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가로는 못 사죠”...20·30세대 1인 가구 붙잡은 ‘리퍼브 매장’

서고은 기자 2026. 5. 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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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0·30세대 ‘리퍼브 매장’으로 발길…최근 10여 개 매장 입점
에어프라이어 반값·가구 최대 70% 할인…‘득템 소비’ 확산
불황형 소비 넘어 ‘합리적 소비’로…유통업계 새 틈새 채널로 부상
지난 7일 낮 12시께 찾은 대구 동구 한 리퍼브 매장. 소비자들이 의자에 직접 앉아보며 제품의 상태와 사용감을 확인하고 있다. 서고은 기자

"여기에 오면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에요."

고물가 장기화 속 '정가 소비'를 포기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리퍼브 매장'이 새로운 소비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퍼브(Refurbished) 제품은 단순 중고품과 달리, 소비자 단순 변심으로 반품됐거나 전시 과정에서 사용된 상품, 포장박스 훼손 제품 등을 재검수해 다시 판매하는 상품을 뜻한다. 기능상 문제가 없는 데다 정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최근 실속형 소비층 사이에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구 도심 상권 곳곳에서도 리퍼브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젊은 소비층 유입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기존 외곽 창고형 중심이던 매장형태에서 최근 북구와 동구, 남구 일대에 소형 가전과 생활용품 중심의 리퍼브 판매점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부터 대구 도심에 10여 개의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현재는 약 13개의 점포가 운영 중이다. 대구지역 주요 매장의 평균 매출도 꾸준히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일 낮 12시께 찾은 대구 동구의 한 리퍼브 매장. 매장 내부에는 전기포트와 에어프라이어, 캠핑용품, 의자, 선풍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진열돼 있었고, 상품 곳곳에는 '할인가에서 추가 50% 할인' 등의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매장 한편에서는 소비자들이 제품 바닥면이나 모서리를 직접 살펴보며 흠집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부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로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하며 가격을 비교해 보고 곧바로 장바구니에 담기도 했다.

매장을 찾은 소비자층도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중장년층 주부 고객 비중이 높았다면, 최근에는 자취를 시작한 20~30대 소비자들이 매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양손 가득 생활용품을 든 채 계산대 앞에 선 김하늘(28) 씨는 "전에는 작은 가전 하나 살 때도 인터넷 최저가 정도만 찾아봤는데, 어느샌가 그마저도 부담되기 시작했다"며 "에어프라이어나 청소기 같은 건 정가 주고 사기엔 솔직히 손 떨린다. 어차피 집에서 혼자 쓰는데 작은 흠집 하나 있다고 기능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 매장에서는 정가 12만 원 수준의 에어프라이어가 6만~7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었고, 5만 원대 전기포트는 2만~3만 원 수준에 진열돼 있었다. 일부 가구 제품은 정가 대비 최대 70% 가까이 할인된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책상과 책장 등 가구 제품에 '할인가에서 추가 50%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서고은 기자

리퍼브 소비 확산은 단순 절약을 넘어 하나의 소비문화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득템' 후기와 할인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부 인기 상품은 입고 직후 빠르게 소진되면서 특정 시간대에 방문객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중고·리퍼브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페리컬인사이트(Spherical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리퍼브 전자제품 시장 규모는 2023년 475억7천만 달러에서 2033년 1천237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전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 원 수준에서 2023년 26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리퍼브 소비 확산이 단순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소비 구조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새 제품 소유'보다 가격 효율성과 실용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리퍼브나 중고 소비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크게 낮아진 점도 시장 확대의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다만 리퍼브 제품 특성상 제품 상태 편차가 존재하고, 일부 상품은 교환·환불이나 사후서비스(AS)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어 구매 전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중고·리퍼브 소비가 경기 침체기에 나타나는 불황형 소비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합리적 소비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며 "리퍼브 시장은 새로운 틈새 지역 유통 채널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고은 기자 goeun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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