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개헌 무산에 광주전남 시민 '허탈'

정성현 기자 2026. 5. 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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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전후 세대 모두 비판 한목소리
“오월정신 정치적 유불리 대상 아냐”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지 걱정돼”
“국힘, 역사적 평가 피하기 어려울 것”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열렸던 전남도청 앞 광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5·18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조차 성립되지 못하자 광주·전남 시민들 사이에서 허탈감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이날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국민의힘 표결 불참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개헌안에는 5·18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세대는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놓쳤다"며 정치권의 약속 파기를 비판했고, 5·18을 경험하지 못한 청년 세대 역시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5·18을 강조하면서도 책임 있게 나서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80년 5월 광주를 겪은 정모(71)씨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그동안 5·18과 부마항쟁 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해왔다"며 "막상 실천 단계에 와서는 정치권 이해관계에 밀려 또 멈춰 섰다"고 말했다.

정씨는 "국가 권력이 민간인을 향해 폭력을 행사했던 역사를 겪었고, 그 경험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졌다"며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역시 5·18의 경험과 기억이 있었기에 시민들이 더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각자 판단해 표결해야 할 사안인데 당론으로 묶어 출석조차 막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치권이 진정으로 5·18 정신을 존중한다면 최소한 표결에는 참여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쟁 당시 광주에 있었던 영광군민 이경희(62)씨도 국민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이씨는 "5·18 정신 헌법 수록에 찬성한다고 말해온 정치인들이 정작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자 침묵하고 불참했다"며 "오월 정신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특히 이번 무산이 다음 세대에 남길 영향을 우려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헌법에 새기지 못하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엄혹한 시절을 직접 겪었던 입장에서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 희생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왔는데, 그 뜻을 헌법에 담을 기회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놓친 것은 안타깝다"며 "정치권은 더 이상 5·18을 말로만 소비하지 말고 국민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에 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의된 이번 개헌안이 정략적 산물이라고 보고 반대 당론을 내세워 표결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5·18을 직접 겪지 않은 청년 세대도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다만 반복되는 정치권의 약속과 무산 과정에 대한 피로감도 드러냈다.

조선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재학생 김태홍(24)씨는 "5·18은 광주만의 역사가 아니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의 역사"라며 "헌법 전문 수록은 국가의 핵심 가치를 확인하는 의미가 크지만 추진 과정에서 국민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광주정신을 강조해왔지만 선거가 끝나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면서 "지역 정치인들조차 헌법 전문 수록 문제에 책임 있게 나서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전남대학교 대학원생 임정현(25)씨는 헌법 전문 수록이 역사 왜곡 문제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5·18은 청년 세대에게 민주주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역사이지만 최근 온라인 등을 중심으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며 "여전히 5·18을 조롱하거나 근거 없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반복되는 현실이 문제"라고 말했다.

임씨는 "헌법 전문 수록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국가적으로 인정하고 왜곡 문제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민주주의 역사는 정파를 떠나 우리 사회가 보편적 가치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 희생으로 지켜낸 투표권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든 정치권, 특히 책임 있는 표결에 나서지 않은 이들은 역사의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이번 개헌 무산의 가장 큰 책임은 끝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에 있다"며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최소한의 가치마저 외면한 만큼 정치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 정치권 역시 영남권 의원 설득 등 실질적인 정치적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며 "단순한 구호를 넘어 다른 지역과 연대하고 설득하려는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시민들의 요구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장동혁 대표(왼쪽)와 송언석 원내대표(오른쪽)를 비롯한 의원들을 대표해 개헌과 관련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