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쑥을 혼자 먹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엄마

"왕갈비, 부챗살, 안거미살, 진갈비살 모둠 한판 가격이 12만 4천 원. 엄마, 이거 먹을까?"
"그래, 그거 하나랑 다들 식사 메뉴 고르면 되겠다. 엄마는 냉면 먹고 싶네."
지난 5일, 조카의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겸한 저녁 외식 자리였다. 1100그램이니까 5인분 정도는 되겠다 싶어서 주문했다. 함께 간 중3 둘째 녀석은 고기엔 별 관심이 없는지 계란찜과 날치알주먹밥을 시켜달라고 해서 그것도. 그런데 고기를 다 구웠는데도 엄마는 속이 좋지 않다며 젓가락을 잘 들지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힐끗 보며 말했다.
"엄마. 이러면 나 이제 외식 안 와."
엄마가 이러는 이유를 안다. 비싼 고깃값을 자식들이 내는 게 싫은 거다. 많이 먹을수록 많이 낼 테니까 덜 먹는 거다. '고기로 배 부를 일 있니?'라며 냉면을 먹겠다고 할 때부터 한숨이 나왔다. 대체 왜 엄마는 이러는 걸까.
언젠가는 모처럼 어딜 가는데 엄마가 도시락을 싸왔다. 본인은 외식이 싫다면서. 1인 1 메뉴라고, 식당에서 못 먹는다고 해도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차에서 먹으면 되니 먹고 오라고 했던가. 그런 엄마와 어딜 가기가 싫었다. 돈을 쓰고도 기분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자식들 생각해서 그러는 걸 알면서도 엄마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런 엄마를 쏘아붙였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 테이블에서 구운 고기를 엄마 접시에 놓아 드렸다. 몇 점 받아 드셨다. 그런데도 한사코 그쪽 테이블, 그러니까 오빠 내외가 있는 테이블에서 구운 고기는 안 드셨다. 새언니와 엄마가 서로 먹으라고 고기를 밀어내기 바쁘다. 더 시키면 되는 것을 왜 저런담. 내가 며느리라도 불편할 것 같다. 앞에서 먹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시어머니가 좋을까?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눈빛이 고울 리 없다. 말이 다정하게 나갈 리 없고. 기껏 시킨 냉면도 한 젓가락씩 먹어보라며 다 퍼주는 엄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면 꾹꾹 눌러 담은 화가 불쑥 튀어나올까 봐 그냥 못 본 척했다. 식사 시간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집에 들렀다 가라고 해서 왔더니 식탁 위 잡곡쌀 위에 '김 생각해'가 적혀 있다. "엄마, 이게 뭐야?" 물으니 "김 구워놨는데 잊어버릴까 봐" 한다.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나는 시중에서 파는 김은 너무 짜서 못 먹는다. 그걸 아는 엄마가 매번 재래김을 사서 들기름+참기름을 섞어 발라 바삭하게 김을 구워 주시는 거다.
소금을 뿌리지 않아도 너무 맛있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거절하지 않는 엄마 반찬이다. 그 외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들이 썩 마음에 들진 않는데 예전처럼 딱 잘라 거절하진 않았다. 그저 꺼내놓은 것에서 양만 적당히 조절했다.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떡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떡을 즐겨하셨다. 찹쌀시루떡과 인절미는 엄마의 전매특허. 지난번에 올 때도 쑥 인절미를 해오셨는데 이번에도 쑥인절미다. 이미 오빠 내외에게 시장에서 콩가루를 사 오라고 했고 엄마는 그새 떡을 쪘다.
처음엔 저게 떡이 되려나 싶었는데 삶은 쑥을 넣고 함께 치대니 먹음직스러운 형태가 되어 갔다. 얼추 시장에서 팔던 쑥인절미 태가 난다. 그 옆에 놓인 세월의 더께가 붙은 지저분한 떡방망이가 신경이 쓰였지만 이번에도 모른 척했다. 나만 조용하면, 이 평화가 깨지지 않을 테니까. 내가 톡톡 쏘아대지 않아서 인지(평소라면 진즉 그랬을 거다)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말했다.
"해쑥 먹을 때마다 좋은 거 나만 먹는 것 같아서 얼마나 미안하던지. 이렇게 만들어서 줄 수 있어서 좋다."
"뭘 미안해. 엄마가 잘 드시면 되지."
"그래도 엄마 마음이 어디 그러니. 너희들 줄 들기름도 짜고, 떡도 하고, 김도 굽고 다 했네."
다음날 출근한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집에 오자마자 뜨끈한 인절미를 다시 쟁반에 쏟아놓고 한 김 식혔다. 집안일 하면서 하나씩 집어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고 큰애 들어오면 먹으라고 조금 남겨 두었다. 그날 밤 11시가 다 된 시간, 평소라면 잠에 드셨을 때 걸려온 엄마의 전화.
"잘 갔지? 떡 조금 식혀서 소분해서 냉동실 넣어라. 그냥 두면 죽 된다."
"응. 이미 그렇게 했어."
"잘했다, 그래, 쉬어라."
엄마의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그때 '지적질' 했다. 엄마는 살림을 왜 그렇게 밖에 못 하냐고, 깔끔하지 못하다고, 더 깨끗하게 하면 안 되냐고. 70 평생 일하고 산 엄마의 삶을 나는 그렇게 번번이 무시했다. 남도 아닌, 딸인 내가. 그랬는데 이젠 조금 주저된다. 나이 오십을 앞두고 뭔가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난 대학 선배가 내 핸드폰에 있던 엄마 사진을 보더니 무척이나 놀라며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너의 엄마가 아닌데? 내 기억엔 젊고 예쁘셨는데 어머니도 이제 나이 많이 들어 보이신다." 생각해 보니 나는 사춘기 시절 엄마를 대하듯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멈춰 있었던 것 같다. 그 세월이 꽤 길었다.
젊은 엄마는 이제 없는데 늘 못마땅한 얼굴도 투정 부리는 딸을 보느라 엄마도 힘들었겠구나. 엄마가 늙었다는 걸 나만 몰랐구나 싶어서, 선배 말을 듣고 좀 당황했던 것 같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둘째의 화살이 매일 나에게 내리 꽂히고 있어서 내 마음이 노근노근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사춘기가 끝날 때쯤엔 엄마에 대한 내 긴 사춘기도 끝나려나. 그러면 엄마와 나도 좀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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