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도 못 내던 회사가 대기업으로…K뷰티 리딩하는 한국콜마 36년 대장정

최수진 2026. 5. 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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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콜마, 1990년 설립돼 36년 만에 대기업 편입
윤동한에서 윤상현 부회장으로…성공적 세대교체
윤동한 회장, 대웅제약서 쌓은 경험 살려 화장품 사업 도전
업계 최초로 ODM 시스템 도입하며 산업 선진화 주도
K뷰티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
마스크팩, 쿠션, BB크림 등 대중화한 주인공
기술개발이 핵심이라 판단, 2000년 R&D 연구소 개관
연간 매출의 5% 이상,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어
그래픽=송주연 디자이너

1990년 두 아이의 아빠가 16년간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 안정적인 대기업 임원 자리를 포기하고 선택한 길은 창업이었다. 당시 나이는 43살.

충남 연기군(현재 세종시) 시골 5평 창고에 사무실을 만들었다. 직원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설립 초기 일이 없어 전기세를 밀릴 만큼 사정이 어려웠으나 포기는 없었다.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역시 어려운 시기에도 강행했다.

36년이 지난 2026년 40대 가장이 세운 이 회사는 대기업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된 것.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거대 회사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국내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을 도입해 K뷰티를 글로벌 주류로 끌어올린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의 이야기다. 창업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윤 회장은 이 한계를 뛰어넘고 한국콜마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 전기세 낼 돈도 없었지만…편법 없이 승부한 10년

윤동한 회장의 창업은 화장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본 결정이었다. 

1990년대는 방문판매 중심으로 전개돼온 화장품 시장에 ‘종합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이다. 한 가게에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 처음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 참존, 코리아나, 소망화장품, 식물나라 등의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입 자유화로 수입 화장품이 다수 들어오면서 소비자들의 뷰티 관심도 급격히 커졌다. 

윤 회장은 이 변화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대웅제약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화장품 사업에 도전했다. 제약산업은 원료 개발과 기능성 제품을 출시하는 면에서 화장품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약사 근무 노하우를 화장품 사업에 적용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본콜마가 한국 내 투자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본을 수차례 오가며 설득한 끝에 일본콜마와 합작해 1990년 5월 ‘한국콜마’를 세웠다. 

화장품 업계 최초로 ODM 시스템을 도입했다. 제조사에서 화장품을 자체 개발하고 생산까지 일괄 처리해주는 게 특징이다. 당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화장품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해 전문성을 높이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윤 회장은 한국에서도 ODM 방식이 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콜마는 한국을 ‘화장품 제조국’으로 전환시키는 첫 시발점이 됐다. 다만 설립 초기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주력으로 했다. 화장품 회사가 설계·기획하고 주문을 넣으면 콜마는 생산만 해주는 방식이다. 

어려움도 있었다. 설립 초기에는 거래가 없어 전기세도 못 냈으며 밥값이 밀려 직원들에게 밥을 못 주는 상황도 있었다. 윤 회장은 “전기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해 단전 예정 통보도 받고 힘든 상황이었다”며 “무자료거래를 하자고 요청해 오는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큰 유혹이었다. 그때마다 힘든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자료거래는 세금 신고에 필요한 증빙 없이 거래하는 행위로 탈세에 주로 활용된다. 윤 회장은 당장 쓸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같은 불법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 사업을 오래 지속하려면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자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1세대 화장품 회사들이 인기를 얻으며 판매량이 늘어나자 콜마로 들어오는 주문량도 크게 증가했다. 200억원(1996년)의 매출은 2002년 468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1996년 10월 24일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그래픽=송주연 디자이너

 ◆ 마스크팩·쿠션·BB크림…콜마 없었으면 K뷰티 어쩔 뻔

K뷰티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20년 전 한국콜마다. 1990년대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던 건·습식 파운데이션인 투웨이케이크를 대중화한데 이어 2000년대 마스크팩, 쿠션, BB크림 등을 대중화한 주인공이 바로 한국콜마이기 때문이다. 

콜마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운 시점도 이때다. 첫 결실은 창업 10년 만인 2000년 나타났다. 사상 처음으로 ‘100만불 수출의 탑’(100만달러 이상 수출 실적을 달성한 기업에 수여하는 정부 포상)을 수상했다.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윤 회장은 안주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2000년 10월 R&D 전문 중앙연구소를 개관했다. R&D는 윤 회장의 가장 중요한 경영철학으로 매출의 5% 이상을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콜마를 ‘화장품 업계의 TSMC’로 부르는 평가는 적극적인 투자의 결과다. 

