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산업, ESS로 ‘헤쳐모여’…K-배터리, 새 판 짠다

김창수 기자 2026. 5. 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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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EV 배터리 시장 성장세 둔화 속 국내 3사 점유율 하락
삼성SDI 벤츠 수주로 유럽 반등 기대…비중국 공급망 재편 주목
AI 데이터센터·전력망 투자 확대에 ESS 성장성 부각
전기차 배터리 예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국내 2차전지 산업 무게중심이 전기차(EV) 배터리 중심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공급망 재편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북미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들 공세로 국내 배터리 3사 입지는 약해지는 흐름이다. 반면 유럽 완성차 수주와 비(非)중국 공급망 구축,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는 K-배터리 업계 새로운 반등 변수로 떠오르고 있어 주목된다.

▲ 전기차 배터리 시장 주 무대, 북미서 유럽·아시아로 이동하나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2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134.9GWh로 전년 동기 대비 4.4% 늘었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합산 점유율은 15.0%로 2.2%포인트 하락했다. 중국을 제외한 시장만 따로 봐도 국내 3사 점유율은 28.4%로 1년 전보다 8.8%포인트 줄었다.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가 29.8% 급감한 영향이 특히 컸다. 북미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업체들로선 수요 둔화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다만 같은 기간 비중국 시장 전체는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했다. 유럽과 아시아가 배터리 시장 새 성장축으로 떠오르는 국면은 시장의 이동을 잘 보여준다.

이런 흐름에서 최근 발표된 삼성SDI의 메르세데스-벤츠 배터리 공급 계약은 상징성을 지닌다. 삼성SDI는 벤츠와 다년간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 고니켈 NCM 배터리를 차세대 전기 SUV와 쿠페 모델에 공급 예정이다. 공식 계약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번 계약으로 삼성SDI는 BMW, 폭스바겐에 이어 벤츠까지 독일 완성차 3사를 모두 고객사로 두게 됐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계약을 유럽 전기차 수주 공백 해소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전기차 시장이 둔화 국면이어도 프리미엄 완성차 중심 고성능 배터리 수요까지 사라졌다고 보기 어려움을 입증했다. 토종 배터리 기업들로선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와 정면승부를 벌이기보다 고부가 제품과 공급 안정성을 무기로 유럽 고객 기반을 넓혀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다만 전기차만 바라보는 전략으로는 현재로선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글로벌 업계는 ESS에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 전기차 시장 부진으로 자동차업체와 배터리업체들이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ESS용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 확대로 전력 저장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낙관만 하기에도 이르다. 올해 북미 시장 고정형 저장장치 수요는 76GWh로 예상되나 자동차업계가 구축해 놓은 배터리 생산능력은 약 275GWh에 달한다. 5년 뒤 수요가 125GWh로 늘어도 EV용 과잉 설비를 모두 흡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SS가 새 성장축인 것은 맞지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백을 단기간에 전부 메워줄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ESS 분야는 여전히 배터리산업 '판'를 바꿀 잠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와 증권가는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배터리 산업 수요 구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SDI와 메르세데스-벤츠가 4월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안다즈 서울강남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삼성SDI 허은기 중대형사업부장과 최주선 대표이사 사장, 메르세데스-벤츠 요르그 부르저 최고기술책임자와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 삼성SDI

▲ ESS 생산 전환·非중국 공급망 선점, K-배터리 선결 과제로

유안타증권은 올해 브렌트유가를 연평균 배럴당 92~94달러, WTI를 84~86달러 수준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올해 상위 하이퍼스케일러들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도 6000억달러 이상으로 봤다. 전력 가격과 공급 안정성이 중요해질수록 온사이트 전력 설비와 ESS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 미국 일부 지역 데이터센터 인허가 지연, 전력망 비용 사업자 전가 움직임까지 겹치며 배터리는 자동차 부품에만 국한되는 것을 넘어 전력 인프라 일부로 격상되는 모습이다.  

공급망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EU 에너지·원자재 플랫폼을 출범시켜 전략 원자재 수요 집계, 매칭, 공동구매를 지원하고 있다. 또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2030년까지 전략 원자재 역내 채굴 10%, 가공 40%, 재활용 25%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배터리 산업이 셀 제조 경쟁을 넘어 광물 조달과 공급망 안전성 싸움으로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 시장 움직임은 한국 업체들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수직계열화가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중국 CATL의 경우 1분기 순이익이 48.5%, 매출이 52.5% 늘며 시장 지배력을 한층 키웠다.

결국 국내 2차전지 산업 향후 전망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회복 여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단기적으로는 북미 전기차 시장 둔화, 과잉설비 부담이 발목을 잡겠지만 유럽 프리미엄 완성차 수주 확대와 ESS·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는 새로운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ESS가 전기차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비중국 공급망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가 향후 2~3년 판도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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