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도 우파도 중간파도 아닌 새로운 길 간다” 시인 김지하
2022년 5월 8일 81세

‘담시 ‘오적(五賊)’ 필자 김지하씨 구속’(1970년 6월 3일 자 7면), ‘시인 김지하씨 수사, 시 ‘비어(蜚語)’ 문제 삼아’(1972년 6월 1일 자 7면), ‘김지하 돕기 위해 국제위 회원 5명 내한’(1974년 8월 9일 자 1면), ‘김지하 무기형 항의, 르몽드지에 탄원서’(1974년 11월 5일 자 7면), ‘시인 김지하씨 가중 처벌 적용’(1975년 5월 11일 자 7면), ‘김지하씨 석방’(1980년 12월 12일 자 1면)….
시인 김지하(1941~2022)는 1970년대 오랜 기간 옥고를 치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된 후 신군부의 12·12 사건 1주년을 기해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관련 기사는 신문의 얼굴인 1면에 검은 배경 흰 활자로 돋보이게 실렸다.

“김지하씨는 74년 4월 27일 민청학련 사건 배후 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돼 비상군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78년 12월 26일 9대 대통령 취임일에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복역 중이었다.”(1980년 12월 12일 자 1면)
1980년대에는 종교와 불화를 겪거나 일부 문인의 비판도 받았다. 1984년 발표한 장시 ‘다라니’는 불교 폄훼 논란을 일으켰다. 승려 시인 석성일은 반박 시를 써 김지하를 비판했다.
“(시 ‘다라니’는) ‘중× 중× 소리를 우선 먼저 들어 봐라’ 등의 표현으로 불교 법회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또 ‘(…) 쉽게 쉽게 얼렁뚱땅 시주를 얻어 이처(易處)/ 산해진미 인삼 녹용 잔뜩 먹고 살이 쪄서 비처(肥處)’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이에 대해 석씨는 ‘산가(山歌)’라는 제목에 ‘김지하의 다라니를 보고’란 부제를 붙인 반박시(詩)에서 ‘사람이 되어서 나온 줄 알았더니/끝내 똥×도 되지 못하였구나/ 그래/머리 깎은 남자가 그대 계집을 달라고 하더냐/머리 깎은 여자가 그대 애비를 달라고 하더냐’라고 정면적인 공격을 가하고 나섰다.”(1984년 4월 10일 자 7면)

김지하의 민중시는 “해학과 풍자 그리고 저속적인 독설의 장식”이며 “언어의 형상화에 있어서 상당한 약점을 지니고 있어 문제작이나 화제작은 될지언정 우수작은 될 수 없다”(1984년 11월 20일 자 7면)는 비판도 나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김지하의 시는 달라졌다. 1986년 낸 시집 ‘애린’은 “현실 비판의 강도가 거세었던 이른바 민중 시인들의 목소리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바깥’보다는 ‘안’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정시집이라는 부제를 분명히 단 ‘애린’의 경우, 김지하가 보여온 현실 비판과 풍자가 언어 그 자체에서 강렬하게 비치기보다는 훨씬 정제된 서정의 세계 속에 녹아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한은 깔려 있으되 냉소보다는 감상으로까지 번진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1986년 12월 10일 자 7면)
김지하는 ‘생명 사상’으로 더 나아갔다. 1989년 두 번째 서정시집 ‘별밭은 우러르며’를 낸 후 인터뷰에서 “감옥에 있을 때부터 생명은 모든 장애를 뚫고 나가는 근원적인 실재라고 느껴왔고, 불교·도교의 영향도 받았다”면서 “이 생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공해·핵 등 모든 반(反)생명들을 극복하고 ‘살판’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생명 철학의 목표”(1989년 6월 23일 자 9면)라고 했다.

1991년 대학생들의 잇단 분신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고 일갈한 것도 ‘생명 사상’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養生)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身外無物)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1991년 5월 5일 자 3면)

김지하는 이 기고로 진보 진영에서 ‘변절’ 비난을 받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고은)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김지하를 이사직에서 해임하고 회원에서 제명했다.
“작가회의 측은 “김씨가 비록 개인적 입장에서 발표한 글이지만 김씨의 이름 때문에 진보적 문학 단체가 전부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으므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나는 작가회의에 회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으므로 제명 결정은 나와 무관한 일”이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작가회의가 결성되면서 내 의사와 무관하게 회원으로 가입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지난 88년 서울펜클럽대회가 열렸을 때 작가회의가 여의도에서 개최한 구속 문인 석방 대회에 잠시 얼굴을 내민 것 외에 그동안 작가회의 행사에 참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그들은 민족지사들이고, 나는 민초일 뿐이다”라고 말했다.”(1991년 5월 11일 자 23면)

김지하는 다시 ‘김지하 시인의 ‘생명 선언’- 다수의 침묵, 그 의미를 알라’(1991년 5월 17일 자 5면)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죽음을 무기로 하는 모든 세력 거부/ 모든 문제 생명 존중 바탕서 풀어야’ 등의 제목이 달렸다.
독자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김지하 시인의 ‘생명 선언’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김 시인을 변절자·배신자·패배주의자·알코올중독자라고 매도했던 사람들도 이번 조선일보에 게재된 김 시인의 글을 읽기 바란다. 김지하 시인의 생명사상은 고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그런데도 왜들 그렇게 김 시인을 매도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진실이 소중하면 타인의 진실도 소중하게 알아야 한다.”(1991년 5월 19일 자 13면)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통하여 최근에 연이어 분신을 한 사람들이나 ‘진보적 운동권’에 대하여 극한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비난을 하고 나섰다. 그는 이 글로 더 이상 동지가 아니고 명백한 적으로 판명된 셈이다. 그것도 동지들의 등에다 총을 겨눈 배반자가 된 셈이다. 그는 더 나쁜 편과 덜 나쁜 편 중에서 덜 나쁜 편을 비난함으로써 더 나쁜 편을 정당화시켜 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다.”(1991년 5월 21일 자 11면)

김지하는 2018년 인터뷰에서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오. 중간파도 아니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걸 내 사명으로 하는 사람이오”(2018년 3월 5일 자 A31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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