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 갇힌 시간들…외면 받은 한센인 삶 알리고파”

광주일보 2026. 5. 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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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손자가 태어났지만 한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한 한센인 할머니가 있었다.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가족 곁에 머물 수 없었던 할머니는 손자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무렵 소록도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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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로 퇴직 후 르포 소설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 출간한 오문수 씨
손자 얼굴만 바라보다 하늘로 떠난 할머니…소설이 된 그리움
영문판 동시 출간…9일 여수시 청소년해양교육원서 북콘서트
오문수(맨 왼쪽)씨는 책 집필을 위해 한센인들이 살았던 산청 성심원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성심원에서 50년간 한센인을 위해 봉사해 온 스페인 유의배(가운데) 신부, 엄삼용 원장과 촬영한 사진. <오문수 씨 제공>

사랑스러운 손자가 태어났지만 한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한 한센인 할머니가 있었다.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가족 곁에 머물 수 없었던 할머니는 손자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무렵 소록도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끝내 할머니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던 손자는 수십 년이 흐른 뒤 한센인의 생애를 소설로 펴냈다.

한센인 할머니에 대한 유년시절 기억을 담아 소록도 한센인들의 애환 섞인 삶을 그려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여수 여도중학교에서 30년간 영어교사로 재직한 오문수(73) 씨가 최근 소록도 한센인 이야기를 다룬 소설 ‘올무에 걸린 아기 사슴’을 출간했다. 한국어판과 영문판으로 동시 출간됐으며 일본어판도 준비하고 있다.

480여 쪽 분량의 소설 제목의 ‘올무’는 올가미를, ‘아기 사슴’은 소록도를 의미한다. 소설에는 강제 격리와 노역, 고문으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소록도 한센인들의 증언과 사진이 오롯이 담겨 있다.

소설은 한센인이었던 할머니에 대한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매년 11월 농사가 끝나면 아버지는 홀로 고흥을 찾으셨지만 이유를 물어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셨어요. 시간이 지나서야 할머니가 한센인이고 손자가 놀랄까 싶어 자는 얼굴만 들여다보고 떠나셨단 사실을 알게됐어요. 그 사실을 자식에게조차 숨겨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할머니와 그 가족들이 외로운 세월을 어찌 견디셨을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어요.”

교직 생활 중 승진 문제로 고뇌하던 시절, 그는 이끌리듯 소록도를 찾았다. 하얀 백사장을 수없이 거닐며 번민하던 그는 소록도 행정실을 찾아 할머니의 사망 연도를 확인했다.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맞이한 이별은 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아픔으로 남았다.

소설 집필은 “할머니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됐다. 소설을 준비하며 5년간 4만 쪽에 달하는 녹취록과 한센인 100년사 등을 탐독했고 30여 차례 소록도를 찾았다. 또 남원, 익산, 진주, 삼천포, 부산에 이르기까지 한센인의 흔적이 남은 곳이라면 어디든 방문했다. 특히 경남 산청에서 50년 간 한센인을 위해 봉사해 온 스페인 유의배(Uribe) 신부와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녹취록을 읽으며 여러 번 울었어요. 진주에 고추를 팔러 버스를 탔다가 한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차를 강요당한 이야기, 친척도 부모도 자식도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신에게 울부짖는 이야기까지.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취재 초반 한센인들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옆에 앉아 말을 건네도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오 씨는 지난해 4월 한센인들의 애환을 느껴보기 위해 2박3일간 순천역에서 소록도까지 걸었다. 오른쪽 엄지발톱이 빠질만큼 힘든 여정이었지만 한센인들이 겪었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런 오 씨의 마음이 한센인들에게 닿았고 그들은 비로소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일본이 한센인에게 공식 사과와 보상을 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아직 공식 사과조차 하지 않았어요. 우리 정부는 반드시 반성해야 합니다. 한센인들의 한 맺힌 삶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 소설은 오는 9일 오후 2시 여수시 청소년해양교육원 대강당에서 열리는 북콘서트와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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