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5가보다 싸다?…카트 끌고 약 쇼핑하는 ‘창고형 약국’ 가보니
싸고 편하지만…“약까지 대형 마트식 소비” 우려도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제가 자주 먹는 약인데 일반 약국보다 몇천원은 싼 것 같아요. 이왕 온 김에 가족들 것까지 같이 사 가려고요. 편의점에서도 약을 파는 시대인데, 창고형 약국이라고 문제가 될 게 있나요?" (30대 서아무개씨)
7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창고형 약국 '메디킹덤약국'. 문을 연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매장 안은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다. 30~50명가량의 손님이 카트를 끌고 진통제, 소화제, 영양제 등을 담으며 매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직원들도 새로 들어온 수십 개의 의약품 상자를 뜯어 진열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손님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의 용산전자상가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지난 2월 문을 연 이곳은 가정용 상비약(일반의약품)과 영양제, 의약외품 등을 대량으로 저가 판매하는, 이른바 '창고형 약국'이다. 흔히 찾는 진통제와 감기약은 물론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까지 건강 관련 상품을 한곳에 모아 판매하고 있어 마치 건강 전문 대형마트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매장 곳곳에서는 국산 의약품과 영양제를 구매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계산대에는 10여 개의 약사 면허증이 벽에 붙어 있었고, 2~3명의 약사가 대기하며 복용법 지도와 결제를 돕고 있었다.
고물가 여파로 생활필수품인 약값 부담까지 커지면서 창고형 약국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유통 단계를 대폭 축소해 가격을 10~20%가량 낮추고, 약국마다 제각각인 판매 가격을 소비자가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창고형 약국은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처음 등장한 이후 올해 들어 서울 도심까지 빠르게 확산하며 현재 전국 40여 개 매장이 운영 중이다.
이날 기자가 일부 인기 품목 가격을 비교한 결과, 이른바 '약국 성지'로 불리는 남대문·종로 일대 약국과 비슷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통상 3000~4000원대에 판매되는 '타이레놀500mg' 10정은 남대문 일대 약국에서 22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창고형 약국에서는 2500원으로 약 300원 차이가 났다. 진통제 '이지엔6이브'와 상비연고인 디판테놀 연고 등은 남대문과 용산 약국의 가격이 같았다.
자녀의 유학을 앞두고 상비약을 사러 왔다는 50대 여성은 "일반 약국에서는 원하는 약을 기계적으로 건네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는 성분을 비교해 같은 효능이라도 더 저렴한 복제약을 선택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복용 방법이 궁금하면 매장 내 약사에게 직접 설명도 들을 수 있어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대용량 파스를 구매한 70대 남성도 "종로 약국 거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약을 천천히 비교하거나 물어볼 시간이 부족했다"며 "여기는 마트처럼 둘러보면서 필요한 약을 직접 고를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소비자는 환호하지만…약물 오남용·상권 붕괴 논란도
다만 창고형 약국 확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소비자로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원하는 의약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약물 오남용과 복약지도 부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의약품은 일반 상품과 달리 복용량과 사용 기간 등에 대한 전문적인 안내가 필요한데, 대형 매장 구조에서는 소비자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한 복약 상담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감기·비염 치료제에 쓰이는 (슈도)에페드린 성분 의약품이 일부 창고형 약국에서 대량 판매되면서 약사회가 징계에 나서기도 했다. 슈도에페드린은 다량 유통 시 메스암페타민 등 마약 제조에 악용될 수 있어 판매와 관리가 엄격한 성분으로 분류된다.
약사회 등 직역 단체에서는 창고형 약국이 동네약국 생태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약사회가 창고형 약국 인근 소규모 약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8%는 "창고형 약국이 동네약국 생태계를 침범하고 약국 본연의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고 답했다. 창고형 약국 개업 이후 매출이 40~50% 감소했다는 응답도 일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춘배 대한약사회 부회장(창고형 약국 대응TF 팀장)은 "창고형 약국이 약국을 복약 상담과 건강관리 공간이 아닌 가격 중심의 판매 구조로 몰아가고 있다"며 "의약품은 약사의 전문적 판단과 복약 상담을 전제로 관리돼야 하는 만큼 창고형 약국 확산은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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