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준의 美·이란戰 중계 <30>이란 ‘항복’ 대신 ‘체면있는 출구’될 ‘한 페이지 전쟁 종결문’

정충신 선임기자 2026. 5. 7. 11: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치열한 대립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2026년 5월의 호르무즈 해협은 오늘날 국제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총성이 멈췄다고 해서 압박이 끝난 것은 아니었고, 협상이 시작됐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위기의 중심에는 두 개의 전략 개념이 존재했다. 하나는 이란의 ‘현존 위협’ 또는 ‘존재하는 위협(Threat in Being·TIB)’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의 ‘능동적 현존함대(Active Fleet in Being·AFIB)’다. 이란은 실제 봉쇄 없이도 “언제든 해협을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시장과 해운시스템을 흔들었다. 한국선사가 운용하는 HMM 나무호 폭발·화재사건은 TIB가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 가능한 전략임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였다.

반면 미국은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PF)’을 통해 해협의 흐름 자체를 다시 열어젖히려 했다. 항모강습단과 정보·감시·정찰(ISR) 통합체계, 광역 방공망, 역봉쇄 구조는 단순한 군사력 과시가 아니라 실제로 질서를 유지하고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AFIB의 실행 형태였다.

결국 핵심은 누가 더 강한 무기를 가졌는가가 아니었다. 누가 흐름을 유지하고, 상대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란의 TIB는 세계를 흔드는 데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 자국 경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었다. 반면 미국의 AFIB는 해협 질서를 재구성하며 협상 자체를 압박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논의된 ‘한 페이지짜리 종전 양해각서(MOU)’였다. 미국은 핵농축 중단과 해협 개방을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거부할 경우 더 강한 공습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역시 이란이 완전한 굴복이 아닌 ‘협상’의 형태로 출구를 찾도록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는 현대 해양 전략의 본질을 다시 보여준다. 오늘날의 전쟁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흐름을 멈추게 하고 경제를 압박하며 협상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충돌한 TIB와 AFIB는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남겼다. 세계를 흔드는 위협은 가능했다. 그러나 끝내 협상을 강제한 것은, 흐름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었다.

TIB로 전환된 나무호 사건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 나무호 사건…TIB가 현실이 된 순간

이번 호르무즈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나무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선박 피격이나 해상충돌을 넘어 이란이 유지해온 TIB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례였다. 전통적인 해양봉쇄는 상대 선박을 침몰시키거나 항로 자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해돼왔다. 그러나 현대의 해협 통제는 반드시 그런 형태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닫혔는가”가 아니라 “언제든 닫힐 수 있다고 모두가 믿는가”에 있다. 이란은 바로 이 지점을 활용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는 전략 공간이다. 항로는 좁고 대체 경로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단 한 척의 선박이 공격받거나 멈추더라도 그 영향은 해당 선박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험료와 유가가 반응하고, 선사들은 항로를 재검토하며, 시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무호 사건은 이러한 구조를 현실에서 보여줬다. 선박은 침몰하지 않았지만 기관부 손상으로 인해 항해능력을 상실했고, 외부 지원과 예인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로 전환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괴’보다 ‘정지’였다. 이란은 선박 한 척을 제거하는 것보다, 흐름 전체에 불확실성을 퍼뜨리는 데 더 큰 전략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로 사건 이후 일부 선사들은 호르무즈 통과 일정을 조정하거나 항로 재검토에 들어갔고, 보험시장 역시 즉각적으로 위험 프리미엄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반응한 것은 단순한 피해 규모가 아니었다. 핵심은 “다음에는 누구인가”라는 불확실성이었다. 이것이 바로 TIB의 본질이다. 반드시 공격하지 않아도, 공격 가능성 자체만으로 충분한 압박 효과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현대 해양전략에서 ‘흐름의 통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보여준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와 항구를 점령하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의 전략경쟁은 에너지와 물류의 흐름을 어떻게 제한하고 흔들 수 있는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란은 미국 해군력 전체를 정면으로 상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정면충돌이 아니라 해협 자체를 전략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TIB가 단순한 군사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경제와 금융, 심리와 정치까지 동시에 흔드는 복합적 구조다. 해협 긴장이 높아질수록 원유가격은 상승하고 운송비용은 증가한다. 즉 TIB는 상대 함대를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에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동시에 TIB에는 구조적 한계 역시 존재했다. 해협을 흔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긴장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이란 경제 구조상 해협 불안정이 장기화될수록 이란 자신 역시 심각한 압박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TIB는 강력한 위협을 만들 수는 있어도 지속가능한 질서를 구축하는 힘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의 AFIB가 등장한다. 이란이 흐름을 흔드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했다면, 미국은 실제로 그 흐름 자체를 다시 열어젖히는 방향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행형태가 바로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PF)’이었다.

