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아레나옴므플러스 2026. 5. 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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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끼고 사는 한국인을 보며 생각한다. 사시사철 아이스아메리카노만 찾는 한국인의 DNA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이 정도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발리로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호텔 취재가 목적이었지만, 마케팅 담당자는 발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중 하나가 커피 농장이었다. 거기서 '발리니스 커피'를 처음 알았다. 평범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었지만, 발리까지 갔으니 기왕이면 현지식으로 마셔보고 싶었다. 발리니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커피잔에 곱게 간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끝. 문제는 원두가 물에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던 것. 발리 사람들은 침전물을 삼키지 않기 위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마신다고 했지만,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입안으로 모래알 같은 원두가 넘어왔다. 다 필요 없고 한국에서 먹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간절해졌다. 메마른 식도를 타고 단번에 전두엽을 깨우는 시원함. 편의점에서도, 지하철역에서도, 스페셜티 전문점에서도 즐길 수 있는 아주 평범하고도 특별할 것 없는 그 맛. 그게 그리웠다.
사실 예부터 한국인은 차가운 국물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한반도 최초의 배달 음식도 냉면이었다. 조선시대 왕족과 양반들은 여름이면 시원한 냉면을 별미로 즐겼다고 한다. 시원한 식혜와 수정과 역시 한국인이 오래전부터 즐겨 마셔오던 음료. 냉장고가 없던 시절, 차가운 음식은 신분 높은 이들의 사치품이자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먹던 얼음은 겨울철 한강에서 깨온 얼음을 여름까지 창고에 보관했다 꺼낸 것이었다. 그만큼 귀했던 얼음은 나라의 큰 제사가 있을 때 사용했는데, 조선시대 왕들은 빙고에서 얼음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직접 보고를 받을 만큼 얼음을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그러니 시원한 얼음이 든 음식도 자연스레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또 한 번 궁금증이 생긴다. 왜 하필 아이스아메리카노일까? 아이스라테도, 아이스티도 아닌 아이스아메리카노인 이유는 뭘까? 그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대척점에서 하나의 이름이 나왔다. 커피믹스다.   

사람들은 여전히 '빠르고 간편하게 잠을 깨울 수 있는 커피'를 찾았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가장 싸고
빠르게 마실 수 있는 메뉴는 뻔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다.

잠을 깨우는 가장 빠르고 간편한 커피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군 부대에 보급되던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으로 흘러들어갔다. 씁쓸한 커피 맛은 '잘사는 선진국의 맛'으로 통했다. 서구 문화를 동경하던 이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다방을 찾았지만,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쌉싸름한 커피 맛은 익숙지 않았다. 이때 '333'으로 불리는 다방 커피가 등장한다. 커피, 프림, 설탕을 3:3:3 비율로 섞어 만든 다방 커피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았고, 이 무렵 우리나라 다방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동서식품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다방은 70개소였지만, 1953년에는 150개소, 1959년에는 3000개소로 늘어났다. 1959년 서울에서 소비된 커피는 연간 4000만 잔. 서울 시민 한 명이 1년에 평균 약 20회 다방을 방문한 셈이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가 등장하며 '아침에 커피 마시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6년 동서식품은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선보인다. 커피믹스는 동결 건조 우유인 '프리마'와 커피 가루를 일정 비율로 섞어놓아 쉽고 빠르게 마실 수 있는 커피다. 더 이상 다방에 갈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간단히 커피를 즐기게 된 것. 커피믹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처음부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달콤한 맛으로 단숨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했지만, 공장에서 커피와 프리마를 정확한 비율로 담지 못해 맛이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커피믹스는 IMF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들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했고, 직장인은 값싸고 간편한 커피로 아침잠을 깨웠다. 때마침 냉온수기가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였고, 그 흐름에 올라탄 인스턴트커피는 국민 음료로 자리매김했다. 마침내 커피는 한국인에게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잠을 깨울 수 있는 아침 음료'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커피믹스에서 아메리카노로 흐름이 넘어간 건 2000년대 초반의 일. 새천년을 전후로 스타벅스(1999년), 커피빈(2001년), 파스쿠찌(2002년) 등 해외 유명 커피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아메리카노는 커피믹스와 달리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음료였다. 직장인에게 커피란 단맛은 포기해도, 카페인은 포기할 수 없는 전투식량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빠르고 간편하게 잠을 깨울 수 있는 커피'를 찾았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가장 싸고 빠르게 마실 수 있는 메뉴는 뻔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다.

