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도설장구, 온몸으로 빚어낸 리듬의 예술

전남일보 2026. 5.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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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 김오채와 남도설장구론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지난 3일 담양공고체육관에서 개최한 김오채 탄신100주년 300인 장구 외 전국 전통예술축제

남의 말에 서로 호응하거나 동의할 때 흔히 '맞장구친다'고 한다. '곁장구'라고도 하고 '맞장단'이라고도 한다. 남의 행동을 뒤에서 꼬드기는 짓을 비유적으로 '장단'이라 하고, 바로 집어 말을 하지 않고 둘러서 말하는 것을 '변죽 울린다'고 한다. 장구 가죽의 복판과 가장자리를 두고 생긴 말이다. 국

악의 리듬 시스템을 '장단(長短)'이라고 하는데 시가(詩歌, 시와 노래) 문학의 말 붙임새와 더불어 리듬을 조성하는 장구에 연원을 둔 용어다. 장구는 긴(長) 북(鼓)이라는 뜻에서 왔다.

노루 가죽(獐)과 개 가죽(狗)을 사용해서 장구(獐狗)라고 했다는 등 후대의 주장도 있다. 본 명칭은 '채(杖)로 치는 북'이라는 뜻의 장고(杖鼓)다. 악학궤범(성종 재위 1469~1494)에 이르기를 1081년(고려 문종 35) 당시에 '장고업사(杖鼓業事)'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 편찬한 고서 여러 곳에 '고구려기(高句麗伎)'가 나오는데 이 기예의 편성 중 요고(腰鼓), 즉 '허리가 잘룩한 북'이 장구다. 이 형태의 북이 여러 고고 자료로 발굴되었다. 세요고(細腰鼓)라고도 한다. 지금도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작은 요고를 허리에 꿰차고 춤을 춘다. 길고 짧고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북들이 있었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동해안 별신굿이나 제주도 무굿의 장구 크기가 작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음악적 기호나 춤, 놀이 등의 수요에 의해 크기나 형태가 변해왔을 것이라는 얘기다. 장구로 리듬을 맞추는 형태는 궁중음악, 풍류음악, 무속음악은 물론 기악, 성악, 연희 전반에 걸쳐있다. 장구가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이나 스며든 속살이 깊다는 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어사전에서는 '장고'와 '장구' 모두 표준어로 채용하고 있다. 어느 게 맞느니 안 맞느니 하는 것은 지역이나 문화 혹은 일정한 시기의 주장이다. '장고(長鼓)', 장귀, 쟝고 등으로 부르지만 농악과 풍물(이 차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겠다)에서는 '장구놀이', '장구춤', '설장구' 등 '장구'라고 한다.
김오채 설장구. 영광우도농악보존회

남도 설장구의 발생과 문화적 맥락
'설장구춤' 혹은 '설장구놀이'가 풍물놀이에서 보편화된 것은 근자의 일이다. 하지만 그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향약잡영'의 속독(束毒, 신라 때의 탈춤 종류)에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쑥대머리 파란 얼굴 저것 좀 보소/ 짝 더불고 뜰에 와서 원앙춤 추네/ 장구(북)소리 둥둥둥둥 바람 살랑살랑/ 사븐사븐 요리뛰고 저리 뛰누나." 최남선은 이를 '왕의 감화를 사모하여 추는 가면극 떼춤'으로 풀이했다. '짝 더블고'는 서로 마주 보거나 떼로 군무(群舞)하는 형태이고 타고동동(打鼓冬冬)은 북(장구) 연주를 묘사한 것이다.

적어도 서로 마주 보거나 군집한 떼춤과 장구(북) 연주가 고대부터 연행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대체로 장구놀이는 농악 혹은 풍물놀이의 범주에서 거론된다. 진도지역의 '북춤' 혹은 '북놀이'처럼 독립 장르로 분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 거론하고자 하는 김오채는 물론 전사섭 등 정읍농악의 장구놀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독립 장르로 인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도설장구를 연주하고 있는 김주현은 독장구, 합장구, 쌍장구, 설장구 등의 용어를 분리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독장구는 혼자 개인기를 뽐내는 연주, 쌍장구는 왼손잽이와 오른손잽이가 짝을 이루는 연주, 합장구는 여럿이 오열을 맞추는 연주, 설장구는 장구잽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상장구(수장구)가 독특한 기예를 선보이는 방식을 말한다. 정병호는 전국의 농악 현장을 돌며 설장구, 부장구, 삼장구, 끝장구 등의 순서가 있다는 점을 '농악'책에 보고하였다.

