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시아판매 6월 인도분 원유 배럴당 4달러 인하에도 기름값 상승 계속될 것

중동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 세계 원유 공급망이 동맥경화에 빠진 가운데, ‘오일 리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향 원유 가격을 인하하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걸프발(發) 에너지 대란이 정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지만, 송유관 우회비용과 역대급 유가 수준을 고려하면 국내 기름값의 가파른 상승세를 꺾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아시아 지역에 판매하는 주력 유종인 ‘아랍 라이트’의 6월 인도분 공식판매가(OSP)를 지역 벤치마크 유가 대비 배럴당 15.50달러 프리미엄 수준으로 책정했다. 이는 사상 최고치였던 이달 가격보다 배럴당 4달러 인하한 것이나, 여전히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공포의 가격’이다.
이번 인하는 최근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가 6월부터 감산 규모를 일부 완화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산유국들이 밀집한 페르시아만의 출구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실제 인도까지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내륙 송유관을 통해 홍해 연안 얀부 항으로 원유를 빼낼 수 있는 극소수 국가 중 하나지만, 트레이더들은 “송유관 이용료 등 추가 비용이 붙으면 인하 효과는 사실상 상쇄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난 2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50% 이상 폭등했고, 최근 미국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대치가 격화하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 역시 널뛰고 있다. 지난주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이 이미 2000원 선을 돌파한 가운데, 수입 원유 비중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에너지 쇼크’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사우디의 가격 인하가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2~3주의 시차가 발생하지만, 국제유가 자체가 워낙 고공행진 중이라 인하폭이 소비자 체감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사우디가 가격을 낮췄다 해도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용선료 상승과 보험료 폭등이 더 큰 변수”라며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 확대를 고심 중이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 경우 국내 휘발유 가격은 당분간 2200원대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쟁의 장기화와 해상봉쇄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사우디의 ‘찔끔 인하’가 나날이 치솟는 국내 기름값 인상 추세를 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여 당분간은 고유가 터널을 지나는 민생경제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이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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