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사부작사부작 어느새 9년된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경계 사라지는 데 1주일이면 충분해요”

박채연 기자 2026. 5.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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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이 지난달 12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 ‘향’에서 무경계 댄스파티 버블버블텍을 열고 있다. 박채연 기자

지난달 12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홍대 클럽에 필적할만한 ‘버블버블텍’이 등장했다. 이 클럽의 콘셉트는 힙합도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도 아닌 ‘아무도 이렇게 안 춰서 내가 췄다!’다. 클럽이 열린 성미산마을극장 ‘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아모르파티>와 <애상> 등 대중가요가 귓가를 울렸다. 천장 위 걸린 초록·빨강·파란색의 조명이 20명의 클럽 애호가들을 맞이했다.

버블버블텍은 ‘무경계 댄스파티 클럽’을 추구한다. 장애 유무나 옷차림으로 ‘입구 컷’ 하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 ‘투어스’ 노래에 함께 군무를 추고, 누군가는 모형 비행기를 들고 빙빙 돌았다. 멋쩍은 듯 서 있던 발달장애인 채연수씨(26)도, 새로 온 이들을 환영하며 “다른 클럽은 마약도 있지만 여긴 안전하다”라는 발달장애인 이은지씨(32)도 흥겹게 몸을 흔들었다.

동대문구에서 채씨와 같이 온 아버지 채장서씨(63)는 “많은 비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에게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선을 그어 함께 어울리기 어렵다”며 “여기선 함께 춤출 수 있어 종종 온다”고 말했다. 채씨뿐 아니라 경기 고양시와 성남시 등 먼 곳에서도 버블버블텍을 찾는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발달장애 청년 ‘마카롱’이 지난달 12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향’에서 열린 무경계 댄스파트 버블버블텍의 안내를 맡고 있다. 사부작 제공

버블버블텍 DJ는 파티를 좋아하는 비장애인 마을주민 뮁(활동명)이 지난해부터 맡고 있다. 초창기부터 종종 놀러오던 뮁은 “‘사부작’에 도움이 되고자” DJ를 맡게 됐다. 그는 “처음엔 낮에 실내에서 조명을 사용하는 게 어색했는데, 요즘 (젊은층 사이에) ‘모닝 레이브’(아침에 열리는 클럽 파티)가 유행하는 것을 보면 사부작이 선두 주자”라고 웃었다. 코로나19로 중단된 버블버블텍은 올해부터 다시 두 달에 한 번 연다.

사부작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발달장애청년허브다. 올해로 창립 9주년을 맞았다. 성산동 소재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를 졸업한 차니(34)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성미산마을 주민들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여 2017년 사부작을 만들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어떻게 마을에 어우러져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발달장애 청년들인 ‘사부작 청년’과 ‘길동무’라고 불리는 비장애인 마을주민·활동지원사들은 사부작에 자주 모여 밥을 해 먹고 놀고 일하며 같이 살아간다. 이들은 서로에게 스스로 지은 별명을 부른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2일부터 24일까지 사부작을 찾아 이들의 일주일을 들여다봤다.

훌라 춤 추는 목요일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발달장애 청년들과 길동무, 활동가들이 지난달 16일 서울 마포구 공간 ‘릴라’에서 선샤인아놀드훌라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사부작 청년 준하가 가장 앞에서 자신만의 훌라를 추고 있다. 박채연 기자

사부작에서 매주 목요일 진행되는 ‘선샤인아놀드훌라(선아훌)’는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 활동 중 하나다. 사부작 청년 나영(38)과 피아노(36)도 훌라가 가장 좋다고 했다. 동아리 이름은 사부작 청년들이 던진 단어들인 ‘션샤인 아쿠아’와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을 조합해 지었다.

지난달 16일 사부작 사무실에서 만난 ‘나영’과 ‘피아노’, ‘차니’, 길동무들은 훌라 춤을 추기 위해 공간 ‘릴라’로 걸었다. 가는 길엔 사부작 청년들을 늘 환대하는 ‘옹호 가게’인 ‘베로키오’를 지나친다. 이날도 가게 주인 벨라를 향해 다 함께 손 흔드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발달장애 청년을 환영하는 가게가 일상을 사는 데 필수적이기에 사부작은 마을 곳곳에 옹호 가게를 정해뒀다.

