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동서남북] 우리 집 옆 과학관

그런 곳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굳이 큰마음 먹고 날을 잡지 않아도 되는 곳, 버스 몇 정거장만 가면 만날 수 있는 곳. 아이에게는 신기한 하루가 되고 어른에게는 커피 한잔을 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되는 곳.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들러도 어색하지 않고, 퇴근길에 전시 하나 보고 강연 하나 듣고 아이와 함께 만들기 체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는 곳. 거창한 이름보다 먼저 "가까워서 좋다"는 말이 떠오르는 우리 동네 핫 플레이스. 바로 '우리 집 옆 과학관'이다.
이제 과학관은 특별한 날에 견학 가는 시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늘의 과학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휴대전화에도, 아이들이 만나는 인공지능에도, 도시의 안전과 교통에도 과학은 늘 함께 있다. 문제는 과학이 이렇게 가까이 와 있는데도, 많은 시민에게 과학은 여전히 멀고 어렵고 조금은 딱딱한 세계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 필요한 것은 "과학을 알려주는 시설"을 넘어, 시민이 우리 집 가까이에서 과학을 편하게 만나고 즐겁게 경험하며 자기 삶과 연결할 수 있는 생활 속 과학문화 공간이다.
좋은 정책이란 거창한 구호나 보고서 속 문장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우리 집 근처에 갈 만한 곳이 하나 더 생기고, 아이가 "또 가자"고 조르고, 부모는 "이런 곳이 왜 진작 없었을까" 하고 웃게 될 때, 정책은 비로소 생활 속에서 체감된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부모의 한결 여유로운 주말로, 시민의 새로운 배움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행정의 가치와 내가 내는 세금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결국 좋은 공공정책이란 시민에게 멀리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일상 속에서 "우리 동네가 좀 더 살기 좋아졌다"는 체감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크고 웅장한 대표 과학관이 아니다. 군·구마다 시민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과학문화 거점이 필요하다. 그곳은 과학을 눈으로만 보는 전시장이 아닌, 직접 만지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만들고, 쉬고, 다시 찾아오고 싶은 복합과학문화공간이어야 한다.
과학관이면서도 도서관 같고, 전시관이면서도 쉼터 같고, 배움의 장소이면서도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어야 한다. 그곳에서 어린이는 호기심을 키우고, 청소년은 미래를 상상하며, 부모는 자녀와 함께 배우고, 어르신은 새로운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낯설지 않게 만날 수 있다.
AI 시대에는 이런 공간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무엇을 믿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는 결국 시민의 힘에 달려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을 많이 아는 사람만이 아니다. 기술을 삶과 사회 속에서 읽어내고, 변화하는 세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이다. 그 힘은 책 한 권, 기사 한 줄만으로 충분히 길러지지 않는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묻고,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 속에서 자란다.
도시를 품격 있게 만드는 것은 높은 건물만이 아니다. 가까운 공원, 편한 도서관,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 시민의 삶을 바꾼다. 이제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 우리 집 가까이에서 미래과학기술을 만나고, 세대가 함께 배움과 상상과 휴식을 나눌 수 있는 과학문화 생활 인프라다. 과학관은 동네 체육관처럼, 작은 도서관처럼, 주민문화센터처럼 우리 삶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과학은 시민의 일상이 된다.
그래서 바란다. 멀리 있는 큰 과학관도 좋지만, 과학을 통해 동네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는 곳이 군·구마다 우리 동네에 하나씩 생기기를. '우리 집 옆 과학관'은 앞으로의 도시가 시민에게 건네야 할 가장 다정하고도 미래적인 약속이다.
/한기순 인천대학교 창의인재개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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