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목소리’ 40년…“대중들도 좋아하는 클래식 하고싶다”
SM 클래식스와 손잡고 경계 허물기
K-클래식 개척자에서 후학 양성 대모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PRM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7/ned/20260507100816052xwrk.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86년 10월 26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 동양에서 온 가녀린 체구의 소프라노가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무대에 올라 세계 오페라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적었다. 그로부터 성상(星霜)이 40년. 프리마돈나 조수미가 걸어온 길은 곧 한국 클래식이 세계 무대를 향해 걸어간 개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40주년 앨범을 보고 ‘전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전 세 살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40년이라는 세월, 저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두 가지예요. ‘정말 감사하다’, ‘장하다, 대견하다’ 조수미.”
데뷔 40주년을 맞아 스페셜 앨범 ‘컨티뉴엄’(Continuum) 발매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조수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삶도 예술도 어디서 딱 시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라틴어로 ‘계속되다’라는 의미를 제목으로 옮긴 앨범처럼 조수미의 40주년은 완성이 아닌 진행의 여정이다. 그는 히트곡의 나열을 거부하는 대신 “내가 살아온 길을 새로운 음악과 또 다른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앨범엔 ‘조수미의 시간’이 담겼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의 고독, 고국에 대한 향수, 프랑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며 느꼈던 두려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냈다.
이루마가 만든 ‘앙코르’는 프랑스 센강을 걸으며 미래를 고뇌하던 청춘의 편린을 그렸다. 조수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슬픔과 설렘을 정확히 포착한 곡”이라고 했다. ‘아리랑 칸타빌레’는 “늘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 곳에 대한 음악”이라고 말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오른쪽)와 SM 이성수 CAO [PRM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7/ned/20260507100816381rvrl.jpg)
앨범엔 EXO의 수호와의 듀엣곡도 수록됐다. 세계적인 콜로라투라(기교적으로 화려한 가수) 소프라노와 K-팝 아이돌의 조우는 파격으로 보일 수 있으나, 조수미에겐 예술적 외연 확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는 “나는 K-팝을 굉장히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수호에 대해서도 “굉장히 편안한 목소리와 리더로서 책임감, 안정감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했다. 특히 뉴욕에서 녹음을 마친 뒤 새벽 1시 반에 화상 연결로 수호의 녹음 장면을 지켜봤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한 티가 나서 감동적이었다”는 당시의 소감도 들려줬다.
이번 프로젝트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조수미가 굴지의 K-팝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SM클래식스(SM Classics)와 전속 레코딩 계약을 맺은 것이다. 클래식과 K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다.
이날 함께 자리한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CAO(최고A&R책임자)는 “K-팝이 세계로 나갈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글로벌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SM보다 10년 먼저 세계 시장에서 한국 음악을 알린 사람이 바로 조수미”라고 말했다. 조수미 역시 “SM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와 콘텐츠의 힘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클래식을 알리고 싶었다“며 “서로 다른 장르가 섞이는 수준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가 확실한 예술가들이 새로운 음악 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40년 음악 여정에서 지금의 조수미를 만든 ‘예술적 근간’은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성악가의 꿈을 접은 어머니는 “딸을 반드시 프리마돈나로 키우겠다”는 열정 하나로 자신을 키웠다. 그는 “어머니는 늘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아내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예술가가 돼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SMI엔터테인먼트]](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7/ned/20260507100816684bcqj.jpg)
아버지의 일화는 한 편의 영화였다. 17세 소녀 조수미를 위해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극장장을 무작정 찾아가 “내 딸이 이 무대에 서야 한다”고 외쳤던 아버지의 대담함은 지금도 그에게 생생하다. 결국 딸은 30세가 되기 전 그 무대의 프리마돈나가 됐다.
조수미는 “아침엔 영어 카세트, 저녁엔 프랑스어 카세트를 틀어주던 부모님 덕분에 세계인이 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루 8시간씩 피아노를 치게 했던 엄격함도 결국 세계 무대에서 혼자 견디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이번 앨범 발매 기념 전국 투어의 첫 기착지는 창원이다. 부모의 고향인 창원에서 공연의 문을 여는 것은, 이제는 곁에 없는 부모에게 가장 먼저 자신의 생생한 육성을 들려주고 싶다는 효심의 발로(發露)에서다.
조수미를 세계적인 성악가로 만든 것은 단지 ‘신이 내린 목소리’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순간으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의 경험을 꺼냈다.
젊은 시절, 세계적인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을 때였다. 당시 조수미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독일 가곡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발음도 완벽했다. 까다로운 현지인들 역시 “눈을 감고 들으면 독일인”이라고 했을 정도다.
조수미의 노래를 한참 동안 듣던 슈바르츠코프는 그러나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괴테를 아니? 호프만슈탈은?”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조수미 [SMI엔터테인먼트]](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7/ned/20260507100816918ckcb.jpg)
조수미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괴테? 들어는 본 것 같은데, 호프만슈탈은 또 누구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슈바르츠코프는 “독일 시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독일 가곡을 부를 수 없다”며 그를 내보냈다. 조수미는 이날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흉내내기만 해서는 안 되는구나, 완벽하게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날로 독일어 교사와 함께 살며 언어와 철학, 시를 다시 공부했어요.“
지금의 조수미에게선 상상조차 못 하는 일화다. 단지 정확한 음정과 발음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살아낸 사람들의 세계까지 이해해야 진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렇기에 조수미의 음악은 단순히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기교로만 남지 않는다. 그의 노래엔 언제나 삶과 문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함께 스며있다.
40년의 세월 동안 카라얀의 극찬 속에 세계 오페라 극장을 제패했지만, 조수미는 화려한 성공담보다 ‘자유’의 가치를 먼저 역설한다.
그는 2000년 북한 성악가들과의 합동 공연 당시, 앙코르곡 하나조차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던 그들의 현실을 목격하며 느꼈던 비애를 회상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단언컨대 ‘자유’라고 답할 거예요. 예술가에게 자유는 선택이 아닌 존립의 근거입니다.”
조수미는 이제 후학 양성을 통해 자유의 가치를 전한다. 오는 7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2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할 기회와 무대를 제공하는 장이다. 노래를 잘하는 성악가가 아니라, 자기 세계관과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를 키우고 싶은 것이 조수미의 마음이다.
그는 “자기가 어느 나라 출신이고 어떤 색깔을 가진 사람인지 아는 아티스트가 중요하다”며 “그들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40주년이라는 예술 인생의 정점에 서서도 그는 여전히 새로운 언어를 갈구하며 ‘지속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어렵고 비싼 음악으로 생각한다”며 “가족과 친구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더 만들고 싶고, 천원의 행복 같은 작은 공연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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