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사랑의 묘약’… 치명적인 유혹과 철학적 해탈
비극적·웅장한 서사 ‘혁명적 걸작’
내밀한 인물 감정 변화·본질 집중
쇼펜하우어 ‘염세주의 철학’ 영향
“철학과 음악이 만난 위대한 유산”

인간은 물질적·정신적인 한계를 넘어 무언가 남과 다르게 차지하고 이루려는 욕망에 가끔 사로잡히곤 하며, 이러한 초월적인 힘에 관해 끊임없이 꿈을 꾼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 피터 파커가 실험 중 탈출한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지닌 영웅이 된다거나, 신의 능력을 갖춘 초인(超人)의 출현을 다룬 소설과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감정 표출 도구인 '사랑'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극복하려는 '묘약'에 대한 갈망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예술의 단골 소재로 각광받아 왔다.
오페라 무대 역시 이러한 '묘약' 이야기를 통해 대중과 깊이 교감해 왔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1832)>과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65)>를 꼽을 수 있다. 도니제티의 작품이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라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의 고통을 가장 아름답고도 처절하게 표현한 혁명적 걸작이다. 이 비극적이고 웅장한 서사 안에서 청중은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심연과 밝고 황홀한 장면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바그너는 13세기 중세 독일 시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원작을 놀라울 정도의 응집력으로 단순화하여 직접 대본을 썼다. 이 과정에서 무대와 등장인물, 구조를 간결하게 정돈하면서도 내면의 세계를 보다 극명하게 표출하고자 했다. 특히 슈트라스부르크의 원작에서는 묘약의 힘으로 사랑이 시작되지만, 바그너는 두 남녀 주인공이 묘약을 복용하기 이전부터 이미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설정을 도입했다. 이는 외부의 신비한 힘보다 인물의 내밀한 감정 변화와 본질에 더 집중하려는 바그너의 의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1막은 바다 위 배 안에서 시작된다. 기사 트리스탄은 숙부 마르케 왕의 신부로 이졸데를 데려가고 있다. 이졸데는 과거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트리스탄을 증오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고통을 끝내기 위해 동반 자살을 결심하며 독약을 마시지만, 시녀 브랑게네가 이를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치기하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서로의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2막은 마르케 왕의 성안에 있는 정원을 배경으로 한다. 불안과 기대감을 표출하는 전주곡이 흐른 후, 왕이 사냥을 떠난 밤을 틈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비밀스러운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신하 멜로트의 배신으로 현장이 발각되고, 트리스탄은 멜로트의 칼에 깊은 상처를 입으며 비극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이 작품은 약 4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 시간과 거대한 오케스트라 편성, 그리고 극악의 가창 난이도로 유명하다. 바그너는 외부의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와 철학적 사유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는데, 특히 집필 당시 심취했던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과 '의지와 표상' 이론은 '죽음으로의 귀의'라는 주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는 1854년 쇼펜하우어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내 평생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의 본질을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맹목적 욕망의 덩어리인 '의지'로 보았으며, 그렇기에 삶의 본질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바그너는 이를 오페라 전반에 흐르는 '트리스탄 화음'과 '무한 선율'로 완벽하게 치환해냈다. 결코 완전한 화음으로 해결되지 않고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는 반음계적 진행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즉 '영원히 갈구하는 의지'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바그너는 우리가 보는 세상을 '표상'이라 부르고 그 이면을 '의지'라 했던 철학을 '낮'과 '밤'의 대비로 풀어냈다. '낮'은 가식과 명예, 사회적 규범이 지배하는 '표상의 세계'로 두 연인에게 고통을 주는 공간인 반면, '밤'은 모든 개별성이 사라지고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의지의 공간'이다. 쇼펜하우어가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로 '의지의 부정(해탈)'을 제시했다면, 바그너는 이 철학적 해탈을 '죽음'으로 재해석했다. 이졸데가 마지막에 부르는 '사랑의 죽음'이 단순한 통곡이 아니라 황홀한 해방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주인공의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갈망을 멈추고 영원한 안식에 도달하는 궁극적인 결합인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 중 음악만이 본질인 '의지'를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라고 칭송했다. 바그너는 이 철학을 오페라를 통해 현실화시켰다. 이전까지 "음악은 대본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던 바그너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음악이 곧 드라마의 본체"이며 가사나 무대는 음악의 감정을 보조하는 역할임을 선언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처럼 철학과 음악이 만나 이뤄낸 장엄한 혁명이자,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Tip> 약 4시간 가까운 분량으로 특별하게 드러나는 아리아 없이 쉼 없이 진행되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을 전체 감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체를 감상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지휘자들이 연주회용으로 엮은 두 곡을 듣기를 추천해 본다. 먼저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이 곡은 서양 음악사의 물줄기를 바꾼 '전주곡'과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자,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죽은 트리스탄 앞에서 이졸데가 부르는 최후의 노래 '사랑의 죽음(Vorspiel und Liebestod)'이라는 관현악 버전을 먼저 들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