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돋보기]② '회계 착시' 걷자 리벨리온 웃고 퓨리오사 울었다

국정근 기자 2026. 5. 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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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작=챗GPT

K-인공지능(AI) 설계기업(팹리스)의 선두주자인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의 희비가 '현금 런웨이(Runway)'에서 엇갈렸다. 런웨이란 스타트업이 추가 투자 없이 현재 보유한 현금만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생존가능기간을 뜻한다.

두 회사 모두 수천억~수조원대 파생상품 평가손실이라는 회계적 착시를 보이지만, 현금 사정은 정반대다. 리벨리온은 1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쌓았다. 반면 퓨리오사AI는 런웨이 부족으로 감사법인으로부터 '계속기업 존속 불확실성' 경고를 받았다.
1.4조원 빚 정체…K-IFRS가 만든 RCPS 평가손실 역설
구글 제미나이(또는 챗GPT)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그래픽=국정근 기자

기업가치 3조원대를 자랑하는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지난해 말 각각 2069억원, 833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다만 그 원인은 경영 부실이 아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과 양사의 기업가치 상승이 맞물린 전형적인 '부채 역설'이다.

K-IFRS는 투자자들이 보유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장부에 기록할 때 '우선주와 상환권'을 주계약으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은 별도 분리해 인식하도록 규정한다. 핵심은 전환권의 성격에 달려 있다. 전환권에 '공모가가 낮아지면 전환가액을 조정(리픽싱)한다'는 조항을 포함할 경우, 전환 시 발행주식 수를 확정하지 않아 자본이 아닌 파생상품부채로 분류해야 한다.

상장(IPO)을 앞둔 유망 기업들은 대개 시장에서 몸값을 높게 평가받는다. 기업가치가 오를수록 투자자들이 쥔 전환권의 공정가치도 상승하고, 장부상 파생상품부채 급등으로 이어진다. 늘어난 부채만큼 회사는 파생상품평가손실로 장부에 기록해야 하기에 회사가 성장할수록 장부상 부채가 커지는 구조다.

흥미로운 점은 두 회사의 부채 규모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리벨리온은 RCPS를 원금(주계약)과 옵션(전환권)으로 분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원금은 장부가인 1269억원으로 고정하고, 분리한 전환권에만 기업가치 상승분을 반영해 7671억원의 파생상품부채로 계상했다.

퓨리오사AI는 RCPS의 원금과 옵션을 쪼개지 않고 전체를 공정가치로 측정하는 통합 평가를 택했다. 부채 전체에 치솟은 기업가치를 반영하면서 단일 계정인 '전환상환우선주부채'가 1조4300억원으로 커졌다.

결국 퓨리오사AI의 부채가 리벨리온보다 5000억원 이상 크게 잡힌 것은 회계 처리 방식의 차이일 뿐, 실제 상환 압박이 존재하는 경제적 빚이 아니다. 향후 IPO를 통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이 부채는 전액 자본으로 대체되며 자본잠식을 해소할 수 있다.
한 번 돌리는데 1000억원… 칩 양산단계 따라 엇갈린 R&D 지표

AI 반도체 기업들이 수천억 단위의 RCPS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이유는 칩 설계부터 양산까지 이어지는 비용 사이클 때문이다. 벤처캐피탈 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기업이 설계를 마치고 포토마스크를 제작해 실제 제품을 테스트·양산하는 사이클(테이프아웃) 한 번에 1000억원을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클 과정에서 두 기업의 연구개발(R&D) 지표는 양산 단계에 따라 정반대로 갈렸다. 리벨리온은 지난해 1198억원의 R&D 비용을 지불하며 전년(817억원) 대비 46% 이상 투자를 늘렸다. 차세대 칩 '리벨100' 설계 및 HBM3E(5세대 HBM) 탑재를 위한 선단 공정 시제품 제작에 자금을 투입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퓨리오사AI의 R&D 비용은 전년 563억원에서 지난해 362억원으로 35.7% 감소했다. 2세대 칩 '레니게이드' 개발을 마무리하고 대량 양산 체제에 돌입하면서 연구개발 지출이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금 런웨이가 가른 생존 조건

결국 경쟁의 승패는 막대한 R&D와 양산 비용을 버텨낼 현금 실탄에 달려 있다.

리벨리온은 이 부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160억원이며, 최근 마무리한 6400억원 규모의 프리IPO 자금까지 더하면 보유 현금성 자산이 1조원에 육박한다. 비상장 스타트업임에도 수년 이상 버틸 수 있는 현금 런웨이를 확보한 셈이다.

퓨리오사AI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529억원이다. 지난해 발생한 1019억원의 영업현금흐름 손실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현금 런웨이가 1년을 채우지 못한다. 감사법인이 '계속기업 불확실성'을 지적한 결정적 이유다. 파생상품 부채가 회계적 착시라 해도, 당장 회사를 굴릴 실질적 현금이 말라가고 있다는 점을 짚은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퓨리오사AI는 현재 8500억원 규모의 프리IPO 멀티클로징을 추진 중이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프리IPO 초기 목표(7500억원)를 달성했고, 시장 수요가 커져 8500억원 수준으로 증액하고 있다"며 "다음 주부터 현금 납입이 시작돼 6월 중순 마무리할 전망이다"고 밝혔다. 이번 자금 수혈을 마무리하면 퓨리오사AI 역시 계속기업 불확실성 꼬리표를 떼어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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