AFIB에 기반한 트럼프의 PF가 성공한 결과에 대한 개념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프로젝트 프리덤…AFIB의 등장

이란의 TIB가 해협 전체에 불확실성을 퍼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미국의 대응은 정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은 단순히 위협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해협의 흐름 자체를 다시 정상화시키려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PF이다.

표면적으로 PF는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고립된 상선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한 해상보호 작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훨씬 컸다. 그것은 단순한 호송이 아니라, 미국이 해양질서를 어떤 방식으로 유지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선언이었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무임승차의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free rides is over)”는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그 의미가 단순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문제를 넘어, 미국이 오랫동안 사실상 단독으로 유지해온 글로벌 해양질서 전체의 비용 구조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서태평양 등 핵심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유지해왔다. 항모강습단과 ISR 체계, 광역 방공망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세계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질서유지 장치였다. 세계는 그 혜택을 누렸지만, 비용의 상당 부분은 미국이 부담해왔다.

트럼프는 이 구조를 더 이상 지속가능한 체제로 보지 않았다. 그의 시각에서 해양질서는 무료 공공재가 아니라, 비용을 분담해야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따라서 PF의 본질은 단순한 군사작전이 아니라, “질서유지 비용의 재배분”이라는 전략적 메시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작전이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PF는 실제로 작동 가능한 힘, 즉 AFIB의 실행 형태였다. AFIB의 핵심은 특정 공간에서 즉시 행동 가능한 상태로 존재하면서 질서를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

미국은 이번 위기에서 바로 이러한 AFIB를 현장에서 구현했다. 항모강습단은 공중우세를 유지했고, 이지스구축함과 ISR 자산들은 해협 전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했다. 상륙강습단과 특수전 전력은 필요시 제한적 강제조치까지 가능한 구조를 유지했다. 이것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즉각 집행 가능한 질서유지 체계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역봉쇄(counter-blockade)의 개념이다. 이란의 TIB가 해협 통제 가능성을 통해 세계를 흔들었다면, 미국은 반대로 이란 자체를 해협 안에 가두는 방향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PF가 계속 유지될 경우, 해협 안쪽에 묶여 있던 상선들은 점차 빠져나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란의 봉쇄효과는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이란은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해협의 흐름이 정상화될수록 국제시장은 안정을 회복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역봉쇄 구조가 강화될 경우 이란은 원유 수출과 외화 확보 능력 자체가 압박받게 된다. 다시 말해 TIB는 세계를 흔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국 경제의 목줄 역시 함께 조이는 구조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AFIB와 TIB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TIB는 위협을 통해 비용을 만들어내는 전략이다. 반면 AFIB는 실제 집행 능력을 통해 흐름 자체를 다시 통제하는 전략이다. 이란이 불확실성을 확산시키는 동안, 미국은 오히려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면서 질서를 재구성하려 했다.

결국 PF는 단순한 군사작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실제로 해양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미국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현실적 압박이,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한 페이지짜리 MOU’ 논의의 배경이 됐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이란 TIB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왜 이란은 버틸 수 없었는가 …TIB의 구조적 한계

호르무즈 위기 초기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이란이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란은 몇 차례의 제한적 행동만으로도 세계 에너지시장과 국제 해운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데 성공했다. 유가는 즉각 반응했고, 보험료는 상승했으며, 선박들은 항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나무호 사건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란의 TIB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처럼 보였다. 실제로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한 압박 효과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뢰와 고속정, 해안미사일, 드론 등 비대칭 전력은 좁은 해협 공간에서 상당한 위협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단계였다. 해협의 긴장을 높이는 것과, 그 긴장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자국 체제를 버텨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란 경제는 구조적으로 외부 흐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원유 수출은 국가 재정의 핵심이며, 외화 확보 역시 에너지 판매를 통해 이뤄진다. 즉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은 세계경제뿐 아니라, 결국 이란 경제 자체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시 말해 TIB는 상대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자신 역시 그 비용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전략이었다.

