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휘청거리는 생의 한때

지하철 합정역. 굉음과 함께 전동차가 들어오자, 내 앞의 한 숙녀가 보건체조하듯 허리를 힘껏 휘청, 뒤로 젖혔다. 눈앞의 공중이 꿀렁, 하는 것 같았다. 그냥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따봉!이라고 한 적이 있다. 어느 시인은 회심의 한 구절을 심득하면 노루처럼 방바닥을 떼굴떼굴 구른다고 했다. 끙끙 앓다가 툭 튀어나온 말의 꽃다발 아래에서 마음의 마개를 꽉 맞추려는 행위. 어느 한 경계의 돌파를 기념하려는 자신만의 고유한 동작들로 나는 이해한다. 이런 일 앞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기쁨이 원인처럼 먼저 있어야 한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 헤아려보다가 한때 시장처럼 바빴을 배꼽을 만져보지만, 이제 그곳은 완벽한 폐허다. 아, 어머니를 잃은 지 너무도 오래.
최근 어떤 분의 근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더러 펴낸 책을 들추고 신문의 칼럼을 읽었으나 이 역시 바람결에 떠나보냈다. 그땐 글이 어려웠고 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날씬한 호리병에 깊숙이 물을 담아놓았으나 내 입은 두꺼비처럼 두툼했던 것. 그러다가 이번에는 그런대로 미끼를 물었는가 보다. 근래 생각하기를, 옛날에 잘못을 저질렀다면 오늘은 그 잘못을 깨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바로 딱 들어맞는 격이라 하겠다. 그가 저 경지에 이르도록 나는 그저 빗방울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만 했다는 기분. 여럿이 모인 어느 한 공간에서 잠시 어긋난 적이 있었다. 취한 자리는 아니었다. 내 기억의 잔상에 남은 건, 두 손을 항상 무릎에 일러두기처럼 가지런히 모으고 사슴 같은 큰 눈으로 주위를 조심히 응시하던 모습.
시간은 물결처럼 흐르지만 가끔 토막이 날 때도 있다. 멀미를 느끼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자투리 시간에도 담벼락 밑의 텃밭처럼 생각의 민들레가 찾아온다. 잠 속의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깨어나 그걸 소홀히 할 순 없다. 여기에서 하나는 묻어갈 수 있겠다. 나의 이런 엿보기를 그이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터이다. 하지만 내 생각의 둘레가 일으키는 물결을 내공 깊은 그이는 어디에선가 알아챌 것 같다는 분명한 느낌. 그리고 어느 날 그 집의 뒷산 꼭대기까지 그 파장이 가닿을 수도 있겠다는 정확한 기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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