화장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콜마는 2002년 의약품 위탁생산(CMO)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선 예측-후 투자’라는 원칙을 고수해온 윤 회장은 의약품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신사업에 진출했다. 고형제·연고크림제·내외용액제 등 다양한 제형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추고 제약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보했다. 

2003년 제약기술 고도화를 목표로 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제약·바이오 기술 연구뿐만 아니라 화장품과의 융합을 통해 처방 개발에 직접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2004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민관 최초 연구소기업 ‘선바이오텍’을 설립했다. 끊임없는 투자만이 자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게 윤 회장의 신념이었다.

2002년 콜마는 코스닥 상장 6년 만에 한국증권거래소에 이전 상장했다. 기업 규모가 커지자 내린 결정이다. 

2000년대는 선제적인 글로벌 진출에 나선 시기이기도 하다. 윤 회장은 중국을 점찍었다. 2007년 5월 베이징에 첫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사업 확대를 위해 2018년에는 중국 장쑤성 우시에 대규모 생산거점인 무석콜마를 만들었다. 

콜마가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데는 윤 회장의 경영감각이 주효했다. ‘1사 1처방’이다. 고객사 신뢰 확보를 위해 “화장품 처방(레시피)을 오직 한 기업에만 제공한다”는 원칙을 앞세운 것. 이는 해외 브랜드의 한국 내 위탁생산을 현실화시킨 첫 사례로 평가된다. 

그래픽=송주연 디자이너

 ◆ 윤동한에서 윤상현으로…대를 걸쳐 확대되는 K뷰티 

2010년대 콜마는 향후 10년, 20년을 준비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해외 확장과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서고, 지주사 체제 전환을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2년 기존 한국콜마를 지주회사 ‘한국콜마홀딩스’로 만들고 화장품·제약 사업부문은 신설법인 ‘한국콜마’로 인적분할했다. 사업부문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속도감 있는 의사결정을 위한 시도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윤 회장의 장남인 윤상현 부회장이 회사 운영에 힘을 보탰다. 윤 부회장은 2016년 콜마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윤 부회장이 가세하자 콜마의 사업 확장은 빠르게 전개됐다. 

콜마는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 시장에도 남들보다 빠르게 진출했다. 2013년 업계 최초로 미국 FDA의 OTC(일반의약품) 인증을 획득한 것도 북미 공략을 위한 포석이었다. 2016년에는 연달아 2건의 북미 M&A를 성사시켰다. 9월에는 미국 색조화장품 ODM 업체 PTP 지분 51%를 인수하고 11월에는 캐나다 CSR 코스메틱 솔루션즈(옛 캐나다콜마)도 품에 안았다. 인수합병을 주도한 인물은 윤 부회장이었다.

한 차례 더 성장한 계기는 2018년 CJ헬스케어(현재 HK이노엔) 인수다. 콜마는 1조3100억원을 투자해 창립 이래 최대 규모 M&A를 단행했다. CJ헬스케어 인수로 콜마는 ‘화장품·의약품·건강기능식품’의 삼각 편대를 완성했다. 

끊임없이 발전해온 한국콜마는 창립 32년 만에 ‘콜마’ 브랜드의 주인이 됐다. 2022년 미국 원조 콜마로부터 ‘KOLMAR’ 전 세계 상표권을 100% 인수했다. 화장품·의약품·건강기능식품 업계 역사상 한국 기업이 글로벌 본사의 브랜드 상표권을 인수한 첫 사례다. 

2026년 콜마는 창업 36년 만에 ‘대기업’이 됐다. 200억원 수준의 회사 매출은 2조7224억원(2025년 기준)으로 커졌다. 4명에 불과했던 직원은 1300여 명에 달한다. 창업기업이 대기업이 될 확률이 0.000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를 고려하면 콜마의 서사는 상징적이다. 

콜마는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K뷰티가 자리 잡지 못한 시장은 여전히 많다. 콜마 고객사는 4800여 개에 달하지만 신규 고객 문의는 매년 전년 대비 50%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콜마를 ‘세계 최고 지속가능 성장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콜마는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윤상현 부회장 체제에서 ‘종합 뷰티헬스케어 그룹’으로 도약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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