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판 ‘노아의 방주’... 세계 최초 ‘데이터 대사관’ 만든 에스토니아

안별 기자 2026. 5. 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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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전자정부 시스템을 볼 수 있는 ‘e-에스토니아’ 쇼룸. /Flickr

북유럽의 에스토니아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과거 파편화된 데이터 수집을 극복하기 위해 파격적인 도박을 감행했다. ‘디지털 국가’로 완전한 전환이다. 여기에는 “영토는 침공당해도 데이터가 살아 있다면 국가는 지속된다”는 생존 철학이 깔려 있다. 철학의 결정체가 바로 2018년 룩셈부르크에 세워진 세계 최초 ‘데이터 대사관(Data Embassy)’이다. 인구 약 130만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를 전자정부 선진국으로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

데이터 대사관은 일반적인 해외 백업 데이터센터와 성격이 다르다. 데이터 대사관의 핵심은 국제법상 일반 대사관과 동일한 불가침권을 부여받았다는 점이다. 서버는 서유럽의 룩셈부르크 땅에 있지만, 데이터와 시스템에 대한 모든 주권은 오직 에스토니아에 있다. 룩셈부르크는 보안 수준이 높고 디지털 주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나라로 꼽혀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우방국이 됐다.

에스토니아가 디지털 피난처를 고민하게 된 계기는 2007년 발생한 러시아 해커발(發) 추정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었다. 당시 사이버 공격으로 국가 시스템이 약 3주간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후 에스토니아가 물리적 영토의 한계를 넘는 구조를 구상한 것이 데이터 대사관이다. 본토의 서버가 전쟁 등으로 파괴되더라도, 전 세계 어디서든 디지털상으로 국가 기능을 즉각 재개할 수 있다. 디지털판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전자정부학 교수 출신 로버트 크리머 박사는 “단순한 하드웨어 보호를 넘어 극한 상황에서도 정부 기능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것이 디지털 대사관의 핵심”이라고 했다.

단순히 서버를 해외에 둔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기술보다 면책 특권 같은 우방국과 외교 조약이 우선이다.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국제 홍보 기관 ‘e-에스토니아 브리핑 센터’의 크리스티나 크리이사 홍보 총괄은 “단순한 백업 계약은 위기 시 법적 효력이 없다”며 “강력한 외교 조약과 면책 특권, 그리고 위기 시 누가 암호 키를 통제할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국방에 투자하듯 데이터 대사관에 투자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국가를 작동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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