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의 인문기행 ] ③ 십승지를 품고있는 왕도의 고장 ㅣ 공주

박기성 전문기자 2026. 5. 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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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백범 김구선생 몸을 숨기고 출가한 십승지 사찰

백제 운명처럼 깨지고 다친 마곡사 석탑 국보승격, 문화재위원들의 측은지심?
'민족문화대백과사전' 26권(편람편) 삼국시대 행정구역변천도(6세기말~7세기초)_웅주 일대에 군현들이 유난히 밀집되어 있다. 높지 않은 부드러운 산들과 산골평야로 이루어진 지형이라 예로부터 인구밀도 높았기 때문으로 마곡사 같은 십승지는 이런 인연으로 생겨났다.

[<사람과 산>  박기성  전문기자]  시내 건너편으로 공산성이 이웃 동네처럼 가까이 보인다. 처음으로, 공주 시내가 저렇게 좁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475년에 왕도가 되었다가 63년만인 538년에 사비로 천도한 까닭이 "공간이 협소해서"였음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산성 왼쪽 금강 위에 걸려있는 다리는 생뚱맞게도 트러스교다.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왕복 2차선 인도교인데 기차 다리처럼 삼각형 철골구조물로 되어있다.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길 때 약속한 몇 가지 보상 중 하나로 당시에는 한강철교 다음으로 긴, 인도교로는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대학이 없던 시절 최고 학부인 사범학교를 공주에 존치시킨 것도 같은 이유였다. 

공주인들에게 도청 이전은 1603년 충청감영이 들어서면서 300년 넘게 이어왔던 '충청도의 중심' 자리를 빼앗기고 상권 쇠퇴 등 경제적 타격이 우려되는 청천벽력 같은 사안이었다. 이에 주민과 유림들은 도청 이전 반대 기성회를 결성하고 산성 횃불시위와 투석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상경투쟁은 물론 총독부와 일본제국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할 정도로 격렬하게 반대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은 강행되어 도청은 10월 1일 대전으로 이사했으며 공주에는 금강철교라는 이름의 다리만 남았다. 

이런 공주는 1995년 도농통합시가 된 이후 여섯 동으로 이루어진 도회지와 유구읍,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정안면, 의당면, 반포면, 계룡면, 이인면, 탄천면의 아홉 면으로 되어있다. 2012년 세종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장기면과 금남면도 공주였으며 <대동여지도> 당시에는 대전천 서쪽 전부가 공주목에 속했다. 충청도의 네 목사고을 중 하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전국 12목의 일원이었다. 남북국시대에는 9주 가운데 웅주였고 삼국시대에는 도읍일 때도 있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26권 편람편 행정구역변천도 삼국시대(6세기말~7세기초)를 보면 고을이 유난히 밀집되어 있는 데가 웅주 일대다. 지금 이야기로 하자면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큰 들도 별로 없는데 군현들이 구들구들 모여있다. 지형상의 특징은 썩 높지 않은 산들이 퍼져있고 사이사이 산골평야가 끼어있는 모양 새로 산들은 하나같이 육산(肉山), 계룡산 빼고는 돌덩이를 찾아볼 수 없다. 충청남도 사람들의 기질은 바로 이 산세를 본받아 형성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런 고장의 한가운데 있는 '십승지' 마곡사를 찾아가며 보니 사곡천 골짜기 안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행정구역변천도 삼국 시대'만큼 마을이 많다. 남쪽부터 만수동, 강당, 능계리, 돌뜸, 새터, 원당리, 아래뜸, 윗뜸, 중뜸, 양지말, 시루터, 외단평, 안단평, 밤나무골, 돌고개, 가랏, 장다락골, 새알골, 춤다리, 장말… 사곡 면소에서 절 입구 상가촌까지 직선거리 6km에 동네가 스물이나 된다. 

