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그렇게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한다 [삶과 문화]

어버이날이다. 1956년 어머니날로 지정되었다 1973년 어버이날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이 날이면 어머니가 자연스레 먼저 떠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부모 역할이나 양육의 장면에서 여성이 우세한 것은 임신 9개월간 어머니 몸의 준비와 변화 과정, 그리고 극한 신체 체험인 출산이 부여하는 신화적 자리가 주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떨까.
아버지는 차근차근한 준비 없이 간접 체험만으로 어느 날 덜컥 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육아의 생물학적, 신경적 기원을 살펴본 연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성들도 호르몬 변화를 겪는데, 그 결과가 이후 자녀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미국 에모리대 심리학과 제임스 릴링 교수팀에 따르면, 아버지 되기와 연관된 호르몬 변화들 중에는 ‘테토남’의 배경이 된 바로 그 테스토스테론 감소와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 증가가 대표적이다. 파트너의 임신 기간 중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감소한 아버지가 출산 이후 아기와 엄마를 더 많이 돕고 육아에 더 깊이 관여한다는 결과도 있다.
호르몬 변화를 통해 몸이 준비되었다고, 어떤 아버지가 될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준비를 통해 잠재된 아버지다움은 자녀가 태어난 이후 함께 보낸 순간들의 기억이 쌓여가며 발휘되어 부모 자식 간 관계의 모양새가 비로소 만들어진다. 2025년 번역 출간된 진화인류학자 사라 블래퍼 허디의 '아버지의 시간’에서도 양육에 적극 참여하는 아버지의 생물학적 변화와 시간, 노력의 중요성을 함께 제안한다.
예전 아버지들은 어머니들에 비해 자녀와의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주말 백화점에는 유아차에 아기를 태우고 시간을 보내는 젊은 아버지가 많다. 회식 자리에서 아이 학원이 끝날 시간이라며 서둘러 일어나는 중년의 아버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생물학적으로 준비되었던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아버지들이 여전히 많다. 한편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지만 그리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먹먹해하는 경우도 있다. 노력 여부와 정도 차이에 관계없이 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었지만 끝내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극복하고 싶었던 아버지를 어느새 내 안에서 만나게 된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그런 아버지들에게 과학이 주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당신의 몸과 뇌는 적어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직접 경험되는 어머니의 변화보다 훨씬 간접적이고 미묘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고. 그러니 준비 없이 덜컥 아버지가 됐고 결국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쓸쓸해하지 마시라고.
나의 아버지와 내 아들의 아버지, 그리고 세상 모든 아버지를 생각하며.

김채연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뇌인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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