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는 청순미와 요염한 관능미” 배우 강수연

이한수 기자 2026. 5. 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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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22년 5월 7일 56세
배우 강수연

배우 강수연(1966~2022)의 사망 소식은 갑자기 전해졌다.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으나 이틀 후인 2022년 5월 7일 별세했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뇌출혈. 뇌동맥류란 뇌동맥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한다.

“강씨 입원 병원 관계자와 119구조대 출동 등 정황에 따르면, 강씨는 갑작스러운 뇌출혈 증세로 심정지 상태가 돼 병원에 실려갔다. 뇌동맥류가 터지면 뇌를 싸고 있는 지주막 아래 공간으로 피가 퍼지는데, 그 양이 많으면 호흡을 관할하는 중뇌를 압박해 호흡 부전과 심정지를 일으킬 수 있다.”(2022년 5월 9일자 A10면)

2022년 5월 9일자 A16면.

아역 배우로 데뷔한 강수연은 19세 때인 1985년 배창호 감독 영화 ‘고래사냥 2’로 성인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아역 연기자 생활 12년 만에 영화 ‘고래사냥2’에서 히로인을 맡아 성년 선언을 한 강수연(19). 기억 상실증에 걸린 소매치기 여주인공 영희 역인 그녀는 극중 안성기 손창민의 도움으로 소매치기 소굴을 탈출하며 병태(손창민)와 ‘짧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이 영화를 찍는 도중 화상을 입고,한 겨울에 한강물속에 다섯 번이나 뛰어드는 등 고역을 치렀다는 강양은 다행히 시사회 때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어 기쁘다고 말한다. “어릴땐 멋도 몰랐지만 갈수록 연기가 어렵다”는 그는 “아역티를 벗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연기했지만,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며 겸손해 한다.”(1985년 12월 20일자 12면)

1985년 12월 20일자 12면.

1987년 이규형 감독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흥행 1위 배우로 떠올랐다. 이 영화는 감독부터 20대였고, 23세 신인 박중훈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런 영화를 상품으로 내놓는 배짱의 20대는 자작 소설을 각색·연출한 이규형 감독(29)과 영화에 나오는 세 주인공, 그리고 주제가를 부른 가수들이다. 미미 강수연(21), 철수 박중훈(23), 보물섬 김세준(24), 그리고 영화 속의 노래를 부른 최성수·손현희·벗님들이 모두 같은 세대. 이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영화를 하겠다고 나선 ‘겁 없는 아이’로 유명하지만, 이 영화에서 무명 남자 배우 둘을 보석으로 깎아냈다. 철수 역의 박중훈(중대 재학)과 보물섬 역의 김세준이 그들. 키가 크고 호남인 박은 숨어 있는 ‘연기 재능’을 한껏 발휘했고, 전혀 배우로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김은 ‘배우란 얼굴이 아닌 성격’임을 여실히 증명했다.”(1987년 6월 27일 자 6면)

1987년 6월 27일자 6면.

이해 임권택 감독 영화 ‘씨받이’로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다.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발랄한 청춘 영화 주인공에서 양반집 대리모로 팔려간 소녀 역을 연기한 파격 변신이 성공했다.

“나라에는 영화 60년의 쾌거요,개인에는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리는 낭보가 10일 새벽 서울로 날아들었다. 9일(현지 시각) 폐막된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강수연 양(21)이 본선에 오른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의 열연으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 베니스 영화제는 칸,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필름 페스티벌로 꼽히는 전통과 권위의 경쟁 영화제. 여기서 한국이 부문상을 따낸 것도 초유지만,동양권의 여배우가 수상하기도 강 양이 처음이다.

1987년 9월 11일자 12면.

“출연작 ‘씨받이’가 그 어려운 본선에 오른 것만도 영광인데,기대도 못한 엄청난 행운이 안겨져 벼락 맞은 것처럼 얼떨떨해요. 이 기쁨을 저를 지도해준 임권택 감독님,스태프진들과 나누고 싶어요.” 감격스러운 수상 소감을 밝힌 강 양은 “경험이 없어 어려움도 많았지만 온몸으로 부딪히는 연기를 했다”고 말한다.”(1987년 9월 11일 자 12면)

강수연은 “선머슴 뺨치게 당돌한가 하면 스무 살에서 풍기는 요염함”을 동시에 가진 배우로 평가됐다.

영화 '씨받이' 포스터.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강수연이 삭발하는 장면.

“‘씨받이’가 상을 타자 잡지 화보에 영화 스틸 장면이 실려 있어 나도 보게 되었다. 강수연이 입을 크게 벌리고 뒷등만 보이는 남자를 밀쳐내고 있다. 평상시 블루진 같은 작업복을 걸친 강수연의 청순미와 이런 장면의 관능미가 아마 그의 스타 기질의 양면성에 힘이 될 것 같다. 강수연은 ‘청춘 스케치’에서 티 없이 밝은 요즘 아이들 미미로 나오는가 하면, ‘도화’ ‘연산군’ 그리고 촬영에 들어갔다는 ‘감자’에서는 미미와 정반대 역을 해낸다.”(1987년 10월 9일 자 14면)

1989년 삭발하고 비구니 연기를 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가 잇달아 흥행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연한 영화는 주춤했으나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 정난정 역할로 다시 인기를 끌었다.

1987년 10월 9일자 14면.

부음 기사는 영화인으로서 활동도 자세히 서술했다.

“강수연은 배우로만 머물지 않았다. 2000년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으며 집회와 행사마다 최전선에 나섰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강수연의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돈에 휘둘리지 말고 자긍심을 지키자는 뜻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인 모임에서 이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영화 ‘베테랑’에 사용하면서 국민적 유행어가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는 1996년부터 사회자·집행위원으로 해마다 참석해 ‘영화제 안방마님(페스티벌 레이디)’으로 불렸다. 2015~2017년엔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022년 5월 9일자 A16면)

김동호 장례위원장은 2022년 5월 11일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에서 “스물한 살에 ‘월드 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지고 당신은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우리 곁을 떠났어도 천상의 별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애도했다.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를 유작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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