공간 릴라의 큰 유리 거울 앞에 훌라댄스 선생님 ‘가지’가 섰다. 선아훌 구성원들과 가지는 이곳에서 5년째 훌라 춤을 춘다. 길동무가 되고 싶던 가지는 사부작에 훌라 춤 활동을 먼저 제안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한 훌라 파우 스커트를 집어 든 사부작 청년들은 모임이 시작하고 5분쯤 지나 삐뚤삐뚤하게 섰다. 이날은 사부작 청년과 길동무를 포함해 총 13명이 모였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발달장애 청년 ‘나무’가 지난달 16일 서울 마포구 공간 ‘릴라’에서 선샤인아놀드훌라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박채연 기자

“오른발, 왼발, 헬라.” 사부작은 다른 훌라 모임과 달리 훌라 스텝을 말로 외치는 ‘랩 훌라’를 한다. 가지가 오른발을 말하면 사부작 청년도 길동무도 오른발을 내디디고, 팔로 물결을 만들면 함께 팔을 흔들었다. 맨 뒷줄에 서 있던 차니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넓게 왔다 갔다 했다. 가지보다 앞으로 튀어 나가 있던 준하(20)는 엉성하게 동작을 따라 하며 양쪽으로 걸었다.

쉬는 시간엔 가지와 길동무들이 사부작 청년들에게 막춤을 배운다. 이날 새로 온 발달장애 청년 ‘나무’(22)는 가수 거북이의 ‘비행기’를 틀어달라더니 엉덩이와 골반을 튕기고 여기저기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길동무와 활동가들은 그의 섬세한 춤을 따라 하며 깔깔 웃었다.

선아훌에 자주 오는 길동무 ‘딸기’는 함께 춤추며 “사부작에 함께 있으면 해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가지는 선아훌을 “가장 편안한 곳”이라고 했다. 그는 “훌라 덕분에 흥이 넘치는 예술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제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책 배달하는 화요일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청년 ‘냐옹’(오른쪽)이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마을주민 ‘랄라뿅’에게 주문한 책을 배달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달부터 사부작은 책 배달 서비스 ‘책만남’ 활동을 한다. 도서관에 가기 어렵거나 책을 받아보길 원하는 성미산마을 주민에게 책을 갖다주고 대신 반납해주는 사업이다. 조만간 사부작 청년들이 그린 그림으로 책갈피도 만들어 책에 끼워줄 예정이다. 사부작은 발달장애 청년들이 마을에 살며 장애·비장애인 주민들과 교류하는 것을 하나의 노동으로 본다. 이를 ‘마을 공공 시민노동’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21일 오후 2시 나영과 ‘냐옹이’(28)는 성미산학교 도서관에서 두 명의 책가방을 받아들었다. 도서관에 앉아있던 초등학생 30명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저는 야생동물과 공룡을 좋아하는 냐옹입니다”라며 사부작 청년들이 인사하자 아이들은 “형이 그린 동물 그림 봤다”고 환영했다. 활동가 꽃다지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려면 이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주 봐야겠죠”라고 묻자 아이들은 “네!”라고 대답했다.

책 배달 가는 길에서 만난 동네 주민은 사부작 청년들에게 인사했다. 책을 배달받은 ‘랄라뿅’은 “일 때문에 도서관에 가기 힘든데 도움이 된다”며 “발달장애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에서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활동을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부작 청년들은 2주 뒤 책을 반납하기 위해 랄라뿅을 만난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발달장애 청년 ‘차니’가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길동무 겸 활동지원사 ‘자소리’와 함께 우유갑 수거 활동을 하고 있다. 박채연 기자

이날 사부작 청년 차니는 마을의 카페와 빵집에서 우유갑을 수거하는 활동을 했다. 차니는 종이팩을 수거한 후 주민센터에 가져가서 휴지로 교환한다. 이 휴지는 지역 돌봄 단체를 통해 독거 노인에게 전달한다.

5년째 매주 이 활동을 하는 차니는 자신이 늘 지나가는 ‘최애 골목’을 만들어뒀다. 길동무 ‘자소리’는 이 길을 ‘차니 로드’라고 부른다. 차니는 이날 세 곳에서 양손 가득 우유갑을 수거했고, 자소리는 사부작에서 우유갑을 씻었다. 자소리는 “차니는 신체적으로 제게 의존하는 건 없다”며 “차니가 마을에서 관계 맺는 활동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부작 청년들은 마을 곳곳을 활보하며 “경계 없는 다정한 마을 문화”를 만든다. 차니는 제빵을 해 마을 책방에 비건 쿠키를 판매하고, 사부작 청년들은 지역의 ‘마포 돌봄 네트워크’ 참여 단체 기념일에 축하 케이크를 배달하는 ‘축하 사절단’ 활동을 한다. 활동가 ‘연두’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며 지역 기반의 관계망을 만들고 마을의 다양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사부작 활동은 마을 공동체 운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림 그리는 금요일
발달장애 청년 ‘나영’이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무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채연 기자

금요일 오후 4시 사부작의 요가 동아리 ‘아타요가’ 활동이 끝나면 청년들은 사부작 사무실의 작업 공간에서 각자의 그림 세계에 빠진다. 동아리 ‘모던양파’ 시간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마카롱’과 길동무 ‘지원’이 함께 만들었다. 인상파·야수파 등 예술 학파를 말하던 중 “우리는 모던양파”라고 했던 마카롱의 말은 곧 동아리 이름이 됐다. 지난달 24일 모던양파에는 냐옹, 나무, 차니, 나영과 요가 선생님 ‘아타’, 길동무들이 모였다.