정말로 '아아'는 '뜨아'보다 맛이 없을까?
이따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얼굴을 찌뿌리는 외국인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정말 커피는 따뜻하게 마셔야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걸까?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커피 문외한이 즐기는 괴식인 걸까? 객관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 커피 칼럼니스트 조원진을 찾아갔다. 열다섯 살부터 커피를 마셔온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커피를 마시고 커피에 대한 글을 쓴다. "기본적으로 우리 미각은 상온에서 더 예민합니다. 커피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온도를 60~70°C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죠. 하지만 종종 차갑게 마실 때 더 맛있는 커피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원두의 발효 가공 과정이 세분화되고 있어요. 어떤 커피는 뜨겁게 마시면 너무 느끼한데, 차갑게 마시면 과일 주스나 수정과 같은 맛이 나기도 하거든요. 아이스에 어울리는 커피가 있을 뿐, 차갑게 커피를 마시면 맛이 없다는 말은 틀립니다." 여기서 또 하나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일찍이 커피 문화가 자리 잡은 유럽에서는 왜 그토록 아이스아메리카노에 각박할까? 유럽은 일찍이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커피 문화가 형성됐다. 유럽인에게 '커피=에스프레소'였고, 이른 아침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탄 카푸치노는 허용됐으나 물을 타는 것은 애초에 떠올려본 적 없는 선택지였다. 여기서 아메리카노 이름의 유래설이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상륙한 미군들은 쓰디쓴 에스프레소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향에서 마시던 드립커피 맛을 내기 위해 물로 희석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탈리아인이 미군을 비꼬듯 지칭한 것이 '아메리카노'라는 설이다. 아메리카노도 인정할 수 없는 유럽인에게 얼음까지 띄운 밍밍한 커피는 메뉴판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커피 입맛에 대한 편견은 또 있다. '한국인은 커피 산미를 싫어한다'는 막연한 편견. 실제로 카페에서 원두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 이런 질문부터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산미 있는 커피도 괜찮으세요?" 애초에 커피의 산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고 싶었다. 조원진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산미가 강한 커피가 있고, 산미만 강한 커피가 있죠. 분명 산미가 강하지만 '시다'라고 느껴지지 않는 커피가 있습니다. 이때 밸런스가 좋다고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정말 맛있는 자몽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럼 신맛보다는 자몽 향이 강하게 느껴지잖아요. 물론 거기에 신맛도 있겠지만요. '한국인이 커피의 산미를 싫어한다'라는 건, 아직 그만큼 좋은 커피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신맛에 더 예민한 점도 있을 겁니다.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커피의 단맛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그러니 커피에서 '과일의 향미가 납니다'라고 한다면 불쑥 거부감이 앞설 수는 있죠."

좋은 커피는 불편함 없는 커피
아이스아메리카노는 한국인에게 이제 생필품에 가깝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지하철 카드를 찍듯 당연히 마시는 것. 생필품에서조차 럭셔리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매일 변수 없이 똑같은 맛을 빠르게 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 흐름 속에서 저가 커피 브랜드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업체는 메가커피. 메가커피의 성장 속도는 무서운 수준이다. 2020년 601억원이었던 연간 매출액이 2024년 약 7.7배 수준인 4660억원으로 치솟았다. 저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 스페셜티 시장도 함께 성장 중이다. 여기에는 코로나 팬데믹도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부터는 국내 커피 유형별 판매액에서 볶은 커피 원두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겼다. 평일에는 저가 커피를 마시던 직장인도 주말 아침에는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스페셜티 판매량도 늘어났다. 조원진 작가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팬데믹 기간 다들 카페를 못 가니 집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기 시작한 거죠. 이 시기에 온라인 커피 클래스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유명 카페들도 팬데믹 기간에 원두 판매량이 늘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인터뷰를 나누며 마시던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마지막으로 조원진에게 '좋은 커피의 기준'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불편함 없이 마실 수 있는 커피. 저는 커피만큼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몸을 깨울 때, 삶이 피곤할 때 커피를 찾잖아요. 그러니 맛, 마시는 방식, 가격에서도 불편함이 느껴져서는 안 되겠죠. 그럼 충분히 좋은 커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기사는 출근길 메가커피에서 사온 20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쓰고 있다. 그 맛이 호주 시드니의 유명 카페에서 내린 롱블랙보다, 100년 된 일본 킷사텐의 드립커피보다 별로일 수 있다. 그러나 내게는 좋은 커피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쉽고 빠르게 채워주는 커피니까. 그러니 커피믹스든, 아이스아메리카노든 우리는 우리 식대로 즐기면 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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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주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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