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임헌영 "시적인 BTS 가사에 탄복…노벨문학상 탈 자격 충분해"
'아름다움 추구는 평화·평등으로 나아간다'
필생 문학관 실현하려 한국문학관장 맡아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혁명조차도 멋지고 아름다워야 성공합니다. 투쟁도 아름답게 해야 돼요."
원로 문학평론가 임헌영(85) 국립한국문학관장이 뜻밖의 아름다움론을 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를 20년 넘게 이끌며 굳어진 투사 이미지 너머,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 1970년대 두 차례 투옥 경험은 그에게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유미주의 소설에서 큰 위안을 받으면서다.
옥중 그는 탐미주의 소설의 대가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름다움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믿었던 오스카 와일드를 탐독했다. "아무리 현실은 고통스럽고 배가 고프더라도 아름다움이 이렇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구나,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그때 알게 됐습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임 관장은 "아름다움은 영원한 진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문학가이자 운동가로서 그가 참여문학과 사실주의에 치중해온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보세요. 악 속에서 꽃을 보는 눈,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대한 유미주의의 궁극적 정신이 거기 있죠. 보들레르는 1848년 2월 혁명 때 소총을 들고 거리로 나가 싸웠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자기 문학적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독재에 항거하고, 왕도정치를 타도하는 것으로 나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올해 등단 60년을 맞은 그의 본령은 여전히 문학이다. 그는 공자가 설파했던 군자(君子)의 삼락(三樂)을 언급하며 "평론가로서 임헌영에 대한 평가가 모자란다 생각하지만,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삼락 중 하나"라고 했다.
지난 1월, 그는 제3대 국립한국문학관장으로 취임했다. 전 부처 내 기관장 중 최고령으로 이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감수성이 결국 평화와 인간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문학관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다. 그는 '프리즘적 문학', '무지개적 평화'를 한국문학관의 사명으로 제시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물이 힘차게 흘러내리기 때문이 아니라 흘러내리면서 무지개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지개 없는 폭포는 미가 없어요. 그냥 자연현상일 뿐이죠. 폭포, 그 격랑의 역사를 보면서도 무지개를 찾을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 것, 그게 문학이고 예술이거든요."

그러면서 불쑥 방탄소년단(BTS) 이야기를 꺼냈다. BTS의 지난 3월 21일 서울 광화문 공연을 TV로 지켜봤다는 그는 "평화를 노래한 밥 딜런이 대중가수 최초로 2016년 노벨문학상을 탄 것처럼 BTS도 노벨상을 탈 자격이 충분하더라"고 했다. BTS의 '봄날' 노랫말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를 읊더니 "가사가 얼마나 시적인지, 노래를 듣고 탄복을 했다"며 "이런 시를 쓴 사람이 인류 문학사에서 없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근현대 시기 한국문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다. 박경리 '토지', 최인훈 '화두', 조정래 '태백산맥', 황석영 '장길산'은 "인류 문학의 영원한 향수"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병주의 '지리산'은 정치인의 필독서로 꼽는다. 그는 "필화를 피하기 위해 작품 전반에 반공 이념이 깔리고 미국은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 등 현명하면서도 비겁한 면이 있지만, 이병주는 좌우를 아우르며 우리 현대사를 탁월하게 다룬 위대한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1941년 경북 의성군 산간벽지에서 태어난 임 관장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취학 전 '천자문'으로 활자를 처음 접했고, 9세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2년간 초등교사로 근무했다. 이때 고대 중국 병법서 '손자병법', 군사학 최고 고전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1961년 상경해 대학 진학을 했다. 이른바 '5·16 쿠데타 학번'이다. 창작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학 1학년 때 쓴 최인훈론이 교지에 실리며 이름을 알렸다. 대학원 시절인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1974년 문학인 간첩단 사건,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에 휘말리면서 오랫동안 요시찰 인물로 살았다. 정식 복권된 건 1998년, 무죄 판결은 2018년에야 받았다. 2003년부터 관장 취임 직전까지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지냈다. 임기 중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은 그의 대표 업적. 그는 "자랑스럽다"며 "다만 내 나름대로 본 친일에 대한 책을 쓰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앞으로 문학관장 3년 임기 동안 그는 시선을 세계로 돌려 3대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현지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전 세계 동포문학가(디아스포라) 연대, 한국문학 연구자 모임을 결성해 문학관과의 협력 기반을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을 작품에 다룬 외국작가를 조명하는 작업에도 나설 참이다. 구한말부터 해방까지 4대에 걸친 한국 민족사를 다룬 '살아있는 갈대'(1963)를 쓴 미국 소설가 펄 벅이 대표적.
임 관장은 "동포작가, 연구자, 외국작가와 문학관이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한국문학을 세계화, 보편화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한국 독자만이 아니라 세계의 독자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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