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보훈청, 5월의 현충시설로 ‘우강 송종익선생 상’ 선정
권종민 기자 2026. 5. 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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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대구지방보훈청이 지역민들의 보훈의식 함양과 현충시설 접근성 향상을 위해 '이달의 현충시설'을 선정·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2026년 5월의 현충시설로 '우강 송종익 선생 상'이 이름을 올렸다.
대구지방보훈청은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우강 송종익 선생 상을 5월의 현충시설로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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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대구지방보훈청이 지역민들의 보훈의식 함양과 현충시설 접근성 향상을 위해 '이달의 현충시설'을 선정·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2026년 5월의 현충시설로 '우강 송종익 선생 상'이 이름을 올렸다.
대구지방보훈청은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우강 송종익 선생 상을 5월의 현충시설로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선정은 지역 내 독립운동가의 삶과 공적을 재조명하고,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훈의 가치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송종익 선생(1887~1956)은 대구에서 태어나 1906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공립협회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08년 전명운·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 사건 이후 두 의사의 재판을 지원하는 재무 역할을 맡으며 미주 한인사회의 결집과 항일운동 지원에 힘을 보탰다.
이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인국민회 재무관리자로 활동하며 미주 지역 동포들이 모은 애국 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광복 때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인사회의 권익 보호와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한 대표적인 해외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에도 한인사회를 위해 힘쓰던 송 선생은 1956년 1월7일 별세했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현재 범어동에 세워진 동상은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후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9년 10월 4일 건립됐으며, 2005년 5월9일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대구지방보훈청은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우강 송종익 선생 상을 5월의 현충시설로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선정은 지역 내 독립운동가의 삶과 공적을 재조명하고,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훈의 가치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송종익 선생(1887~1956)은 대구에서 태어나 1906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공립협회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08년 전명운·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 사건 이후 두 의사의 재판을 지원하는 재무 역할을 맡으며 미주 한인사회의 결집과 항일운동 지원에 힘을 보탰다.
이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한인국민회 재무관리자로 활동하며 미주 지역 동포들이 모은 애국 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광복 때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인사회의 권익 보호와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한 대표적인 해외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에도 한인사회를 위해 힘쓰던 송 선생은 1956년 1월7일 별세했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현재 범어동에 세워진 동상은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후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9년 10월 4일 건립됐으며, 2005년 5월9일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권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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