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동일한 모습의 계절 변화를 담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똑같은 구도로 변화된 모습을 처음부터 의도 했다면 훨씬 더 정교하게 작업을 진행했을 것이다. 오히려 작업 양이 쌓이고 더 좋은 날씨와 톤을 찾아서 촬영한 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빈집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고, 그제서야 동일한 구도로 촬영을 해보려고 했다. 제주시 한경면, 2024년과 2025년/ 사진가 김선기
한동안 전국에 빈집을 찾아서 사진 찍던 때가 있었다. 신생아는 없고 청년들은 모두 도시로 떠난 경북의 어느 마을에 있던 빈집 마루엔 나무 두 그루가 푸른 잎을 뽐내며 자라고 있었다. 나무들은 “사람이 안 살면 우리라도 산다”는 모습이었다. 잡초가 옥수수 밭처럼 무성했던 다른 집에선 마루 위 밥상에 그릇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옆집 주민에게 물으니 혼자 계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가시더니 안 돌아오신 지 3년 됐다고 했다.
‘담쟁이 덩굴’이 집 안까지 들어가 덩굴이 집의 주인처럼 보였다. 유리창 안과 밖으로 덩굴이 주렁주렁 차지했다. 덩굴과 반대로 빨간 지붕이 색의 대비를 이루어 인상적이었다. 제주시 구좌읍. 2024년/ 사진가 김선기
점심을 먹고 해안 도로를 따라가던 중 우연히 발견한 집이다. 이번 전시의 빈집들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집들이 많은데 비해 이 집은 너무 오래 방치되어 지붕들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빈집의 운명처럼. 고요한 바다가 집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제주시 한림읍, 2024년/ 사진가 김선기
서울 종로구 갤러리담에서 최근 전시하는 김선기의 ‘집의 고요(In the Mood for Stillness)’는 제주의 빈집들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2024년 4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촬영한 사진 22점이 걸려있다. 전시와 함께 발간한 사진책엔 55점이 있다.
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그림 같은 위치에 서 있던 이 집을 찍기 위해 서로 다른 계절에 서너 번은 찾아갔다. 제주는 눈이 안 오면 겨울을 표현하기 힘들다. 푸른 갈대가 갈색으로 변한 이 계절은 12월의 초겨울. 노을 뒤로 구름은 흘러가는데 집과 갈대는 얼어 붙은 듯 고요했다. 제주시 구좌읍, 2025년 / 사진가 김선기
사람이 앉을 수 없을 만큼 낡은 이 의자를 처음 본 것은 2024년 귀덕리 집을 찍을 때였다. 마을회관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의자였는데 당시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평범한 의자였다. 하지만 1년 뒤 찾아갔을 때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풀이 무성한 나무와 대조적으로 보이는 부서진 의자에 시선이 계속 끌려 촬영했다.제주시 한림읍, 2025년/ 사진가 김선기
김선기는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간 풍경들로 더 이상 사람의 이동이 없는 흔적을 보여준다. 버려진 자전거와 소파가 방치된 빈 창고에 넝쿨의 푸른 잎으로 덮인 벽은 잎들이 떨어지고 갈색으로 변해도 그대로다. 변한 것은 계절의 변화이거나 더 낡아서 허물어져 가는 집이다. 감귤이 자라고 보랏빛 꽃이 피고 져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장소를 다른 계절의 모습으로 나란히 보여주는 것으로 긴장과 쓸쓸한 느낌은 더해 보인다.