특히 미국의 AFIB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취약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프로젝트 프리덤(PF)’이 계속 유지될 경우, 해협 안에 고립된 선박들은 점차 빠져나가게 되고, 이란의 봉쇄효과는 약화되는 반면 미국의 역봉쇄 구조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상황은 이란 입장에서 치명적이다. 해협의 흐름이 정상화될수록 국제시장은 안정을 회복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과 금융 흐름을 더욱 정밀하게 압박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란은 세계경제를 흔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훨씬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미국의 제재와 역봉쇄가 지속될 경우 외화 부족과 생필품 가격 상승, 실업 확대와 통화가치 하락은 국민 생활 전체를 압박하게 된다. 특히 도시 중산층과 청년층의 불만은 체제 불안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역시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강경한 저항 의지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장기적 경제 파탄이 체제 유지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전쟁은 군사력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과 사회적 안정성이 함께 유지돼야 한다.

특히 이번 위기에서 미국이 보여준 AFIB의 핵심은 단순한 군사압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란에게 “버틸수록 더 불리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었다. 과거의 전쟁이 상대를 단기간에 격파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압박은 시간을 활용해 상대를 점진적으로 질식시키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 지점에서 현대 해양전략의 중요한 변화가 드러난다. 오늘날의 패권 경쟁은 단순한 전투 승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더 오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상대의 흐름을 더 안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된다. 미국은 해협의 흐름을 다시 열 수 있었지만, 이란은 자신 경제의 흐름까지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었다.

결국 혁명수비대와 이란 지도부 역시 냉혹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버틴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장기 저항은 체제 안정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 ‘한 페이지짜리 MOU’ 논의가 급속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외교적 타협이 아니라 AFIB가 만들어낸 구조적 압박 속에서 이란이 선택한 현실적 출구에 가까웠다.

체면있는 출구를 제안하면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중국의 개입 …‘항복’ 대신 ‘체면있는 출구’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한 페이지짜리 MOU’ 논의가 급속히 진전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중국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행위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가장 큰 전략적 부담 가운데 하나를 떠안게 되는 국가 역시 중국이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하나이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 역시 매우 높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국에게 단순한 외부 분쟁 공간이 아니라, 자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해상 교통로다. 따라서 해협 불안정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 역시 심각한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미국이 이번 위기를 통해 이란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호르무즈 해협 질서를 사실상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상황 역시 원하지 않았다. 중국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중동 전체가 전면전으로 확대되거나, 미국이 압도적 승리를 통해 중동 질서를 독점적으로 재편하는 경우였다.

따라서 중국은 ‘완전한 미국 승리’도, ‘이란의 무모한 장기 저항’도 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중국이 추구한 방향은 이란이 일정 수준의 체면과 명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협상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은 이란과의 접촉 과정에서 전면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 통항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국제사회는 해협의 정상적이고 안전한 통행 재개에 공동의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이란 외무장관 역시 “정치적 위기는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이미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상황에 대한 중국식 현실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이번 과정에서 이란에게 하나의 중요한 “출구”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이번 협상을 “항복”이 아니라 “전쟁 종식과 질서 안정화를 위한 협상”이라는 형태로 포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이란 체제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혁명수비대와 강경파는 미국에 대한 굴복이라는 인상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현실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정치적 명분과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합의 구조가 필요했다.

중국은 바로 이 지점을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 제한과 해협 개방을 일정 부분 수용하더라도, 그것을 “미국의 강압에 의한 항복”이 아니라 “지역 안정과 평화 회복을 위한 정치적 조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제공하려 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전략적 계산도 함께 깔려 있다. 중국은 중동에서 미국을 완전히 밀어낼 능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중동 질서를 독점적으로 재편하는 상황 역시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은 이란 체제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MOU 논의는 단순한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합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TIB와 AFIB의 충돌 속에서, 중국까지 포함된 다층적 전략계산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까웠다.

