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연구장비 사업화 ‘외길’… 열반사 현미경 잇딴 상용화 쾌거

이준기 2026. 5. 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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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 조언에 공대 선택 ‘신의 한수’
반도체 레이저 분야 연구 현미경과 인연
대학원때 경험으로 ‘열반사 현미경’ 연구
기업에 기술 이전했지만 제품화엔 실패
레이저 스캐닝 공초점 열반사 현미경 개발
대학·연구기관 중심 꾸준히 수요 늘어나
연구자·정부·기업 등의 마인드 전환 필요
연구장비 특성 반영 장기투자 선행돼야
장기수 기초지원연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이준기의 D사이언스
장기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


“연구는 멈추는 순간 죽습니다. 연구를 멈추면 경쟁자들이 금세 따라 옵니다. 연구장비 분야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연구장비를 국산화하고 사업화하기 위해선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장기수(사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은 연구장비 국산화를 넘어 사업화라는 ‘두 개의 데스밸리’를 건너기 위해선 멈춤 없는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산 연구장비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장 단장은 지난 16년간 열반사 현미경 국산화와 사업화에 열정을 쏟아 왔다.

그가 개발한 열반사 현미경은 국내 기업에 기술이전돼 상용화를 통해 시장에 출시됐거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장 단장은 4건의 기술 이전을 성사시키며 외산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연구장비 산업 생태계 형성에 마중물 역할을 해 왔다.

그는 “연구장비 시장은 작고, 수요 자체도 적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비 개발을 통해 파생되는 경제·산업적 파급효과가 더 중요하다”며 “긴 호흡을 갖고 인내심 있는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연구장비 하나를 개발하고, 이를 연구자들이 쓸 수 있게 사업화하기까지 족히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장 단장은 “우리가 개발한 연구장비가 기업과의 성공적인 사업화 과정을 거쳐 대기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고객들이 믿고 쓸 수 있도록 국내 연구장비 산업 경쟁력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담 = 이준기 IT과학바이오부 부장


◇공대 선택은 ‘신의 한수’… 반도체 레이저 연구로 현미경과 인연

물리 과목을 좋아한 장 단장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생각하면 공과대학으로 진학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현실적 조언으로 공과대학에 지원했다.

돌이켜 보면 그 때 이과 계열이 아닌 공과 계열을 선택했던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고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입학한 응용물리학과가 자연대가 아닌 공과대 소속으로 4년 동안 자연과학과 공학계열 수업을 절반씩 들으며 소위 ‘융합형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며 “그게 자양분이 돼 과학적 원리에 공학적 사고가 필요한 연구장비 개발로 이어진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통신공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부하던 중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발명해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 교수의 에세이를 읽은 뒤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 광전자공학 연구실에 들어가 반도체 레이저 분야 연구를 시작했다.

장 단장은 “교수님이 광전자분야에서 워낙 유명하신 분이시고, 당시에는 접하기 어려운 수직공진표면 발광레이저 장비를 활용한 연구를 하고 계셨다”면서 “그 때 시대를 앞서하는 연구를 할 수 있었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반사 현미경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기수 기초지원연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대학원 시절 아이디어로 ‘열반사 현미경’ 개발 나서

그는 연구장비 개발을 위해 대규모 연구직 공채를 진행하던 지금의 기초과학지원연과 인연이 닿아 연구개발장비부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연구장비 국산화를 위한 신규 사업 기획을 맡아 적외선 현미경 개발에 나섰다.

장 단장은 “적외선 렌즈 가공시설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무작정 적외선 현미경 개발을 시작했는데, 중국이 이미 아주 싸고 경쟁력 있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구 방향을 열반사 현미경으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열반사 현미경 개발로 과감히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학위 과정 때 반도체 레이저 분야 연구를 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 물질의 온도 변화에 따른 빛의 반사율을 측정하면 미세 영역의 온도 분포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격적으로 열반사 현미경 개발 연구에 나섰다”고 말했다.

