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처럼… 미묘하게 어긋난 멜로디와 반주[박찬이의 올댓클래식]

2026. 5.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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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한쪽의 독자 투고 코너는 때론 기사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특히 문화일보의 '그립습니다' 지면에는 세상을 떠난 부모를 향한 사연이 자주 실린다.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은 대개 이렇게 온다.

모든 자식에게,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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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부모님 떠오르는 보편적 가사
서구권 어머니날에 많이 추천
감정 과장없이 민요처럼 소박
박자로 시간중첩·회한 담아내

신문 한쪽의 독자 투고 코너는 때론 기사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특히 문화일보의 ‘그립습니다’ 지면에는 세상을 떠난 부모를 향한 사연이 자주 실린다.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생애가 자식의 기억 속에서 얼마나 오래도록 울리는지 깨닫게 된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부모님께 전하고 싶었지만 끝내 닿지 못한 말, 늦게서야 알아차린 진심, 돌아오지 않는 시간. 모든 것이 유난히 사무치게 다가올 법한 날이다.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는 바로 그런 늦은 깨달음의 음악이다. 독립곡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원래 가곡집 ‘집시의 노래’ Op.55 중 네 번째 곡이다. 그는 1880년 테너 구스타프 발터를 위해 이 곡을 썼다. 발터는 드보르자크 노래를 즐겨 부르던 성악가였고, 작곡가는 체코 문인 아돌프 헤이둑의 시에 가락을 붙였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체코 운문에 기반을 두면서도 처음에는 독일어 번역으로 작곡·출판되었다는 것이다.

가사는 먹먹하다. “늙으신 어머니가 내게 노래를 가르쳐주셨을 때, 이상하게 어머니는 자주, 자주 눈물을 흘리셨네. 그리고 이제 나 역시 울음으로 검은 뺨을 적신다. 집시 아이들에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법을 가르칠 때마다.”

문장이 와 닿는 이유는 그 보편성 때문이리라. 어머니가 노래를 가르치며 종종 보였던 눈물의 의미를, 자녀가 뒤늦게서야 헤아리게 된다. 여기에 극적인 사건은 없다. 한 사람이 과거 어머니를 떠올리고, 꼬마들 곁에서 어느새 같은 눈물을 흘릴 뿐이다.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은 대개 이렇게 온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양친과 닮은 말을 하고, 닮은 행동을 하며, 닮은 표정으로 자녀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을 때.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집시 여인과 아이’.

음악 역시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주제는 민요처럼 소박하고, 피아노는 옛 기억을 부드럽게 감싼다. 곡에서 멜로디는 2/4박자로 흐르지만, 피아노 반주는 6/8박자의 흔들림을 품는다. 이 미묘한 어긋남은 과거와 현재가 문득 겹치는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심정을 아들딸이 손자 손녀에게 온기로 전하며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박자로 시간의 중첩과 회한,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

이는 드보르자크가 모친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사적인 추모곡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작품이 쓰인 지 2년 뒤인 1882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음악가의 개인적 존재라기보다, 시 속 화자가 회상하는 어머니다. 그래서 가사는 더욱 힘을 얻는다. 한 사람의 일화가 아니라, 누구나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부모의 얼굴이 다정한 곡조 속에서 스쳐 가기 때문이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이 곡이 ‘집시의 노래’ 수록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품이라고 전한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위한 편곡으로 널리 퍼졌다고도 적는다. 피아니스트 그레이엄 존슨은 작품이 빅토리아 시대 응접실에서 애창됐고,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고 평한다. 선율이 단순하고 친근하지만, 그 속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다시 후대로 건너가는 정서의 흐름을 압축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서구권의 어머니날 추천곡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드보르자크 가곡은 어버이날이 왜 감사의 기념일만은 아닌지를 들려준다. 살아계신 양친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는 닿을 수 없는 말을 가슴속에서 되뇌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버이날은 부모가 내 안에 남긴 것을 조용히 알아차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모든 자식에게,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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