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북한과 조선, 이름 바꾸기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우리는 DPR 코리아다. 노스 코리아(North Korea)가 아니다.” 2023년 9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관계자가 언성을 높였다. ‘북측’이라고 언급한 기자를 쏘아붙였다. 사흘 뒤 조선중앙TV는 남북 여자축구 중계화면에 북한은 ‘조선’, 한국은 ‘괴뢰’로 자막을 달았다. 이듬해 10월 유엔총회에서 다시 발끈했다. 한국 대표단의 노스 코리아 발언에 북한은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부르라”고 맞받아쳤다.
□ 조선은 500년간 한반도의 국호였다. 고종이 1897년 근대주권국가 염원을 담아 대한제국으로 바꿨지만 1910년 일본 총독부는 다시 조선으로 되돌렸다. 1948년 한반도 북쪽에 들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쪽의 대한민국과 정통성 경쟁을 벌였다. 정부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면서 조선은 금기어가 됐다. 한국은 그들을 북한, 북한은 우리를 남조선으로 부르며 체제 우월성을 과시했다. 회담장에서는 신경전을 잠시 접고 중립적 표현인 남측, 북측으로 달리 불렀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를 존중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조선' 호칭 논란에 불을 지폈다. 남북관계는 한조관계라고 했다. 여론이 들썩이자 통일부는 학술회의를 열고 공론화에 나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못 박은 2024년 이후 한국, 대한민국으로 지칭해왔다. 그러니 우리도 북한이 원하는 조선으로 불러야 한다는 논리다. ‘이름 바꿔 부르기’로 상대의 실체를 인정해 대결의 악순환을 끊자는 주장이다.
□ 앞뒤 맥락이 틀렸다. 북한의 한국 호칭에는 선의가 아니라 두 국가로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저의가 깔렸다. 백두혈통 4대 세습을 위해 한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아닌 조선은 헌법의 영토조항과도 충돌한다. DPRK를 왜 북한으로 부르냐고 따지는 건 국민 공감대와 언어 주권을 팽개치는 격이다. 국제사회의 오랜 압박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은 북한이 고작 호칭을 바꾼다고 살갑게 나올까. 되레 불필요한 오해와 대북 인식의 혼선이 우려된다. 통일부의 의욕이 오지랖으로 비쳐서야 되겠나.
김광수 논설위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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