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종말인가 전환인가...요즘 극장의 갖가지 발버둥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5. 7. 15:28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침체됐던 극장가에 모처럼 반등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개별 흥행작의 성공이 곧 산업 전반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극장 시장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구조적 변화를 겪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한국 영화 매출은 2333억원, 관객 수는 2401만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17.5%, 115.1% 증가했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94.5%, 관객 수는 79.7% 수준에 머문다. 기술 특별관 확대와 티켓 가격 상승으로 객단가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정작 관객 수는 회복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극장 산업이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니라 소비 방식 자체의 변화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극장은 '최신 영화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명확한 기능을 가졌지만, 이제 그 지위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같은 OTT 플랫폼에 상당 부분 넘어갔다. OTT가 콘텐츠 소비의 기본값을 대체하면서, 극장은 새로운 존재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국내 멀티플렉스 업계도 영화 상영 공간이라는 전통적 의미를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꾀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극장의 이벤트 플랫폼화다. 롯데시네마는 최근 JYP 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보이그룹 킥플립이 등장하는 관람 에티켓 영상, 포토카드가 포함된 기획 상품, 상영관을 팬덤 공간으로 꾸민 브랜드 상영관을 선보였다. 관계자는 "킥플립과의 협업은 극장 공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며 팬덤 기반 IP를 활용해 차별화된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실황 영화 'Taylor Swift: The Eras Tour'는 북미 극장 체인 AMC Entertainment를 통해 개봉해 수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극장이 단순한 영화 유통 창구를 넘어 대형 이벤트 상영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두 번째 변화는 가격 체계의 다층화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주요 멀티플렉스는 좌석 위치, 시간대, 특별관 여부에 따라 가격을 세분화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관람 경험에 따라 가격을 차등화하려는 시도로, 과거 일률적인 요금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문제는 이 가격 차등이 관객에게 '더 나은 경험에 대한 대가'로 인식되기보다, 단순히 좌석 위치나 시간대에 따른 '불가피한 추가 비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 여전히 관객 입장에서는 한 편당 1만5000원 안팎의 지출 구조가 기본값으로 인식된다. 반면 OTT는 월정액 기반으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있다.
해외에서는 AMC Entertainment가 'A-List'(일주일에 영화를 일정 횟수 볼 수 있는 구독권) 같은 구독형 모델을 도입하며 극장도 반복 소비되는 서비스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역시 단순한 가격 차등을 넘어, 구독형·멤버십 기반 모델 등 지불 방식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해외에서는 AMC Entertainment가 'A-List'(일주일에 영화를 일정 횟수 볼 수 있는 구독권) 같은 구독형 모델을 도입하며 극장도 반복 소비되는 서비스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 역시 단순한 가격 차등을 넘어, 구독형·멤버십 기반 모델 등 지불 방식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세 번째 변화는 콘텐츠와 기술의 결합이다. 최근 극장 3사는 집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몰입 경험을 핵심 경쟁력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CGV의 IMAX, 롯데시네마의 광음시네마, 메가박스의 돌비 비전+애트모스 등의 기술 특별관은 초고화질 영상과 입체 음향을 결합해 관람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관은 일반 상영 대비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며 객단가 상승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VR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실험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롯데시네마는 '르세라핌 VR 콘서트 : 인비테이션'을 선보이며 전용 상영관을 구축했다. 12K 초고화질 기반의 VR 콘텐츠를 통해 실제 공연 현장에 가까운 몰입감을 구현, 기존 실황 상영과 다른 체험형 콘텐츠로 차별화를 꾀했다. 해당 상영은 서울 월드타워점을 시작으로 부산 지역까지 확대되며 지역 관객 접점도 넓히고 있다. 이는 극장이 영화 외 장르까지 포괄하는 체험형 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 변화는 OTT와의 관계 재정립이다. 극장과 OTT는 더 이상 대체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유통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영화 '휴민트'는 극장에선 손익분기점(400만) 달성에 실패했으나,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까지 기록하며 반전 흥행에 성공했다. 이 같은 사례는 콘텐츠가 극장과 OTT를 순환하며 소비되는 구조가 떠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극장은 더 이상 유일한 소비 채널이 아니라, 콘텐츠 가치와 화제성을 높이는 출발점 또는 확산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되는 시도는 수익 구조의 다변화다. 극장은 티켓 판매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부가 수익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팬덤 콘텐츠와 굿즈, 체험형 콘텐츠는 관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추가 소비를 유도하며, 부가 매출을 올린다.
일례로 CGV가 '슈퍼 마리오 갤럭시' 개봉에 맞춰 선보인 요시 팝콘통은 출시 첫날 완판되며 높은 수요를 드러냈다. 단순한 용기를 넘어 캐릭터 기반 수집형 상품으로 기능하면서 소비를 자극한 것이다. 일부 소비자들이 재판매를 목적으로 구매에 나서며 2차 시장까지 형성되는 모습은, 극장 굿즈가 하나의 독립적인 소비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극장이 상영 외 영역에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처럼 한국 극장 산업은 이벤트화, 가격 다층화, 기술 기반 경험 강화, OTT 연계, 수익 구조 다변화 등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시도하느냐보다 '그 시도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 모델로 정착하느냐'다. 개별 전략은 이미 구현 단계에 들어섰지만, 아직 산업 전반을 견인할 수준의 반복 소비 구조로 정착하지는 못했다. 결국 관객의 일상적 선택으로 극장이 다시 편입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재의 실험이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전환될 수 있을지가 향후 극장 산업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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