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시간이 멈춘 마을 사보카, 영화 '대부' 콜리오네의 결혼식 성당으로

박재희 작가 2026. 5. 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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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쩌다 한 달, 이탈리아 (34)
박제된 낭만과 불편한 진실
시칠리아의 사보카(Savoca). 영화 <대부>의 촬영지로 유명한 오지마을이다. /사진=박재희

시칠리아를 떠나는 날이다. 배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사보카(Savoca), 영화 <대부>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골 마을이다. 마이클 콜레오네가 아폴로니아와 영원을 맹세하던 작고 신비로운 성당을 기대하며 산길을 올랐다.

막상 마주한 사보카는 상상했던 감동보다 재빨리 자본과 상업주의로 무장한 의욕적인 미소를 건넨다. 영화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신비롭고 낭만적이던 마을은 생각보다도 훨씬 작은 규모지만 자본주의의 기획과 의도가 빼곡하다.

좁은 골목마다 '대부 투어'(Godfather Tour)간판이 붙어 있었고, 기념품 가게에는 알 파치노의 강렬한 눈빛이 인쇄된 와인병과 냉장고 자석이 가득했다. 외지에서 사보카를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영화 속 마이클처럼 바르 비텔리(Bar Vtelli) 앞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그 자리에 앉기 위한 줄이 길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웨딩 포토를 촬영하는 커플도 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영화 세트장 혹은 50년째 같은 재현극을 상영하는 극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비텔리 바는 관광객의 사진 명소가 되었다. /사진-박재희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1971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이곳에서 몇 주간 촬영했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은 마을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당시 사보카는 수도시설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TV마저 귀했던 거의 고립된 산골이었다고 한다.

촬영팀은 도로를 닦아 급히 정비했고 마을 성당은 영화 촬영을 위해 의자까지 빌려줘야 했다. 주민 상당수가 기꺼이 영화의 엑스트라로 참여했는데 당시 주민들이 받은 몇 주간의 출연료가 몇몇 사람에게는 1년 수입보다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때 <대부>를 신의 보내준 선물이라고 여겼다고도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사보카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고립을 겪고 있다. 마을은 '대부의 마을'이라는 이미지 안에 갇혀버렸다.

관광객들은 이 마을이 영원히 낡고, 느리고, 영화 속 그대로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외지인에게 선사할 낭만을 위해 주민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대신 불편이 주는 수익을 얻는 구조다. 여행자의 느린 삶에 대한 향수가 주민들에게는 불편한 삶이라는 현실을 안겨준다.

마을 인구는 100명 남짓으로 줄었지만, 관광 시즌인 4~10월이면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특히 메시나와 타오르미나 쪽 크루즈 여행객들이 단체로 들어오는 날이면 골목이 꽉 막히는 정체를 겪어야 한다. "꽉 막힌 길이 도저히 뚫리지 않아 차 좀 지나가게 하려고 경적을 울리면 관광객들은 오히려 화를 낸다"는 주민의 인터뷰를 들었다. 

관광객은 늘 '변하지 않은 옛 시칠리아'를 기대한다. 낡고, 느리고, 영화 속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관광객이 바글거리지는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여행지의 발전보다는 낭만을 원하기 때문에 타인의 삶 윗자리에 자신의 낭만적 향수를 올려놓는 것은 과연 괜찮을 것일까? 사보카 골목을 걸으며 나는 궁금해졌다. 이 마을 주민들은 과연 행복할까? 알려지기 전보다 오히려 불행하진 않을까.

영화 덕분에 마을은 유명해졌다. 바르 비텔리는 영화팬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관광 포토 명소가 되었고 작은 B&B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이 다닥다닥 성업 중이다.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던 대부 영화 덕에 마을은 촬영 세트장처럼 소비되고 있다. 실제 삶보다 이미지가 더 유명한 장소. 어쩌면 관광지는 모두 비슷한 운명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대부>의 결혼식 촬영지 성당, 사보카의 최고 명소다. /사진=구글

내 친구 중 한 명은 여기서 실제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했었다. 영화처럼 오래된 마을 한복판에서 누군가 진짜 삶을 시작했고 그 시작에 함께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관광객들이 영화 장면을 재현하며 가짜 결혼식 포즈만 취하는 곳이 아니라 이 마을에서 실제로 누군가는 사랑하고 맹세하는 곳이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맥박이 있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사보카를 내려와 메시나(Messina)로 향한다. 이제 시칠리아를 떠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시칠리아는 시칠리아다. 주차권 하나 사기 위해 담배 가게(Tabacchi)를 찾아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아야 했으니까. 주차권 같은 것은 자동판매기 같은 것을 이용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투덜대며 작은 담배 가게를 찾아 헤맸다.

효율과는 거리가 먼 시스템인데 사실 이 섬에서는 그런 불편조차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서두를 필요 없다는, 아니 서둘러봐야 소용없다는 이 섬만의 느긋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성당과 시계탑, 오리온 분수( Fontana di Orione)를 둘러본 후 배에 올랐다.

시칠리아 해협은 믿기 어려울 만큼 좁다. 본토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낚싯줄이라도 던져 잡아당기면 그대로 닿을 것 같은 거리. 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완전히 다르다. 섬과 본토는 마치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배 뒤편으로 멀어지는 에트나(Mount Etna)가 희미하게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에트나는 앞으로도 계속 숨을 쉬듯 연기를 토할 것이다. 가끔 용암을 뿜고 도시를 위협할 것이고 또 동시에 수많은 관광객을 매혹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그 검은 돌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갈 것이다. 절벽 위에서 젤라토를 먹고, 재난 바로 옆에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아름다움과 위험이 한 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그들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시칠리아였다. 

안녕, 시칠리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검은 돌의 섬이여. 

B&B= Bed and Breakfast의 약자로 숙박과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소규모 숙박 시설을 말한다. 주로 가정집을 개조해 운영하며 호텔보다 저렴하고 현지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아 전 세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숙박 형태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박재희 작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후 국제경영 MBA를 취득했다. 현대그룹과 DELL, EMC 등 글로벌 IT 기업 마케터로 일하고 미국 벤처 Actifio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대표를 지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인생 리셋'을 선언하고 두 차례 산티아고 순례 후 현재는 여행작가이자 자기계발 리더십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산티아고 어게인>,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그 여자, 정치적이다> 등이 있으며 현재 모모인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