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新 지배구조 주목받는 각자대표 '명암'

황민영 기자 2026. 5. 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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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국내 증권업계에서 각자대표 체제가 새로운 지배구조로 부상하고 있다. 사업이 다양해지고 조직이 커지면서 자산관리(WM)·투자은행(IB) 등 부문별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다.

다만 권한 분산에 따른 의사결정 혼선과 책임소재 불명확 등 구조적 한계도 함께 부각되면서 각자대표 체제를 둘러싼 명과 암이 엇갈리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 이사회는 최근 단독대표에서 각자대표 체제로의 전환을 의결했다. 회사 측은 올해 초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진출 뒤 사업 구조가 더욱 복잡해진 데 따라 부문별로 리더십을 설정해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최근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확대와 사업 다각화로 조직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각자대표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IB와 자산관리, 트레이딩 등 사업 영역이 세분화되면서 각 부문별 전문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 역시 IMA 등 신규 사업 확대를 앞두고 있는 만큼 투자와 리스크, 영업 기능을 나눠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져 왔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증권사에서도 확인된다. 미래에셋증권은 일찍부터 각자대표 체제를 정착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는 김미섭 부회장과 허선호 부회장이 각자대표를 맡고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사업과 해외 투자 부문을 중심으로, 허 대표는 WM 부문을 총괄하는 역할을 나눠 맡고 있다.

특히 이러한 역할 분리는 글로벌 사업과 자산관리 부문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미국 △홍콩 △인도 △베트남 등 전 세계 주요 거점에 진출해 국내 최대 규모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WM 부문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9205억원을 기록하며 회사 내 1등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KB증권도 각자대표 체제를 통해 사업을 나눠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이홍구 대표가 WM을, 강진두 대표가 IB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디지털 플랫폼 고도화와 고객 자산 확대를 중심으로 경쟁력 강화를 이끌고 있으며 강 대표는 기업금융과 인수금융 등을 전반 총괄하며 투자은행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KB증권은 2017년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 통합을 통해 출범한 이후 WM과 IB를 양축으로 한 사업 구조를 구축해왔다. 이후 사업 환경에 따라 단독대표와 각자대표 체제를 오가며 운영해 왔으며 최근 다시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해 부문별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비교적 최근인 2024년 7월 단독대표 체제에서 각자대표로 전환했다. 장원재 대표는 세일즈앤트레이딩(S&T)과 리테일 부문을, 김종민 대표는 IB와 관리 부문을 각각 맡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분야별 책임경영 체제 구축을 도입 배경이었다.

같은 해 5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장 대표가 초대형 IB 인가 준비를 공식화하면서 업계에서는 이를 염두에 둔 사전 정비 성격의 조직 재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후 각자대표 체제는 기업금융과 트레이딩 등 핵심 사업을 분리해 운영하며 초대형 IB 도약 기반을 다지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와 유사하게 교보증권 역시 현재 박봉권·이석기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박 대표는 IB과 WM 사업을 총괄하고 있으며, 이 대표는 경영지원과 S&T 부문을 담당한다. 이는 수익 창출 부문과 경영관리 기능을 분리해 부문별 전문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로 평가된다.

이처럼 각자대표 체제는 전문경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각자대표 체제는 전문성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업 분화가 심화될수록 조직 간 조율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경영대학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체제는 리더 간 우선순위와 경영 방식 차이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전략 실행력이 약화될 수 있다. 실제로 도이치방크는 복수 최고경영자 체제를 도입해 안슈 자인과 위르겐 피첸이 각각 투자은행과 대외 부문을 맡아 운영했지만 이후 내부 갈등과 규제 대응 문제 등이 겹치며 단일 대표 체제로 회귀한 바 있다.

국내 사례로는 카카오가 거론된다. 카카오는 2022년 남궁훈·홍은택 각자대표 체제에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대규모 서비스 장애를 겪었다. 사고 자체는 인프라 이중화 미비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당시 두 대표는 함께 대국민 사과에 나섰고 이후 남궁훈 대표가 사퇴하며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다만 국내 증권사들의 경우 글로벌 사례와 달리 구조적 리스크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상위 지배구조에서 방향성이 정리되는 만큼 각자대표 간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거나 조직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박현주 회장을 중심으로 한 오너십이 존재하고 △NH투자증권은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중앙회 △KB증권은 KB금융지주 △메리츠증권은 조정호 회장과 메리츠금융지주 △교보증권은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 등 그룹 중심의 지배구조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증권업은 WM과 IB, 트레이딩 등 사업이 완전히 분화된 구조로 한 명의 대표가 모든 영역을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각자대표 체제는 권한 분산이라기보다 사업별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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