작년 늦가을은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2024년 늦봄 보라색 송엽국이 피었던 자리에 이듬해 초겨울엔 갈대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구름을 뚫고 한줄기 햇살이 비추는 찰나에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장노출 사진이 아닌 순간 포착으로 촬영했다. 사실 햇살이 가득한 사진은 전체 톤과는 맞지 않지만 결정적 순간이었기에 살아남은 이미지가 되었다. 제주시 한경면, 2024년과 2025년./ 사진가 김선기
귤나무가 많은 서귀포 일대의 집들을 엄청나게 찾았는데, 정작 귤나무가 집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집은 제주시에서 찾았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주도에 살면서 촬영을 하지 못하니 담지 못한 그림이 있다면 빈집에 눈이 쌓인 풍경이다. 귤나무에 눈이 쌓인 풍경을 담았다면 훨씬 더 서정적인 그림을 담았을 것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제주 산간 지역은 눈이 많이 오지만 제주 집들은 대부분 해안 도로에 있기 때문에 폭설이 내리지 않는다면 눈 내린 풍경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제주시 한림읍, 2024년 / 사진가 김선기
특이한 것은 정사각형 캔버스 위에 사진을 프린트해서 전시에 걸었는데 주변 풍경과 집의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일부를 강조해서 보여준다. 보이는 부분은 강조되는 대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으로 채우도록 했다. 그렇다고 인스타그램 스타일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고 했다. (요즘 인스타는 사진보다 난데없는 동영상들만 가득하다). 사진가는 독립된 한 채를 보여주고 클로즈업을 통해 고요한 집의 풍경을 여운으로 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제주 전통 가옥 문인 정낭이 세워져 있던 집이다. 집 앞에 작은 귤나무도 인상적이었다. 정낭 또한 자세히 보면 위 정낭은 나무로 아래 정낭은 파이프였다. 제주시 한경면, 2024년/ 사진가 김선기
사람이 살다가 계약이 만료되었던 것인지 그대로 세간살이가 남아 있는 집이었다. 오른쪽 유리창 너머로 세탁기가 있는 것이 보이고 왼쪽 유리창에 ‘CLOSED’ 라는 글씨도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집 앞에 놓인 사다리가 수리를 하다 중단한 느낌이 들었다, 제주시 구좌읍, 2024년/ 사진가 김선기
방송국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와 촬영 감독으로 일하는 사진가는 최근 제작한 프로그램에서 많은 범죄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하며 피해자들의 고통이 그대로 전이되어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했다. 언젠가 아내가 육아를 위해 내려간 처갓집 제주를 오가며 봐두었던 빈집을 보며 사진가는 어릴 때 주택에서 살던 추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렸고, 제주 빈집들을 기록하면서 정신적 치료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빈집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처음 찍은 집. 처음 촬영을 할 때는 맑은 날 파란 하늘에서 촬영을 시작했었고 사진의 톤을 잡아가면서 흐린 날 위주로 촬영을 하는 것으로 콘셉트를 바꿨기에 이듬해 다시 가서 촬영했다. 제주에 사는 회사 선배를 통해 알게 된 빈집 촬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주시 한림읍, 2025년/ 사진가 김선기
이 프로젝트는 장노출이나 저속 셔터로 촬영을 많이 했기 때문에 트라이포드 위에서 촬영을 하더라도 타이머 기능을 활용해서 촬영했다. 셔터를 누르면 3초 정도 후에 촬영이 되도록 했는데 셔터를 누르고 우연히 고양이 두 마리가 앵글 안으로 들어와 움직임이 담겼다. 빈집의 주인으로 고양이를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를 보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고양이는 앵글 안으로 출연해준 고마운 고양이였다. 제주시 조천읍. 2024년/ 사진가 김선기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김선기는 2020년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그 할머니를 돌보는 사진가의 어머니의 간병 모습을 모두 사진으로 기록해서 ‘나의 할머니 오효순’이란 이름으로 전시했다. 당시 그의 사진은 서로에게 정성과 보살핌으로 사는 가족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진들도 지방 소멸 같은 사회적 이슈의 빈집이 아니라 가족들의 온기가 남은 빈집을 통해 슬프면서도 사라지는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다. 기자가 전시장을 찾은 날도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는 9일까지.
맑은 날 제주의 노을은 환상적이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노을이 제주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이 집은 안채, 바깥채가 ‘ㄱ’ 자로 붙어있는 집이었기에 정방형 포맷이 아니라면 옆의 집도 보였을 것이다. 계속 정방형 포맷으로 촬영한 이유는 각 집을 독립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주시 한경면, 2024년/ 사진가 김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