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홍의 공격적 M&A와 왕회장의 귀환, 사조그룹 ‘자산 5조’의 역설
[비즈니스 포커스]

창립 55주년 만에 자산 5조원을 돌파하며 대기업 반열에 오른 사조그룹. 3세 주지홍 부회장이 주도한 공격적 M&A가 그룹의 덩치를 키웠으나 그 이면에는 핵심 계열사의 수익성 악화와 부채 급증이라는 그림자가 짙다.
경영 전면에 전격 복귀한 주진우 회장의 행보는 확장 일변도였던 3세 경영에 대한 강력한 ‘브레이크’이자 보수적 내실 경영으로의 회귀를 시사한다.
55년 수산 외길…시험대에 오른 3세 경영
사조그룹의 모태는 1971년 창업주 주인용 회장이 설립한 원양어업 회사 시전사다. 그 뿌리는 주 회장이 앞서 운영하던 출판사 사조사에 있으며 이는 그룹명의 기원이 됐다.
1978년 주인용 회장의 별세로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중 귀국해 29세에 경영 지휘봉을 잡은 주진우 회장은 5년 만에 부채를 완납하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사조의 성장은 ‘국민 식탁’을 점령한 상징적 제품들과 궤를 같이한다. 1980년대 후반 ‘안심따개’로 혁신을 일으킨 사조참치는 선두 다툼 속 후발주자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다. 2004년 인수한 ‘해표 식용유’는 2026년 현재 27년 연속 브랜드파워 1위를 기록하며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 역할을 수행 중이다.
사조그룹의 외형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오너 3세 주지홍 부회장은 연세대와 미국 일리노이대(MBA)를 거쳐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에서 근무한 ‘전략통’이다. 2011년 사조해표 입사 이후 2015년 그룹 경영관리실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주 부회장은 데이터와 전략에 기반한 과감한 의사결정을 선호하며 식품 소재부터 유통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조그룹은 그간 끊임없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
2004년 신동방(현 사조해표)을 시작으로 2006년 대림수산(사조대림), 2007년 오양수산(사조오양), 2010년 남부햄(사조남부햄) 등을 잇달아 사들였다.
주 부회장은 이 같은 ‘M&A DNA’를 계승, 2016년 동아원·한국제분(사조동아원)에 이어 2024년 사조CPK와 푸디스트 인수를 직접 진두지휘하며 그룹의 덩치를 두 배 가까이 키웠다. 하지만 연이은 빅딜의 성과가 재무 건전성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주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푸디스트·사조CPK 인수로 ‘자산 5조’…과징금·부채의 그늘
사조그룹은 2025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대기업 반열에 합류했다. 현재 자산총액은 5조6000억원, 재계 순위 86위. 2021년 부회장 승진 후 주 부회장이 이끈 연쇄 M&A가 만든 성과다.
하지만 급격한 체격 키우기는 재무 구조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M&A 주체인 사조대림의 부채총계는 2025년 말 기준 1조3894억원이다. 이는 인수 전인 2023년 대비 약 151.7% 급증한 수치다. 특히 지난 3월 정정 공시에 따르면 사조대림은 당초 흑자 예상과 달리 73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이 같은 실적 쇼크의 배경에는 주 부회장 체제에서 편입된 사조CPK의 법적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사조CPK는 전분당 가격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약 848억원 규모의 대규모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2026년 4월 검찰은 반복적 담합을 근거로 임직원들을 기소했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전략적 인수가 오히려 그룹 전반에 재무적 부담과 사법 리스크를 안긴 셈이다.

왕회장의 21년 만의 복귀, 외형 성장에 가려진 내실 경고등
그룹의 중추인 사조산업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액 7062억원을 기록하며 6년 만에 7000억원대 매출을 회복했다. 영업이익 331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는 성공했으나 이는 원가 절감과 자산 효율화 등 ‘쥐어짜기식’ 경영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특히 참치캔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는 수산물가공유통 부문의 원가율 상승이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원양어업 쿼터 축소와 국제 시세 급등, 고환율 기조가 맞물리며 수익 구조가 외부 환경에 지나치게 취약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사조산업은 대중 브랜드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렵다”며 “동원F&B나 CJ제일제당 등 경쟁사가 프리미엄화와 신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을 때 사조는 여전히 전통적 수산 기업의 문법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주 부회장의 부친인 주진우 회장은 2025년 3월 사조산업 대표이사로 전격 복귀했다. 2004년 이후 21년 만이다. 지분 승계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3세 주지홍 부회장 체제가 안착하는 듯했던 상황에서 재계는 주 회장의 복귀를 사실상의 ‘감독관’ 등판으로 해석한다.
재계 관계자는 “주 부회장이 추진한 ‘토털 푸드 솔루션’ 전략이 외형은 키웠지만 경영 능력 검증에는 물음표를 남겼다”며 “주진우 회장의 복귀는 일종의 긴급 처방 성격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 회장은 복귀 직후 확장보다는 내실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조그룹은 올해 주총에서 ‘금속 포장 용기 제조’를 사업 목적에 추가하며 캔 용기 자체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에 매진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상장폐지설, 왜
사조그룹 지배구조의 또 다른 쟁점은 상장 계열사 관리 방식이다. 주지홍 부회장은 비상장 지주사 격인 사조시스템즈 지분 50.01%를 보유하고 있고 사조시스템즈는 사조산업 지분 44.3%를 통해 그룹 전체를 통제한다.
문제는 상장사인 사조씨푸드, 사조오양의 지분율이 각각 90%, 81%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장부가치(BPR) 대비 0.5~0.7배 수준. 저평가 상태가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폐지 요건(소액주주 비율 10% 미만)에 근접한 구조다.
시장 일각에서는 사조그룹이 주가가 낮을 때 지분을 추가 매집해 ‘자진 상장폐지’ 후 비상장 지주 체제로 전환하려 한다는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상장 폐지 절차가 간단하고 공시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조그룹에선 2019년 사조대림이 사조해표를 흡수합병하며 사조해표가 비상장으로 전환된 전례가 있다. 당시 소액주주 매수 청구 가격은 장부가치 기준으로 책정됐고 시장에선 “프리미엄 없이 밀어내기식 정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 부회장이 M&A 성과를 실질적인 수익 지표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사조의 3세 경영은 당분간 ‘왕회장’의 엄격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시험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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