태블릿PC를 활용해 호랑이 무늬를 하나하나 그려 넣은 사부작 청년 냐옹이는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통해 오는 6월 제주도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냐옹은 “제 그림이 멋있다는 반응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꽃무늬 종이를 잘라 도화지에 붙이던 나무는 “사부작은 삶에 도움을 주고 제 재능을 보여주는 곳”이라며 자신의 그림을 팔아 부자가 되고 싶단다.

아타도 요가 모임 후 모던양파 활동에 함께 한다. 아타는 “모임을 하며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요가 활동은 진도를 생각하는 비장애인 대상 요가와 달리 함께 존재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에 초점 맞추게 된다”고 말했다. 홍제천을 그리는 아타 옆에서 차니는 자신의 도화지에 동그라미를, 나영은 선을 그렸다.

사부작 청년들은 이미 여러 차례 전시를 연 예술가이기도 하다. 지난해엔 미술 교사였던 활동지원사 겸 길동무 ‘알라딘’의 큐레이팅으로 사부작 청년과 길동무들은 각자의 그림과 사진, 콜라주를 전시했다. 동아리 창립 멤버인 마카롱은 4~5년 전부터 성미산마을 축제에서 마을 포스터 그리기를 전담하고 있다. 그는 올해부터 국립의료원의 그림 작가로 채용돼 일하고 있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청년 피아노(오른쪽)가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사무실 옥상에서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모종을 심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 밖에도 사부작 청년들은 옥상 텃밭을 기르는 모임과 걷기 모임을 하고, 매년 발달장애 관련 마을포럼을 준비하며 비장애인 마을 주민들과 연결점을 만든다. 사부작은 발달장애 청년들이 마을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만든다는 점에서 모든 활동을 공공 노동으로 본다. 최경화 사부작 대표(활동명 소피아)는 “청년들이 마을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그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돼 안정된 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사부작의 목표를 설명했다.

지난해 말부터 사부작은 매월 사부작 청년 6명에게 각각 지역화폐 6만원과 현금 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노동에 따른 대가를 지급한다는 취지다. 그 돈으로 나영은 주로 이것저것을 먹자고 활동지원사 겸 길동무 ‘석류’에게 자주 제안한다. 냐옹은 커피를 마시거나 저금한다. 장애인 지원 기관이 아닌 사부작은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후원금을 통해 소량의 활동비만 지급할 수 있다.

다정한 관계망이 온 동네로, ‘1동 1사부작’이 될 때까지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이 6일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 앞에서 ‘1동1사부작’ 조례 제정 촉구 선포식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부작은 최근 ‘1동1사부작’ 마포구 조례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사부작 청년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살지 않는 발달장애 청년들도 시설에 고립되지 않고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출발점을 ‘마포구 발달장애인 조례’ 개정으로 잡았다.

지난 3월부터 사부작 활동가들과 운영위원, 자문단 등 8명은 매주 금요일마다 조례 개정을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달 17일 사부작을 어떻게 법적 언어로 표현할지 논의했다. ‘돌봄 생태계’ ‘일상’ ‘정착’ ‘참여’ ‘관계망’과 같은 단어가 제시됐다. 이들은 조례 개정안에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돌봄 생태계 지원 사업’과 발달장애인의 지역에서 함께 살 권리, 동네별 돌봄 거점 설치 근거 등을 추가했다.

훌라 파우 스커트를 입은 사부작 청년들과 길동무 30여명은 6일 마포구청 앞에서 ‘1동 1사부작’ 조례 제정 촉구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은 “발달 장애인도 지역에서 경계 없이 함께 살자”고 외쳤다. 소피아 대표는 “발달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만 활용할 수 있는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라고 말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당 의제를 환기하며 마포구청장과 마포구의원 후보들의 공약화를 요구하는 취지도 작용했다. 나영의 언니인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발달장애인들이 동네에 정착해 일상을 살아가는 일을 마포구가 공공의 자원으로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조례에 담긴다”고 말했다.

냐옹이는 “사부작은 편리하지만 좁다”며 “사부작이 계속 있으려면 지원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마카롱은 “사부작 덕분에 자유롭게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낸다”며 “발달장애인도 시설에 갇혀있지 말고 자기가 살고 싶은 동네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청년 허브 사부작이 6일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 앞에서 ‘1동1사부작’ 조례 제정 촉구 선포식을 하며 사부작 동아리 선샤인야놀드훌라와 함께 훌라 춤을 추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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