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명성’이란 무엇인가
(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명망(名望).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이 명성뿐 아니라 세간의 평판까지 좋아 인망(人望)도 함께 갖췄을 때 쓰는 말이다. 멀티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이른바 '셀럽'으로 불리는 유명 인사는 크게 늘어났지만, 명성과 함께 사람들의 선망을 받을 만큼 덕성과 실력을 겸비한 명망가를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반면에 명성만을 믿고,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말처럼 '꺼드럭거리는' 사람은 꽤 흔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 일상에서 여전히 유용한 위압의 표현으로 쓰이는 풍토가 만들어낸 부작용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명성에서 명망으로 넘어가는 길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 경지에까지 이르려면 존경을 받을 만한 성품, 태도, 실력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명성의 풍년' '셀럽 전성시대'를 살면서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사랑을 받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자연스런 현상이 공적인 부문에까지 무절제하게 침투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지난 4월18일 문화연대 등 65개 문화예술단체와 794명의 문화예술인이 서명해 발표한 성명서 내용도 그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이 정부 들어 이뤄진 IT 사업가 출신 최영휘 문화체육부 장관, 맛 평론가 출신 황교익 문화관광연구원장, 개그맨 출신 서승만 국립정동극장 대표 등의 인사를 정조준해 공공성과 전문성을 크게 훼손한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거명한 인물은 거개가 각 분야에서 나름의 경력을 쌓으며 대중에게도 인지도를 높인 유명인들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요직 임명을 두고 전문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보은성 인사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마따나 해당 인사들이 과거에 어떤 전력을 보였는지는 익히 드러나 있다.
명성 있는 사람이 명망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을지언정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에 직접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걱정이 되는 부분은 적지 않다. 열거하자면 이렇다. ①그들이 선거 때 무슨 정책 아이디어를 들고 선거운동에 참여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②유명인들에게 유력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해 열심히 활동하면 "나도 충분히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다"라고 잘못된 신호를 주는 선례가 되지 않을까. ③그런 이들이 공공기관의 장으로 낙하산이 되어 안착할 경우 나름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일해온 기존 조직원들에게 남겨질 상처는 얼마나 클까. ④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도 실적은 중요한 과제인데 그들은 그 자리에 맞는 역량을 제대로 갖췄는가. ⑤여지껏 유명인을 수장으로 앉혀서 제대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에 따른 인사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진 적이 있었는가다.
지금까지 선거 때를 즈음해 연예인 출신 유명 인사로서 후보 캠프에 참여하거나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활동했던 이들이 남긴 족적은 대부분 흐릿하다. 심지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한 배우는 자신의 국회의원 시절을 회고하며 "정치인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이참에 정치권은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 중에도 단지 명성의 힘만으로 공천을 받은 이가 없는지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보기를 바란다. 명성으로 일어선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 자리만 지키다 떠나거나 조직과 내내 불화하다 물러난다면, 그 꽃길을 만들어준 쪽이나 그 길을 선뜻 받아들여 들어선 쪽이나 모두 명망이 아닌 멸망의 길로 끝날 것임은 불을 보듯 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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