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까지 번진 정년 연장···현대차·기아 임단협 ‘변수’
SK하이닉스·삼성전자 성과급 영향으로 노조 요구 강도도 거세질 듯
전동화·자동화 전환 속 인건비·생산성 부담 확대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현대자동차와 기아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의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 돌입한다.
올해 협상에서는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지급, 고용 안정 등 기존 쟁점과 함께 정년 연장 문제가 핵심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도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면서 노조 요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 정년 연장, 고용 보장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임금·성과급 협상은 물론 정년 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자동화 관련 이슈는 노사 간 입장 차가 큰 만큼 장기 협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정치권까지 번진 정년 연장 논의···노조 요구 힘 실리나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전날 울산 공장에서 올해 임단협 상견례를 열었다.

이 중 정년 연장은 올해 임단협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정치권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노조 입장에서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최근 재계와 노동계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물론 경제단체들과도 정년 연장 방향성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관련 제도와 법안 설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르면 상반기 중 관련 법안이 발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노동계는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 국민연금 수급 시기 등을 고려할 때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제조업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과 연금 수급 시기 간 공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현행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점차 높아지고 있어 실제 은퇴 이후 소득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 역시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정년 연장을 지속 요구해왔다. 특히 양사 모두 장기 근속자 비중이 높은 구조여서 정년 문제가 노조 내부에서도 민감한 사안으로 꼽힌다.
기아의 평균 근속연수는 20.8년으로 현대차의 15.8년보다 길다. 기아 노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30년 이상 근무자 비중은 33%, 20~30년 근무자는 35%로 조사됐다. 전체 조합원 중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가 약 70%에 달하는 셈이다. 정년 연장 이슈가 노조 내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반면 사측은 정년 연장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 침체, 전동화 전환 등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대규모 구조조정 없이 고용을 유지해왔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감원과 공장 폐쇄 등을 단행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구조를 유지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사측은 정년 연장이 현실화될 경우 인건비 부담 증가와 생산성 저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완성차 산업 특성상 생산직 인건비 비중이 높은 데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생산 공정 효율화와 자동화가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는 부품 수가 적고 생산 공정도 단순화되는 만큼 생산 인력 구조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 연장까지 더해질 경우 인력 구조 재편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실적 둔화에도 성과급 30% 요구···수익성 부담 커진 현대차
현대차 노조의 성과급 요구 역시 올해 임단협의 주요 변수다.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요구는 현대차 노조가 매년 제시해온 수준이지만, 올해는 대기업 전반으로 성과급 이슈가 확산되면서 압박 강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도 성과급과 보상 체계를 둘러싼 내부 불만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속 실적 개선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직원들 사이에서는 성과에 비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완성차 업계 노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올해 들어 경영 환경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1분기 매출 45조9389억원, 영업이익 2조5147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대비 3.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0.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2조5849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 영향으로 약 8600억원 규모 비용 부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와 경쟁 심화도 부담 요인이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테슬라 중심 가격 경쟁이 이어지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성 방어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순이익 30% 수준 성과급 지급을 요구할 경우 사측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년 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등 추가 요구까지 동시에 논의될 경우 인건비 부담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 주 4.5일제·로봇 도입 반대까지···생산성 우려 커져
올해 노조 요구안에는 정년 연장 외에도 주 4.5일제 도입과 로봇·자동화 확대 반대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현실화될 경우 생산성 측면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스마트팩토리 구축에도 지속 투자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 등 주요 생산 거점에는 자동화 기반 생산 시스템이 적극 도입되고 있다. 반복 작업이나 고위험 공정을 로봇이 대체하는 비중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노조는 자동화 확대가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기존 내연기관 생산 인력 감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자동화 도입에 대한 경계감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정년 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자동화 제한 요구가 동시에 추진될 경우 생산 경쟁력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테슬라 중심 가격 경쟁 심화 등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생산 효율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비용 절감과 생산 효율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업체들은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인력 구조조정과 생산라인 효율화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높은 자동화 비율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높은 임금 수준과 강성 노조 구조로 인해 생산 유연성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여기에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요구까지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년 연장이 현실화되면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세대 간 고용 갈등 문제도 함께 불거질 수 있다"며 "시장 확대 없이 정년만 연장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신입 채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산업 현장에서는 임금피크제나 계약 연장 방식 등을 통해 사실상 고령 인력을 추가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법과 제도로 일괄적인 정년 연장을 강제하는 방식은 기업별 상황과 산업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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