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브레게의 시간

이승률 2026. 5.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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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대 택트 워치의 정신을 계승한 브레게 ‘트래디션 컬렉션’. 250여 년의 시간을 관통해온 이 컬렉션이 2026년의 언어로 다시 한번 진화한다.

[워치더와치스] 


시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굴까. 10명 중 9명은 25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창립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를 떠올릴 것이다. ‘시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휴대용 회중시계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이자 현대 시계 제조 기술의 기틀을 세운 위대한 발명가였다. 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상쇄하는 투르비용을 발명해 정확도를 높였고, 공 스프링(Gong Spring)을 개발해 미닛 리피터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그가 고안한 브레게 핸즈는 시계 제조 분야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브레게에 전환점이 찾아온 건 글로벌 시계 그룹 스와치 그룹에 인수된 1999년 이후다. 당시 그룹을 이끌던 니콜라스 하이예크 회장은 브레게를 그룹 내 최상위 브랜드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세웠고, 그의 리더십 아래 브레게는 과거의 영광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나갔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유산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도 이 시기였다. 그 결실 중 하나가 2005년에 처음 선보인 ‘트래디션(Tradition)’ 컬렉션이다.

‘전통’을 뜻하는 트래디션은 이름처럼 브레게의 ‘정체성’을 되짚는 데서 출발한다. 단순한 영감을 넘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게 바치는 오마주의 의미를 담았다. 모태가 된 것은 서브스크립션 회중시계. 그중에서도 1790년대 말 처음 등장한 ‘아 택트(À tact, 이하 택트)’다. 택트는 시계 표면의 바늘을 손끝으로 짚어 촉각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게 한, 이를테면 세계 최초의 터치형 시계였다. 일부 버전은 뒷면에 소형 다이얼을 장착했으며, 또 다른 버전은 단 하나의 바늘만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었다. 다양한 시간 읽기 방식과 기계적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독특한 구성은 훗날 트래디션 컬렉션의 개념적 토대가 됐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년이 흐른 지금, 트래디션 컬렉션은 브랜드의 유구한 유산을 창의적으로 재현한 ‘명작’이자 브레게를 대표하는 컬렉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26년, 브레게는 트래디션 컬렉션을 새롭게 변주한 신제품을 다채롭게 선보이며 컬렉션의 다음 장을 펼친다. 예술과 디자인을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시대정신을 수용하며 앞서나가고자 했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워치메이킹 비전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지극히 역사적인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트래디션 세컨즈 레트로그레이드 7037 | 스테디셀러인 7037 시리즈의 계보를 잇되, 이전보다 한층 절제된 것이 특징이다. 화이트 골드와 플래티넘 두 가지 소재로 출시하는데 화이트 골드 버전에는 컬렉션 최초로 선보이는 블루 컬러 무브먼트와 화이트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을, 플래티넘 버전에는 블랙 무브먼트와 블랙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을 각각 매치했다. 케이스 지름 38mm, 두께 12.7mm의 시계는 손목 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12시 방향의 오프센터 다이얼에 적용된 그랑 푀 에나멜은 트래디션 컬렉션에서 처음 시도하는 소재다. 800℃ 이상 고온에서 여러 차례 구워내는 이 공법은 일반적 도장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깊고 투명한 색감이 특징이다. 샷 블라스트로 마감한 메인 플레이트와 새틴 마감 브리지, 스네일 패턴으로 수공 기요셰 장식한 배럴 커버 등 층층이 쌓인 무브먼트 구조는 시계에 입체감을 더한다. 케이스 왼쪽 면 10시 방향에는 60초마다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의 초침이 자리하며, 브레게 특유의 오픈 팁 핸즈가 우아함을 더한다. 기존 앨리게이터 가죽이 아닌 라이트 그레이 스티치를 가미한 블루 또는 블랙 러버 스트랩을 채택한 것도 눈여겨볼 점. 별도의 도구 없이 스트랩을 손쉽게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해 실용성까지 놓치지 않았다.


트래디션 GMT 7067 | ‘트래디션 GMT 7067’에는 트래디션 컬렉션 최초로 ‘그린 컬러 그러데이션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을 적용했다. 선명한 그린에서 블랙으로 이어지는 섬세한 컬러 그러데이션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다이얼 구성도 눈에 띈다. 여행자를 고려한 시계답게 다이얼 외곽의 블랙과 대비를 이루는 실버 컬러 아라비아숫자 인덱스가 뛰어난 가독성을 보장한다. 로컬 타임이 표시되는 메인 다이얼을 중심으로 8시 방향에는 골드 소재 블랙 오픈워크 서브 다이얼이 홈 타임을 표시하고, 10시 방향에는 절제된 디자인의 낮·밤 인디케이터를 배치했다. 지름 40mm의 플래티넘 케이스로 선보이는 7067에는 그린 컬러 스티치를 더한 블랙 러버 스트랩을 매치했으며, 7037과 동일하게 손쉽게 교체 가능한 시스템을 적용했다. 


트래디션 세컨즈 레트로그레이드 7097 | ‘트래디션 세컨즈 레트로그레이드 7097’은 두 가지 변화로 이전 세대와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첫째는 화이트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이다. 지름 40mm의 18K 로즈 골드 케이스로 이뤄진 7097은 화이트 그랑 푀 에나멜로 제작한 메인 다이얼을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원형 새틴 마감한 골드 소재의 반원형 섹터를 통해 10시 방향의 스몰 세컨즈 레트로그레이드를 다이얼 위에서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무브먼트의 차콜 그레이 배럴 커버로 화사하게 빛나는 화이트 다이얼과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레이 카프스킨 스트랩을 매치했으며, 동일한 그레이 컬러의 러버 스트랩 버전도 함께 선보인다.


트래디션 세컨즈 레트로그레이드 7038 | ‘트래디션 세컨즈 레트로그레이드 7038’은 시계와 주얼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델이다. 로듐 도금 처리한 화이트 골드 케이스 베젤에 5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눈부신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트래디션 컬렉션 최초로 적용한 블랙 어벤추린 글라스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은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깊이감을 더한다. 또 다른 매력은 바로 기요셰 패턴이다. 다이얼 중앙의 배럴 커버에 햇살이 퍼져나가는 듯한 선버스트(sunburst) 기요셰 패턴을 정교하게 새겼다. 백케이스에서는 샷 블라스트 마감한 메인 플레이트와 브리지 위로 하프 크라운 형태의 골드 로터가 떠 있는 듯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 로터 역시 선버스트 패턴으로 마무리했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