장구잽이의 위계를 나타낸 것으로 설장구는 맨 앞자리, 즉 으뜸 장구에 해당한다. 윤석운이 쓴 농악책에도 설장구를 '장구 중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외 자료들도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우리 대표 명절 '설날'을 '으뜸 날'로 해석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설장구는 농악대의 장구잽이 중에서 첫 자리에 서는 사람, 기예가 가장 으뜸인 사람을 이르는 용어라고 정리할 수 있고 '설장구춤'이나 '설장구놀이'는 농악에서 분화되거나 독립된 장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상쇠를 설쇠라고 하고 부쇠, 종쇠, 끝쇠 등으로 부르거나 북잽이의 우두머리를 설북이라고 하고 종북, 끝북 등의 위계를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편 맞장구라고 하면 두 개의 장구가 마주 보는 연주형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꽹과리와 장구가 서로 가락을 주고받는 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확인되진 않지만, 근대기에 농악을 재구성하면서 생긴 구성이므로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김오채 탄신 100주년학술대회

김오채 탄신 100주년 기념 한마당, '장구놀이'와 '장구춤'에서 '설장구'까지
영광우도농악 고 김오채 명인이 1926년생(구술자료에는 1924년)이므로, 올해가 탄신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여 제자 김동언 보유자 등이 주축이 되어 놀이판을 벌였다. 담양대나무축제 일환으로 열리는 '전통문화축제' 중 '농악 설장구대축제', '명장 명인전', '지역예술인과 함께 하는 젊은 명인전' 등이 그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전국 제자들과 동호인들 2000여 명이 운집하여 장구 연주를 하였다. '설장구놀이'나 '설장구춤'이라 하지 않고 '설장구'라고만 호명하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대개 농악이나 풍물굿에서 연행하는 장구 연주를 '놀이'라 하고 무대 연주를 '춤'이라 한다. 하지만 최은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구춤' 항목에서, 장구춤은 원래 호남농악 우도굿의 구정놀이에서 출발하여 1930년대 최승희에 의해 본격적인 무대예술 무용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장구놀음 혹은 장구놀이를 춤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를 무대예술로 재구성했다는 뜻이므로 놀이와 춤의 경계가 명료하지 않다. 김오채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이의 구술자료를 보면 "농악에서 상쇠하고 설장구하고는 서방 각시 같어"라고 한다.

맞장구의 상대가 상쇠라는 뜻이다. 또 "구정놀이와 반구정놀이는 우도에서 나간 것"이라든지, "전라남도는 너름새가 많다"든지, "장구 가락은 장판방에 콩 떨어지듯이 개운한 맛이 있어야 한다", 특히 "손과 몸짓과 너름새가 전부 맞어야 하고, 아랫도리에서 윗도리까지 합이 맞아야 한다"고 한다. 김오채 설장구는 구정놀이(굿거리를 말함) 연주, 손짓춤, 발짓춤, 고깔치기, 너름새(사체), 발 디딤새 등이 특별하다.

사체(四體)는 사람의 팔다리와 머리와 몸뚱이를 통틀어 이르는 한자 말이다. 판소리나 풍물에서 말하는 '너름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판소리에서는 이를 '발림'이라고 한다. 용어 설명을 길게 할 수 없으므로 짧게 요약하면, 몸 전체를 움직여서 연주한다는 뜻이므로 놀이보다는 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광우도농악 최용 회장의 분석에 의하면 구정놀이와 반구정놀이, 세산조시가 김오채의 특징이다. 세산조시는 판소리나 산조 장단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급하게 휘몰아치는 장단을 말하는데 휘몰이를 더 빠르게 몰아가므로 손이 거의 안 보일 정도다. 단모리라고도 하고 외(외박)장단이라고도 한다.

지면이 한정되어 우선 결론만을 말하면, 남도설장구는 가락이나 동작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연행하는 춤이다. 그래서 '설장구'라 한다. 뿌리는 고대이지만, 1800년 후반의 증산교 및 정읍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보천교의 권장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했다.

이봉문, 김홍집, 이정범, 전사섭, 김병섭 등에 의해 전승되었고 김오채가 천재적인 소질을 덧붙여 한 유파를 형성했다. 1936년 보천교 농악 해체 후, 최화집이 장성과 영광농악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수년 전 칼럼에서 다루었으니 참고 바란다.

온몸으로 연주하고 춤을 추는 형태를 남도설장구라는 이름으로 정착시킨 이가 김오채라는 점에서 장차 그 성과를 거론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김오채 탄신 100주년 기념 한마당은 지난 5월 3일, 우천관계로 담양공고 체육관으로 옮겨 실시했고, 5월 5일은 죽녹원에서 열렸다. 300인 장구 등 우리 풍물역사에 기록할 만한 풍경이었음을 보고해 둔다.
지난 3일 개최한 김오채 탄신100주년 300인 장구 외 전국 전통예술축제
담양 설장구놀이 전통문화축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