AFIB에 기반한 힘에 의한 협상을 강압한 트럼프 전략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한 페이지 MOU…힘이 만든 협상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 페이지짜리 MOU’는 표면적으로는 외교문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단순한 합의문이 아니다. 그것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충돌한 TIB와 AFIB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실제 힘의 구조가 어떻게 협상을 강제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문서에 가깝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당 MOU에는 핵농축 중단과 고농축 우라늄 국외 반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강화, 동결 자금 해제, 호르무즈 해협 단계적 개방, 상호 봉쇄 완화 등 약 14개 기본 원칙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을 두고 미국의 20년 요구와 이란의 5년 요구 사이에서 12~15년 수준의 절충 가능성이 거론되는 점은, 양측 모두 현실적 타협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협상이 ‘평화’의 결과라기보다, 압박 구조가 만들어낸 현실적 산물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국제정치에서 협상은 선언이 아니라 힘의 균형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결국 상대를 협상장으로 걸어나오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번 위기에서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 미국의 AFIB였다. 이란의 TIB는 세계를 흔들 수는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흐름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반면 미국의 AFIB는 해협 질서를 실제로 복구하고, 역봉쇄를 통해 이란 경제를 점진적으로 압박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협상력의 균형은 미국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합의에 동의하면 전쟁은 끝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더 큰 공습이 시작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단순한 위협 발언이 아니라, 협상과 군사 압박을 하나의 연속선 위에서 운영하는 현대적 강압외교의 모습에 가깝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프로젝트 프리덤(PF)’의 중단 방식이다. 트럼프는 프로젝트를 실패해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협상 진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일시 중단을 선택했다. 이는 미국이 이미 압박 우위를 확보했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만약 PF가 계속 진행될 경우, 해협 안에 고립된 선박들은 점차 빠져나오게 되고, 이란의 봉쇄효과는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미국의 역봉쇄 구조는 강화되며, 이란 경제는 장기적으로 심각한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란 지도부와 혁명수비대 역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계속 버틴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장기 저항은 체제 유지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MOU는 단순한 외교적 타협이라기보다,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둘러싼 현실적 계산의 결과에 가까웠다.

동시에 미국 역시 전면전이 가져올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전면전은 글로벌 유가 급등과 금융시장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도 AFIB를 통해 압박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협상을 통해 질서를 재정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었다.

결국 이번 MOU는 단순히 전쟁을 멈추기 위한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의 조건을 재설정하는 문서에 가깝다. 핵활동 제한과 해협 개방, 봉쇄 완화는 모두 “누가 흐름을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번 위기에서 미국의 AFIB는 바로 그 능력을 보여줬고, 결국 그것이 협상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됐다.

흐름을 통제하는 자가 협상을 강압한다는 것에 대한 상상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에필로그… 흐름을 통제하는 자가 협상을 만든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이번 위기는 단순한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21세기 국제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총성은 멈추지 않았지만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고, 해협은 완전히 폐쇄되지 않았지만 세계경제는 흔들렸다.

이번 사태는 현대 전략 경쟁의 핵심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전쟁은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흐름을 멈추게 하고 경제와 정치구조 전체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란은 TIB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실제 봉쇄 없이도 시장은 흔들렸고, 나무호 사건은 이러한 TIB가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 가능한 전략임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TIB의 한계 역시 드러났다. 흐름을 흔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AFIB를 통해 다른 방식의 힘을 보여줬다. 그것은 단순한 함대 보유가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실제로 질서를 유지하고 흐름을 다시 열어젖힐 수 있는 집행 능력이었다. PF는 바로 그 AFIB의 실행 형태였다.

결국 이번 협상은 외교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힘의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까웠다. 이란은 세계를 흔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미국은 해협의 흐름 자체를 다시 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국 역시 이번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은 전면전도, 미국의 완전한 독주 역시 원하지 않았다. 결국 중국은 이란에게 “항복”이 아니라 “협상”이라는 명분을 제공하며 체면 있는 출구를 만들려 했다.

이번 위기는 한국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단순히 누가 더 강한 군대를 가졌는가보다, 누가 흐름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충돌한 TIB와 AFIB는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남겼다. 세계를 흔드는 위협은 가능했다. 그러나 끝내 협상을 만든 것은 흐름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었다.

글: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 명예교수

정충신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