◇열반사 현미경 개발 성공… 기술이전 후 상용화는 ‘실패’

이때 시작한 열반사 현미경 개발 연구는 16년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연구분야여서 숱한 어려움과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연구장비 외산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소명의식과 책임감으로 주위의 걱정과 우려를 불식시켜 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축적의 결과는 값진 연구성과로 돌아왔다. 장 단장은 논문과 특허에 만족하지 않았다.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시장에서 상용화될 수 있도록 산업체와 협력 연구에 주력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개발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반도체 등 미세 구조의 발열 분포를 비접촉으로 정밀하게 시각화하는 ‘와이드필드 열반사 현미경’을 개발해 기업에 성공적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그에겐 이 현미경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국내 기업에 처음으로 기술을 이전했지만, 제품화까지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 단장은 “기술은 저희가 제공하고, 기술 이전 기업이 마케팅만 잘 하면 제품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면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에 이전한 게 원인이 돼 결국 1년 넘도록 제품화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기수 기초지원연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공초점 열반사 현미경 개발 이어 상용화까지 성공

그는 뼈아픈 기술이전 실패를 뒤로 한 채 빛의 파장(스펙트럼)별 반사율 변화를 이용한 ‘분광 열반사 현미경’과 반도체 칩 내부 온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 ‘레이저 스캐닝 공초점 열반사 현미경’을 연이어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현미경은 기존 적외선 열영상 현미경에 비해 공간분해능(근접한 두 물체를 식별하는 능력)이 10배 뛰어나고, 표면 발열뿐 아니라 내부 발열까지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장비의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아 2018년 출연연 10대 우수연구성과로 선정됐다.

반도체 연구자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이종호 서울대 교수가 장 단장이 개발한 열반사 현미경을 직접 이용해 연구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장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장 단장은 이번만큼은 우리 기술을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 역량을 갖춘 기업에 넘기겠다는 마음으로 기술이전을 준비했다.

운이 좋게도 KAIST 출신 현미경 전문가들이 창업한 나노스코프시스템즈에 기술을 성공적으로 이전했고, 3개월 만에 제품이 출시됐다.

국내 대학 교수가 상용 제품의 1호 구매자가 돼 입소문을 타고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첫 실패가 좋은 약이 돼 기술사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10대 가량 팔렸고,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수 기초지원연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잇따른 기술이전 체결… 연구장비 넘어 ‘산업용 장비’로

연구장비 개발에 이어 사업화에 성공한 장 단장의 연구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개발한 열반사 현미경의 모든 기능을 통합한 ‘5차원 다중 모드 열반사 현미경’을 완성하며 기술의 정점을 찍었다.

이 현미경은 국내 연구장비 전문 기업인 넥스트론에 기술이전돼 해외 시장 진출을 목표로 상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장 단장은 “넥스트론은 기술력뿐 아니라 해외 마케팅에 강점을 갖고 있어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우리의 연구장비가 해외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달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전문 기업인 에이치비솔루션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넥스트론에 이어 1년 만에 또다시 기술이전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번 기술이전은 이전과 달리 열반사 현미경을 연구장비가 아닌 반도체·디스플레이 결함 검출 및 분석을 위한 산업용 장비로 상용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대형 장비로 스케일업해야 하고,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평가했다.

이어 “에이치비솔루션과 긴밀히 협력해 결함을 정밀하게 검출·분석해 제품 수율 개선에 기여하는 첨단 산업장비로 상용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차세대 버전을 개발하기 위한 장 단장의 연구는 멈추지 않고 있다. 150도 수준에 머물렀던 온도 측정 범위를 1000도 이상으로 끌어 올리고, 측정 속도를 100배 이상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장기수 기초지원연 전략장비개발연구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연구자·기업·정부, 인식 전환해야”… 연구장비 산업 생태계 활성화

장 단장은 국내 연구장비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연구자, 정부, 기업 등의 마인드 전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구자의 경우 이용자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반영한 연구장비 개발과 성능 개선을 위한 사업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장비를 바라보는 정부의 정책적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연구장비를 단순히 ‘몇 대 팔렸냐’는 판매 관점에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연구장비 개발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그로 인해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어떤 파급효과가 있는지를 더 비중 있게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반도체 기업들이 수명과 내구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발열 이슈를 ‘열 측정장비’ 국산화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반도체 생산 수율 향상 등을 통해 거둘 수 있는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단장은 “연구장비 하나를 개발해 사업화하고,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걸린다”며 “이런 산업적 특성을 반영해 긴 호흡을 갖고 연구장비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애써 개발한 연구장비를 산업용 장비로 스케일업하는 데 필요한 실증과 테스트베드 인프라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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