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표현 맞나요? 국립국어원 10년 차 베테랑의 국어 상담

임지영 기자 2026. 5. 7.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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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게 일상에서 ‘교정 본능’이 발동할 때가 있다. 그때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언어생활이 바뀌어가고 있는데 내가 현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이현영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 연구원이 최근 펴낸 책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들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이현영 연구원이 ‘거리를 늘이다’가 맞는지, ‘거리를 늘리다’가 맞는지 설명하다 말했다. “이 경우에는 말뭉치를 조사합니다.” 말뭉치의 의미를 묻자 “사전 뜻풀이를 보고 정확하게 말하겠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10년간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 연구원으로 일해온 그는 평소 국어사전을 끼고 산다. 4월13일, 인터뷰 당일에는 직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윳값과 순댓국이 왜 맞는 거라고 해서 언어생활을 흐트러뜨립니까?” 사이시옷은 국립국어원 안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한국어 연구 기관인 국립국어원은 사람들에게 국어 정보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각 온라인과 전화로 하는 ‘온라인가나다’와 ‘가나다전화’, 카카오톡 메신저로 이뤄지는 ‘우리말 365’가 있다. 한 해 동안 이뤄지는 상담만 약 20만 건으로, 전문 상담원이 직접 답한다. 이현영 연구원이 최근 펴낸 책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는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 연구원의 노동기이자, 시대에 따른 언어의 변화를 읽어낸 언어문화 기술지다.

상담실에서 오가는 질문이 다채롭다. ‘‘돼지고기미나리찜’은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디뎌가 맞나요, 딛어가 맞나요?’ ‘갈빗살은 붙이는데 닭 다리 살은 왜 띄어 쓰나요?’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하면 안 되나요?’ ‘저보다 어린 사람이 저를 ‘OO씨’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요?’ ‘누가 ‘너 집에 안 가’라고 하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때때로 질문은 맞춤법 영역을 넘어선다. 이 연구원은 하루 평균 70~80건을 해결한다. 원래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 우연히 공고를 보고 국립국어원에 지원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비대면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았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국어 교사’가 되었다.

직업군으로 보자면 방송사와 출판사 관계자, 학교·학원의 국어 교사들이 특히 상담실 문을 빈번하게 두드린다. 시험 기간에는 문항을 점검하기 위한 확인 문의(출제자)가 늘고 시험 문제의 정답을 묻는 질문(응시자)도 많다. 그럴 경우 정답 판단 권한은 출제자에게 있다고 안내한다. 가끔 방송을 보다가 상담 업무 중 답변했던 내용과 일치하는 대사나 자막이 흘러나오는 걸 발견한다. “언어의 확산자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옳고 좋은 표현을 많이 써주면 사람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나. 우리 국민들의 맞춤법 의식이 굉장히 높은데 그런 분들이 노력해주어서라고 생각한다.”

모두 ‘정답’을 바라며 질문하지만 같은 내용의 질문이라도 답변이 매번 같을 수는 없다. 맥락에 따라, 무얼 두고 묻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교과서마저도 문법적 입장에 따라 설명이 다를 수 있다. 때로는 연구원들끼리 서로의 답변을 교차 검토하는 과정에서 ‘수정’이 이루어진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다른 부분이 보여서 논의하고 토론하는 절차가 있다. 하루 600건 정도 질문에 답한다고 하면 5~10건 정도는 정정한다.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하면 오히려 한 번 더 확인해주어 고맙다고 반응한다.”

상담실은 누구보다 먼저 언어생활의 변화를 체감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연구원 개인적으로는 ‘고객님’이라는 쓰임의 변화가 좀 충격적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어 표현이라 써서는 안 되는 단어라 여겨졌다. 우리말 표현으로 손님이 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이젠 고객님이라는 단어가 흔하고, 손님보다 높임의 층위가 강화된 표현이라고 인식해서인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탈바꿈한 말’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 이름을 물을 때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가 맞지만 현실에서는 전자가 많이 쓰인다. 각종 밈이나 유행어에 대한 문의가 많아 새로운 표현을 끊임없이 익히고 고민한다. “문법적으로는 틀리지만 이미 대중화된 표현을 과연 틀렸다고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국어원에서는 균질하고 공통된 답변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관련된 회의가 꽤 많다.”

