며, 규제개혁위원회·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7월 중 확정될 전망이다.

최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가 지난 4월 법제처에 제출한 의견서가 공개되면서 이번 개정안이 자금세탁방지(AML)라는 명분에 비해 실효성은 떨어지고 투자자 편의성만 훼손한다는 비판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8일 매일경제가 금융정보분석원(FIU) 자금세탁방지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금융회사들이 FIU에 보고하는 의심거래보고(STR) 건수는 2015년 약 62만건에서 2024년 108만건을 돌파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FIU가 이를 상세 분석해 국세청, 관세청, 경찰 등 법집행기관에 수사 단서로 제공한 건수는 매년 3만~5만건대에 머물고 있다.

최근 3년간(2022~2024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의심거래보고(STR) 심사분석 및 제공 현황. [자료 = 금융정보분석원]
특히 가상자산사업자(VASP)에 대한 FIU 신고 및 AML 의무가 부과된 2021년 3월과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 이전시 트래블룰이 시행된 2022년 3월 이후를 포괄하는 최근 3년(2022~2024년)을 기준으로 보면 금융회사가 FIU에 보고한 281만여건의 STR 중 실제 수사기관에 제공된 건수는 약 8만7000여건으로 그 비율이 단 3.1%에 불과하다. 나머지 96.9%는 FIU 내부 분석 단계에서 사실상 종결된다는 의미다.

‘많은 의심거래를 보고할수록 실제로 위법한 거래가 많이 적발된다’는 가설이 작동하지 않은 실정에서 국내 투자자의 거래 편의성만 선진국에 비해 더 많이 제약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국내 투자자가 개정안에서 가장 불편할 대목은 기존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 이전에만 적용되던 트래블룰 기준금액을 전면 폐지한 조항(제10조의 10 제1호)이다.

가상자산의 가치나 수량에 관계없이 ‘0원’을 초과하는 모든 이전 거래에 트래블룰을 적용하게 되면서 단 몇 만원 어치의 소액 송금조차 수신 사업자가 정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입금이 보류되고 대기 상태에 놓이게 된다. 주식과 달리 초단위로 가격 변동성이 높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입출금 지연은 투자자의 직접적인 재산상 손실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또한 이는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가이드라인(1000달러), 미국(3000달러), 싱가포르(1500SGD) 등 주요 선진국 트래블룰과 비교해도 가장 엄격한 수준이다.

선진국 중 가장 엄격한 트래블룰을 적용하는 EU는 원칙적으로 모든 금액에 트래블룰을 적용하지만 개인지갑에 대해서는 1000유로 미만 소액 거래에 대해서는 지갑 소유권 검증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또한 개정안(제10조의20 제7호 다목)은 1000만원 이상의 모든 가상자산 이전 거래를 일률적인 의심거래로 간주해 무조건 FIU에 보고하도록 강제한다.

닥사에 따르면 이 조항이 시행될 경우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5대 원화거래소의 STR 건수는 기존 6만3000여건에서 544만5000여건으로 약 85배 폭증하게 된다.

기존 특금법상 규제로도 접수된 보고의 96% 이상이 사장되는 실정을 감안하면 닥사가 개정안을 가르켜 “가치가 낮은 이른바 ‘오탐지’ 정보만 늘려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실질적인 자금세탁 적발 기능은 오히려 마비될 수 있다”고 비판한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1000만원 이상 거래가 의심거래로 간주됨에 따라 ‘강화된 고객확인(EDD)’ 의무가 반복적으로 작동하도록 확장된 해석이 가능한 조항(제5조의 2 제1항 제2호)도 있다.

합법적인 포트폴리오 재조정이나 단순 투자 목적의 거래를 할 때마다 거래 목적과 자금 원천을 소명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해외 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이행 수준을 국내 사업자가 자체 평가하여 거래를 제한하도록 한 규정(제10조의 20 제7호) 탓에 평가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국내 거래소들은 해외 거래소로의 송금을 사실상 차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선진국들의 규제 방향과도 엇박자를 낸다. 주요 선진국들은 일률적인 ‘보고 기반’ 접근이 아닌 ‘위험 기반 접근(RBA)’을 채택해 산업의 발전과 규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미국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는 당초 개인지갑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정보보고 규제를 추진하다가 무리한 상시 감시에 대한 부작용을 인정하고 2024년 이를 최종 철회했다.

현재 미국은 2000달러 이상이면서 동시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 경우에만 STR 의무를 부과한다. 유럽연합(EU) 역시 암호자산기본법(MiCA)을 통해 인가와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되 소액 거래에 대해서는 간소화된 의무를 적용하며 획일적인 전수 보고를 지양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단일화되어 있는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유독 한국 투자자들만 높은 ‘규제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직접 투자가 전면 개방돼 글로벌 자산 배분이 자유로운 전통 금융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갈라파고스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AML 체계 공고화라는 취지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규제의 실효성이 낮으면서 투자자와 사업자에게는 막대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결국 한국 투자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정 특금법은 8월 20일 시행되며 시행령과 감독규정 일부 규정은 내년 1월부터 8월까지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입법예고 기간 동안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 의견 제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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