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굉음 뚫고 "위험!" 경고 … AI통역앱 외국인 노동자 구하죠
직접 안전모·작업복 차림으로
공사현장 150곳 누비며 완성
'함마(큰 망치)' 등 은어도
40개국 이상 다국어로 번역
소통 단절로 인한 인재 예방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겪은
끔찍한 사고가 개발 동기돼

"오늘 작업은 지붕부터 벽까지 페인트칠을 마무리하는 겁니다. 높은 곳에서 작업할 때는 반드시 안전고리를 체결하세요."
매일 아침 건설 현장에서 열리는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 한국인 관리자가 스마트폰 앱을 켜고 말하자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다국적 노동자의 스마트폰에서는 관리자의 말이 그대로 자국어로 번역돼 흘러나온다. 시끄러운 현장을 감안해 스마트폰 화면에도 번역된 지시사항이 문자로 표시된다.
굴착기 엔진 소리, 고함 소리 등으로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함마(큰 망치)' '나라시(바닥 평탄화 작업)' 같은 공사판 특유의 은어를 인공지능(AI)이 정확하게 인식해 번역한다. 4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산업 현장 특화 AI 통번역 솔루션 '하이워커(HiWorker)'가 도입된 건설 현장의 아침 풍경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근로자 100만명 시대다. 지방 제조 공장과 건설 현장은 이미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70~80%에 육박한다. 반면 현장에서 이들을 통솔할 한국인 관리자, 이른바 '김 반장'을 구하는 데는 평균 3개월 이상이 걸린다. 아침 회의 때마다 많게는 10가지 이상의 언어가 뒤섞이지만, 정작 중요한 안전 지시는 한국어로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문제에 주목한 사람이 윤정호 하이로컬 대표(38). 그는 "나도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였던 경험이 있다"며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현지 식당 주방에서 일할 때 동료가 급박하게 비키라고 외치는 지시를 제때 알아듣지 못해 등 위로 뜨거운 기름이 쏟아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회상했다.
윤 대표는 "그때 내가 그 말을 잘 알아들었더라면 끔찍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한국의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도 매일 현장에서 '비켜라' '위험하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솔루션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AI가 공익적으로 활용되면서 실제로 돈을 버는 서비스 모델로 주목된다. 원래 하이로컬은 글로벌 영어 회화 서비스로 출발했다. 그러나 윤 대표는 언어를 배우는 시장보다 소통 오류로 생명이 오가는 산업 현장에 진짜 기술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조용한 사무실용 범용 번역기가 공사 현장에서 통할 리 없었다"면서 "직접 안전모와 작업복을 챙겨 입고 3개월 동안 전국 건설 현장과 제조 공장 150여 곳을 돌아다니며 개발했다"고 말했다.
하이로컬 개발팀은 공사 현장에 특화된 AI를 만들기 위해 현장 환경에 맞춰 여러 개의 AI 모델을 복합적으로 활용했다. 윤 대표는 "기계 굉음 속에서 사람 목소리만 추출하는 소음 필터링 기술과 현장 특유의 은어·전문용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개발 역량을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공사 현장은 조금만 주의를 소홀히 해도 사고가 생기는 곳이다. 하이워커는 사용법을 최대한 간편하게 설계했다. 관리자가 QR코드만 보여주면 노동자들은 이를 스캔해 다국어 채팅방에 접속한다. 윤 대표는 "완벽한 실시간 동시통역이 어려운 거친 작업 환경의 한계를 고려해 우선 작업 전 지시사항 번역이나 안전 교육 때 텍스트 번역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모든 대화 기록은 서버에 보존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 기술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현장의 시선 자체가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그는 "산업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동안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지시만 받는 단순한 부품처럼 취급되며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관리자가 작업의 전체적인 그림과 맥락을 그들의 모국어로 명확하게 설명해주면 이들도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현장의 주체로 당당히 참여하게 된다"며 "AI를 활용한 정확한 소통은 단순히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소통 단절이 부르는 인재를 막아내는 가장 확실한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이새봄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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