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생산 中 햄스터에 의존?…계란이 해법 될까

이병구 기자 2026. 5. 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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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중국햄스터(학명 Cricetulus griseus). 위키미디어 제공

대표적인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 등 전세계 인기 의약품 대다수는 단백질 형태다. 이같은 단백질 의약품 생산의 70% 이상을 '중국 햄스터(학명 Cricetulus griseus) 난소 세포(CHO Cell)'라는 고비용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학계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CHO 세포를 대체할 차세대 생산 기반으로 '계란'을 제시하며 수십 년간 굳건히 유지됐던 단백질 의약품 생산 방식에 변화를 몰고올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 70년 넘는 '중국 햄스터 아성'

7일 과학계에 따르면 현재 CHO 세포 플랫폼은 전체 단백질 의약품의 70% 이상을 생산하며 절대적인 입지를 지키고 있다. CHO 세포의 역사는 연구용으로 사육되던 중국 햄스터가 미국으로 건너가며 시작됐다.

당시 생명공학자들은 염색체 수가 적은 세포주를 선호했고 중국 햄스터가 이에 부합했다. 주요 연구 대상이었던 대장균(학명 E. Coli)은 인간 체내의 복잡한 단백질이나 단백질 기반 의약품을 만드는 데 한계를 보였다. 박테리아인 대장균은 인간 세포와 달리 당 분자가 단백질에 결합하는 생화학적 과정인 당화를 수행하지 못해 설계한 단백질이 서로 뭉치거나 세포독성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재용 서울대 동물생명공학연구실 교수는 "중국 햄스터 난소 세포는 포유류 세포로 인간과 유사한 단백질 접힘과 당화를 수행할 수 있고 다른 세포주보다 유전 변이가 적어 규제기관 승인을 받기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미국 생물학자 시어도어 퍽은 '불멸화'된 CHO 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고 전세계 과학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불멸화 세포주는 돌연변이로 정상적인 세포 노화를 피하고 계속 분열하도록 조작된 세포들을 말한다. 시험관 내에서 장기간 배양될 수 있다.

이후 CHO 세포는 생명공학 발전을 이끈 대표 생물인 대장균에 빗대어 '포유류의 대장균'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편적인 연구 모델로 자리 잡았다.

중국햄스터 난소세포(CHO Cell)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위키미디어 제공

● 저비용·대량생산 '계란'에 주목

CHO 세포는 미생물보다 산소, 산성도(pH), 온도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기 때문에 고가의 제어 설비인 '바이오리액터'가 필수적이다.

한 교수는 "초기 생산 단가는 단백질 1g당 1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경제적이었다"며 "현재는 g당 100달러 수준까지 낮아졌지만 합성 배지와 성장 인자 공급 비용이 여전히 막대하다"고 설명했다.

CHO 세포를 다른 세포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지만 이미 전세계 단백질 의약품 생산 공정과 규제 승인 절차가 CHO 플랫폼에 맞춰져 있어 진입 장벽을 높였다. 한 교수는 "결국 의약품 생산 계획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산업 구조가 경직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한 교수팀을 포함한 일부 과학자들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계란 기반의 바이오리액터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 계란을 만드는 원시생식세포(PGC) 유전자를 재조합해 계란에서 단백질 의약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원리다. 

닭은 해마다 300개 이상의 알을 낳고 계란 하나당 약 100mg의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계란 10개만으로 1g의 목표 단백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CHO 세포 공장을 단순한 닭 사육 시설로 대체할 수 있고 고가의 배양액 대신 저렴한 사료 공급만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계란은 수천년간 식재료로 쓰여 안전성이 검증됐고 생산 규모를 자유롭게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는 재조합 단백질의 발현량을 높이는 것이 과제다.

미국 생명공학 스타트업 '네이온 바이오'는 계란으로 의약품을 생산하는 플랫폼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Neion Bio 제공

한 교수가 2022년 교내 벤처로 설립한 스타트업 아비노젠은 원시생식세포 유전자교정 기술 기반으로 단백질 생산과 기능성 조류 신품종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월 계란 기반 단백질 의약품 생산 플랫폼 상용화에 주력하는 미국 생명공학 스타트업 '네이온 바이오'도 글로벌 주요 제약사와 첫 공동개발 및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네이온 바이오는 인기 관절염 치료제인 휴미라의 전세계 수요를 충족하는 데 암탉 3900마리면 충분할 것으로 추산한다.

계란 외에도 온실에서 담뱃잎·벼·이끼 등을 활용한 식물 기반 대량생산법, 효모·곰팡이류 등 당화가 가능한 미생물을 개량하는 접근법도 있다. 배양을 생략하고 목적 단백질을 직접 합성하는 무세포 방식도 혁신적인 시도로 꼽힌다.

한 교수는 "미래 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기존의 CHO 세포 기반 시스템이 핵심적인 역할을 유지하는 가운데 신규 플랫폼들이 각자의 강점에 따라 시장을 나누어 맡는 분업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생물과 식물 플랫폼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보급형 의약품을 생산하고 계란 생체반응기 플랫폼과 같은 신규 플랫폼은 독보적인 안전성과 저비용 대량 생산 능력 등을 바탕으로 고기능성 항체 의약품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류 생식세포 조작, 멸종동물 복원에도 활용

생명공학 기술로 멸종생물을 복원하는 미국 기업 콜로설바이오사이언시스(이하 콜로설)는 지난해 9월 멸종한 도도새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존 친척인 니코바르비둘기(학명 Caloenas nicobarica)의 원시생식세포 배양에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멸종생물 복원은 유전자가 교정된 배아를 구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한 교수는 "조류의 알은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거내한 난황(노른자), 두꺼운 난백(흰자) 층으로 둘러싸여 포유류나 어류처럼 수정란을 직접 조작하거나 핵을 이식하는 방식은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멸종생물인 도도새가 야생에 복원된 모습을 상상해 묘사한 그림. Colossal Biosciences 제공

조류는 배아 발달 초기에 원시생식세포가 혈액을 타고 순환하다 향후 정소·난소로 발달하는 생식선에 안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유전자를 교정한 원시생식세포를 주입하면 차세대 생식기능을 담당할 세포들이 의도한 형질을 갖게 된다.

콜로설에 따르면 교정된 니코바르비둘기 원시생식세포를 발달 중인 병아리에 주입하면 니코바르비둘기의 생식세포를 보유하게 된다. 닭이 비둘기알을 낳는 것이다. 니코바르비둘기의 유전자를 적절히 교정해 도도새 유전자를 복원하고 닭이 '대리모' 역할을 해 도도새를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콜로설은 멸종동물 복원 측면에서, 아비노젠과 네이온 바이오 같은 기업은 산업 측면에서 원시생식세포 기술을 활용한 셈이다.

한 교수는 "원시생식세포 기술은 종 복원을 넘어 조류 생명공학 전반의 핵심 인프라"라며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성 부여, 성별 감별 및 도태가 필요 없는 생산 공정 구축, 특정 기능성 성분이 강화된 계란 개발 등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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