절 좌우 물줄기와 산줄기의 싸고돎도 심상치 않다. 주산 태화산(약 345m)은 마곡사 북쪽 1.7km 지점에서 불쑥 솟았다가 100m를 내려간 뒤 동쪽으로 머리를 돌린 뒤 3km 북쪽의 조산(祖山) 국사봉(590.6m)으로 향하는데 국사봉 기슭에서 발원해 남으로 향하는 상원계곡은 산줄기를 따라 나란히 흐르니 남향, 서향, 남향으로 내려온다.

다음 절 1km 북쪽에서 마곡천을 만나 가람을 구불구불 돌아가다가 구암초교께에서 구암천, 화전에서 유룡천과 합류하는바 마곡사는 동서 양쪽으로 두 겹 산줄기와 두 겹의 물줄기에 싸여있다 할 것이다. 십승지의 필요조건이다. 

이렇게 꼭꼭 숨어있는 절이라 나로서도 찾아가 보기가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도 없고 특별히 갈 일도 없어 세월만 보내다가 급기야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명절에 일주일 예정하고 고향으로 가던 중 23번 국도변에서 "마곡사" 이정표를 만났던 것이다. 

절의 첫인상은 "심심산골에 박혀있는 가람을 평지절처럼 안쳤네"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본 백제문화권 산사들… 선운사, 송광사, 보림사, 능가사, 금산사, 내소사가 다 계단 오르지 않고도 돌아볼 수 있는 절집들이었다. 김구 선생이 머물렀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1898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 군인간첩 스치다 조스케를 참살한 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 탈옥, 여기서 출가를 한 것이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처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람이 몸을 숨길 데는 십승지가 딱이었다. 

다시 찾은 마곡사의 눈 5층석탑은 작년 1월 9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어 있었다. 여리여리 호리호리한 탑파는 백제라는 나라 운명처럼 여기저기 깨져 성한 데가 없었는데… 저 모양을 보고 생겨난 측은지심이 문화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싶다. 

상륜부를 이루는 1.8m 높이의 청동보탑이 지금 보니 몽골 에르덴조 사원의 스투파 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세부는 달랐으니 경천사지십층석탑 아랫부분 같은 2층 하단 위에 석종형(石鐘形) 중단이 중후하고 고깔 모양 상단 끝에는 징기스칸 군대의 아홉 개 툭(tug) 가운데 하나가 날아와 꽂혀있는 듯했다. 

절이 보유한 일곱 개 보물 가운데 하나 대광보전(802호)을 돌아 대웅보전(801호) 댓돌 앞에서 몸을 돌려 전경을 본다. 널찍한 대광보전 지붕 위에서 포개지고 합해지는 산릉이 마곡천 이쪽것인지 저쪽것인지 분간이 안 되게 얽혀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네 개의 싸리나무 내진주(內陣柱)가 통으로 2층 지붕 아래 도리를 받들고 있는바 측면에는 그런 기둥이 없어 1층 공간이 넓다. 2층 측면 '가운데 기둥'이 들보 위에 얹혀있는 온칸물림이기 때문으로 결구의 안정을 위해 외진주(外陣柱) 공포(栱包)에다 퇴량(退梁)을 걸쳤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2층 벽은 장식 없는 판자로 되어있는데 다식판처럼 가라앉은 우물천장, 3출목 공포의 퇴락한 단청과 대비되어 고색창연한 느낌이 확 온다. 어 느 시대 어떤 위대한 목수가 있어 여기, 공산성 방지를 뒤집어 하늘우물을 만들어 놓았을까. 
정돈된 다식판이나 판초컬릿 같은 대웅보전의 우물천장_후불벽화 위와 양옆으로 장식 없는 판자로 된 2층벽이 보인다. 사진에 보이는 두 기둥이 유명한 싸리나무 고주 (高柱)다.
보물이 일곱 개나 있는 마곡사 절마당의 5층석탑_2025년년 1월 9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이 됐다. 보물 802호의 대광보전 용마루 위에 보물 801호 대웅보전이 얹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사진 박기성   전문기자  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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