연찬회가 대표적이다. 1년에 다섯 번 가나다전화, 우리말365 , 온라인가나다, 사전 팀 직원들이 모여 논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안건을 발표하고 회의를 거쳐 결론을 낸다. 이 연구원은 연찬회의 분위기를 “서슬 퍼렇다”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각각의 견해마다 근거가 단단하고 날카롭다. 가령 5년 동안 세 차례나 연찬회 안건으로 올라온 ‘다시 한번’의 띄어쓰기는 ‘규범과 현실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언어학적 밀당의 최전선’이다. 세는 횟수의 의미가 담겼다면 ‘한 번’, 시험 삼아 시도한다는 뜻이면 ‘한번’인데 문제는 ‘다시 한번’이 두 영역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 가장 최근에는 열띤 논쟁 끝에 편의성에 힘을 실어 ‘다시 한번’으로 결론이 났지만 언제 또 회의에 오를지 모를 일이다.

밀당의 최전선, ‘다시 한번’

의외로 어떤 안건이든 다수의 언어 직관에 따라 자연스러운지 그렇지 않은지를 먼저 고려한다. 그 뒤에 사전에서의 관점이나 언어생활의 편의성을 따진다. 직관이라는 게 근거가 없는 것 같지만 어떤 표현을 어색하다고 느낄 때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게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규범상 면밀하게 구분하는 쪽이 상담원 입장에서는 답변하기 쉽지만 상대방은 더 난해할 수도 있어서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어떻게 했을 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지 본질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언어는 결국 사람이 쓰는 방향으로 간다.

국어 상담이라는 일의 특성상 정답을 제시하는 데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게 일상에서 ‘교정 본능’이 발동할 때가 있다. 그때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언어생활이 바뀌어가고 있는데 내가 현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연구원은 언어 규범이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무리하게 다듬으려고 하면 오히려 손을 베인다고 말했다. “뜻풀이에 맞는 정확한 표현이 더 옳다는 욕심이 앞설 때가 있다. 특히 띄어쓰기가 그렇다. 정확한 표현을 지향하다 보면 새로운 사례가 나올 때마다 기준을 더 세분화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더 헷갈려 하기도 한다.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높은 성벽을 쌓다 보면, 결국 그 날카로움에 스스로 베이게 되는 셈이다.”

이현영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 연구원. ⓒ시사IN 이명익

‘이거 인공지능(AI)인가요?’ 채팅 상담에서 하루에 한 번은 보는 질문이다. 이 연구원은 AI의 도움을 받게 되는 날을 오히려 기다리고 있다. 감정 소모가 덜할 것 같다. ‘장맛비’의 사이시옷이 거슬린다며 욕설을 던지거나 비하 발언을 하는 이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다. 최종 판단은 그래도 사람 몫이라고 생각한다. “생성형 AI가 이제는 맥락과 의도까지 사람보다 더 잘 추론한다고 하지만, 규범은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약속이어서 실시간으로 논의되고 결정되는 사안들까지 AI가 모두 알기는 어렵다.”

우리는 맞춤법에 자신 없어 하면서도, 맞춤법 틀리는 사람에게 실망한다. ‘감기 빨리 낳으세요’ ‘어의가 없어요’ 같은 문장 하나가 순식간에 한 사람을 ‘비호감’으로 만든다. 국어 다루는 일을 하는 이 연구원 앞에서 사람들은 특히 긴장한다. 오히려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맞춤법은 중요하지만, 이를 기준으로 교양의 유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취업이나 학업에서 맞춤법이 일종의 허들로 작용하면서 사회적 기대가 형성됐고 그것이 사람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이 규범에 주눅들지 않으면서 말하고 써나가기를 바란다. 책의 추천사를 쓴 출판노동자 ‘유리관’은 “그곳의 가장 경이로운 신비는 그 모든 질문에 무조건 답변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이 그곳이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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