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기교에 묻힌 서정성… 리스트의 곡, 사실 맑고 투명하죠”
‘위안' 등 리스트 대표작 11곡 실어

“한때 리스트는 제게 넘어야 할 산 같은 존재였어요. 현재는 저와 소리의 색채감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7일 서울 신영체임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7)이 새 음반 ‘리스트’를 소개했다. 목소리에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번 앨범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보이자 영국 명문 데카(Decca)와 협업한 세 번째 음반. ‘위안’ ‘사랑의 꿈’ ‘헝가리안 랩소디 제2번’ 등 리스트가 작곡한 유명 대표곡 외에도 베르디의 오페라를 바탕으로 한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 슈만의 ‘헌정’ 등 리스트가 편곡한 작품까지 총 11곡이 실렸다.
선우예권은 2017년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K-클래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지난 2월 김선욱·조성진·임윤찬과 함께 고(故) 정주영 현대차그룹 창업 회장 25주기 추모 음악회에서 ‘국내 피아노 4대 천왕’의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선우예권은 이번 앨범을 ‘피아노로 하는 노래’라고 표현했다. “첫 세 곡은 명상적 분위기를, 다음 세 곡은 친밀한 속삭임의 가곡을, 이후 악마적 오페라 곡들에 이어 ‘헝가리안 랩소디’가 피날레를 장식하도록 배치했습니다.” 음반 녹음은 거장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 작업을 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베를린의 한 성당을 찾았다. 그는 “성당임에도 과하지 않은 울림과 특유의 분위기가 몰입감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왜 하필 지금, 리스트일까. 선우예권은 “리스트에겐 초절기교의 화려함과 소위 악마적 재능 외에도 인간성과 서정성이 공존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리스트는 타고난 긴 손가락으로 후세대 피아니스트들을 애먹인 고난도 기교를 자주 선보였고, 주로 남성적이면서도 극적인 연주 스타일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선우예권은 “리스트 연주의 화려함 이면에서 공기를 가볍게 띄운, 질량이 가벼운 듯한 소리가 느껴졌다”며 “제가 추구하는 맑은 와인잔, 비눗방울, 유리와 같은 투명한 소리와도 잘 맞는다”고 했다.
‘리스트’는 선우예권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매번 바꿔왔다. 그는 “중학생 땐 리스트의 곡을 다룰 때 말도 안 되는 템포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쳐내는 데” 주력했고, “20대 땐 잘 치지도, 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좀 과시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저의 내적인 것들을 가미한 소리가 나올 것”이라며 “피아니스트에게 리스트의 드라마를 전달할 만큼의 기교를 갖췄다는 건 각자가 추구하는 소리를 색칠해 나갈 붓을 갖췄다는 뜻”이라고 했다.
선우예권은 오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익산·대구·성남·창원·울산·양산 등에서 새 앨범을 들려주는 리사이틀 투어도 개최한다. 앨범에 포함된 작품 외에도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20번을 연주한다. 그는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리스트, 순수한 내면을 노래하는 슈베르트가 서로 지닌 공통점과 상반되는 점을 붙여서 들으면 더욱 극적인 효과가 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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