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리더십’ 진단②] ‘보여주기’ 넘어 ‘신뢰의 재설계’로

박설민 기자 2026. 5. 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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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 파업은 단순한 임금 협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내부 구성원에게 '성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설득하지 못했을 때 어떤 파열음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삼성전자는 항상 '최고'였다. 기술과 사내 문화에 있어 국내 기업의 선도자 역할을 해왔다. 역설적이게도 사상 최고의 실적은 삼성전자 내부의 부정적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성과급 제도에 대한 노사 갈등과 총파업 예고 사태의 형태로 드러났다.

이번 삼성전자 노조 파업은 단순한 임금 협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내부 구성원에게 '성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설득하지 못했을 때 어떤 파열음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지금이 삼성전자 경영진의 리더십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알려준다.

◇ 공정성 훼손의 위기, '보신주의'를 부른다

조직 내 공정성 훼손 문제가 지속되면 조직원 간 협력 고리는 약해진다. 특히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서는 조직원들이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 즉 '보신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임원급의 고위 경영진은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각 사업부 구성원들은 보상을 지키기 위해 단기적 '보여주기 성과'에 급급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단기 성과 집착은 회사의 장기적 가치와 조직원들의 융합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2004년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팀은 미국 대기업 고위 임원 401명을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대다수 임원이 분기 실적 목표를 맞추기 위해 연구개발과 임직원 임금 인상을 줄이거나 신규 프로젝트, 고수익 사업 투자를 감소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서는 조직원들이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 즉 '보신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임원급의 고위 경영진은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각 사업부 구성원들은 보상을 지키기 위해 단기적 '보여주기 성과'에 급급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전(前) 삼성전자 DS사업부 근무자였던 A씨도 기자에게 "2019년 당시 임직원 사이에선 공정 수율 대비 수익이 안 나는 최신 반도체 기술 개발보단 메모리에 집중해야 성과가 인정된다는 분위기가 돌았다"며 "임원들 역시 이와 같은 판단으로 개발 부서를 대폭 축소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A씨가 말한 부서는 바로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김영주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겸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석연구위원은 "보신주의는 리더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특히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낮은 조직일수록 리더들의 '방어적 의사결정(defensive decision-making)'은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패에 대한 귀인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조직 문화,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 체계, 발언이 불이익으로 돌아온 학습된 경험 등이 보신주의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낸다"며 "이는 리더와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 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보신주의는 리더 개인의 성향보다 지배구조와 오너십 구조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더"며 "최고 의사결정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서, 중간관리자가 책임 있는 결정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노사 갈등, 조직 내 리더십 불안정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혔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 뉴시스

◇ 해법은 '보상안' 넘어 신뢰 회복… 중간관리자 역할 재설계 필요

현재의 노사 갈등, 조직 내 리더십 불안정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혔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선 최고경영진뿐만 아니라 '중간 관리자'도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영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먼저 중간관리자는 '방패막이'의 역할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최고경영진과 구성원 간의 '조율자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중간관리자에게 의사결정 재량권, 팀 수준에서 자원 배분이나 업무 방식을 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필요하다. 위로 보고하는 관리자인지, 아래를 이끄는 리더인지를 조직이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김영주 교수는 "중간관리자가 질적 리더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의사결정권을 가진,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역할에 방점을 찍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위로 올릴 수 있고 그 목소리가 실제로 업무에 반영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역시 완벽한 해법이 되긴 어렵다. 삼성전자 내부 임직원들이 임금 협상, 성과급 제도 절차가 공정하다고 믿게 하려면 그동안 노사 간 쌓아온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가 본격 활동한 것은 2022년부터다. 따라서 노사 간 신뢰가 충분히 쌓이기엔 다소 부족한 시간이다.

김영주 교수는 "절차가 공정해도 내게 돌아오는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개인에게는 불공정하게 보일 수 있다"며 "보상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구성원 전체의 문제로 노조 등 구성원들과 최고경영진의 대화, 협상 자체가 절차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갖추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우선적으로 바꿔야할 전략을 한두 개로 제안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이는 기업이 처한 상황과 구조에 맞춰 이론이 제시하는 처방이 작동하는지는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간관리자가 리더로서 권한과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조직 문화 안에서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제도가 있어도 제도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이 오는 조직이라면 이는 이론에서 제안하는 조건이 아무 의미없는 미사여구, 장식에 그치게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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