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지 CEO “스테이블코인 최대 20개 기업 발행 준비”

|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6일(현지 시각) 가상자산 커스터디 및 뱅킹 업체 앵커리지 디지털의 네이선 맥컬리 최고경영자(CEO)는 "최대 20곳에 이르는 금융기관과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줄인 가상자산이다.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자산과 달리 결제와 송금, 자금 이동에 쓰기 쉽다는 점에서 최근 금융권의 관심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맥컬리 CEO는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가상자산 행사 '컨센서스'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 법안' 통과 이후 앵커리지가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 프로젝트 상당수를 맡게 됐다"며 "현재 약 12~20개 기관, 그리고 대형 빅테크 기업들과 함께 발행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숫자만 놓고 보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일부 가상자산 기업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전통 금융회사와 대형 플랫폼 기업까지 뛰어드는 새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이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스테이블코인의 쓰임새다. 은행 입장에선 특정 금융 거래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국경 간 송금이나 기업 간 대금 결제, 24시간 자금 이전 같은 영역에선 기존 금융망보다 효율이 높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거래의 핵심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여기에 제도권 금융회사가 본격 가세하면 시장의 외연이 한층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 규제 길 열리자 은행·빅테크 가세
맥컬리 CEO 발언의 배경에는 미국 내 규제 정비 움직임이 있다. 그가 언급한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운영에 일정한 규칙을 마련하려는 입법 논의다. 그동안 시장은 빠르게 커졌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준비자산을 보관할지, 이용자 보호는 어떻게 할지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틀이 마련되면 대형 금융회사나 상장 기업도 보다 명확한 기준 아래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앵커리지는 이런 변화의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가상자산을 대신 보관해 주는 커스터디와 각종 금융 인프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쉽게 말해 기관투자가나 기업이 디지털 자산 사업을 시작할 때 필요한 금고와 결제망, 운영 체계를 맡아 주는 곳에 가깝다. 맥컬리 CEO가 "주요 발행 프로젝트 대부분을 수주했다"고 말한 것도, 단순한 시장 전망이 아니라 실제 사업 문의와 계약 논의가 빠르게 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그는 특히 "은행들이 특정 금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투기성 가상자산의 한 갈래가 아니라, 기능 중심의 디지털 금융 수단으로 재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행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자사 고객과 기업 거래망 안에서 결제와 정산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 송금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고객 자금을 자사 서비스 안에 더 오래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 기존 사업자 유통망 확대 경쟁
맥컬리 CEO는 "기존 스테이블코인 사업자들도 자체 유통 채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앞으로 경쟁이 단순히 '누가 먼저 발행하느냐'에 그치지 않고, '누가 더 넓은 결제망과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느냐'로 옮겨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발행 능력만큼이나 실제 사용처를 넓히는 일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 그대로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대개 1코인을 1달러와 연동하는 방식이 많다. 이용자는 이를 통해 가격 급등락 부담을 줄인 채 디지털 자산을 주고받을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거래의 기준 화폐 구실을 하고, 디지털 결제 영역에서는 현금을 대신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최근에는 단순 거래를 넘어 해외 송금, 전자상거래, 기업 자금 관리 분야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만들 것인가'만큼 '누가 일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안착시킬 것인가'를 더 중요한 승부처로 본다. 특히 빅테크 기업이 이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 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막강한 이용자 기반과 플랫폼 생태계를 갖춘 만큼, 자체 결제 서비스나 온라인 상거래 시스템, 해외 송금망과 결합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별도 가상자산 지식이 없어도 평소 쓰던 앱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테이블코인을 접할 수 있게 된다.
▲ 시장 주도권 경쟁 더 치열해질 듯
맥컬리 CEO의 이번 발언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무게중심이 점차 제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초기 시장은 가상자산 전문 업체들이 주도했지만, 이제는 규제 명확성과 실제 활용성을 앞세운 금융회사, 플랫폼 기업들이 새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처럼 자본시장과 기술기업이 동시에 발달한 곳에선 이 흐름이 더 빠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시장 확대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준비자산을 얼마나 안전하게 보관하는지, 언제든 약속한 가치대로 상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가 핵심이다. 발행 주체가 늘어날수록 감독 기준과 공시 체계, 소비자 보호 장치도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제도권 자금과 기업이 본격 유입되면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시장 내부의 거래 수단을 넘어, 실제 금융 인프라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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